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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용산을 다시 걸어보고...
인생의 두 번째 기억은 어머니 일터가 있던 용산 어느 육교 옆을 꾀죄죄해진 곰들이를 안고 걷고 있는 순간이다. 아마도 네 살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육교와 상업 건물들이 드리운 그늘 때문이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억으로 용산은 왠지 내게 줄곧 어둡고 슬픈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 <민주주의를 걷다 _ 용산편>을 신청한 것은 내 유년 시절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실 이전 문제 등 사회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용산을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답사를 통해 내 안에 있던 용산의 이미지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민주화 시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억압적 폭력적 통치 기능을 하던 땅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영역, 남영동 대공분실, 캠프 킴, 일본군 사령부, 강제징용자 동상이 있는 용산역, 커다란 오동잎과 철책에 가려져 있던 일제강점기 일제가 운영하던 전기회사 본사까지...
남영역에서 삼각지까지 우리 답사 일행을 바라보는 키 큰 포플러 가로수들도 일제 시대에 심어졌고, 이 일대에 롯데제과(남영동 대공분실 옆이 롯데 본사터였다고 한다), 해태제과, 동양제과 등 과자 회사와 공장이 많았던 것도 일본군 간식과 관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전쟁기념관 건립은 군부독재정권이 자국민에 대한 온갖 폭력의 증거 인멸을 도모하기 위해 육군본부를 옮기고 성급하게 계획하였다는 것도.
답사 출발 전 한종수 작가의 저서 <민주주의를 걷다>를 읽었는데, 아쉽게도 '용산편'이 없었다. 용산편도 상세히 실어주시거나,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별도의 안내책자를 만들어주신다면 많은 시민들에게 공부가 될 것 같다. 혼자 돌아보고 듣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어서,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아주 흥미진진한 얼굴로 들어줬다. 현 정권이 용산에 어떤 흑역사를 더 보탤지 착잡한 마음이지만...내가 사는 서울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