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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후기] 11/3 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제1주차 - 플루토크라시)
지난 연말 중국 우한에서 알 수 없는 괴질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비위생적인 중국의 식문화가 초래한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그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0년이 저물어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코로나 19는 우리를 비롯한 전세계인들의 일상을 옥죄고 있고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맞은 지구촌 사회는 코로나 19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가르는 여러 가지 담론들을 쏟아냈습니다. 경희대 김재영 선생님은 언택트 시대를 대표하는 뉴노멀로 기후위기, 인공지능, 대규모 감염병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강의는 현재 한국사회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공정성과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능력주의, 능력주의를 태동시킨 사회적 배경으로 꼽히는 금권주의를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개설되었습니다. 강의를 맡아주신 김만권 선생님은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코로나 19 팬데믹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로 사회적 연대의 훼손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약화를 강조하셨습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에 따른 디지털기술 활용의 확대 속에서 접촉과 만남이 중시되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만질 수 없는 시대를 맞아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살려나갈 수 있을까가 새로운 과제라는 점이 화두로 제시되면서 오늘 강의 주제인 플루토크라시의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재물과 부의 신인 플루토의 지배라는 뜻의 Plutocracy는 플루토가 관장하는 세계가 죽은 사람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플라톤은 돈이 지배하는 정치를 가장 낮은 수준의 체제로 간주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이명박근혜가 집권한 9년의 세월동안 유사한 경험을 맛보았고 이번 주 대선을 치른 미국은 그런 정치가 남긴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사태가 하나의 극단적인 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1980년대 이래 특히 2000년대 이후 쓰이게 된 예전의 백만장자가 아닌 억만장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런 슈퍼(울트라) 리치들로 대표되는 경제 엘리트들이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붕괴시키면서 정당의 책임지도층과 바로 결탁하여 (민영화로 불리지만) 사유화된 공공사업과 민간위탁 사업 참여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시민들의 재화와 서비스에 관한 권리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 대응력을 보여주어야 할 정부마저도 보여주기식 정책추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핵심이자 주체인 경제 엘리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이 선한 의지로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볼까요?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의 1992년 14대 대선 출마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언급, 그리고 삼성의 뇌물제공 등의 책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탄핵사건에 이르기까지 경제 권력은 지속적으로 그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런 경제 엘리트들의 출현에 엘리트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도시의 중산층 부모들은 자식들을 엘리트로 만들기 위한 교육에 모든 것을 쏟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가 강남, 서초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유난히 높은 서울대학교 최종등록자 현황 등의 자료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올해 1월 출간되어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던 「세습중산층 사회」라는 책에서는 한국사회의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자녀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양상을 보면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채용 관련 논란이나 각종 의혹 등에 대해서는 공정성의 깃발 아래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도 불사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진 자의 지베에 대해서는 왜 그리 관대하고 사실상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요? 강의 마무리에 던져진 이 질문에 대해 수강생분들이 국가와 사기업에 대한 인식차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보이는 이중적 행태들의 이면속 논리들을 날카롭게 밝혀주셨습니다. 이에 김만권 선생님께서는 국가의 능동성으로 대표되는 발전국가에서 세계화를 통해 다국적 기업, 자본에 포획된 국가로의 성격 변화 과정과 소비사회로의 전환이 가져온 폐해 등을 설명해주시면서 과연 이대로 사태가 진행된다면, 미래는 누구의 공화국이 될 것인가?를 2차례 남은 강의에서 고민해보자는 말로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현장 강의였지만 다양한 연령대에서 남녀 모두 골고루 참여해주셔서 다들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11.10일<화> 저녁 7시~9시 30분)에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고 있는 능력주의에 대해 배워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충만한데 ZOOM 이나 네이버 밴드를 통한 온라인 강의가 지겨우셨던 분들...모두 관심을 갖고 꼭 참여해보세요.
자원활동가 민동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