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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신입생 등록취소가 남긴 질문들 - 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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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더는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바라보는 데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직 서툰 것 같다. 박한희 변호사님과 함께한 이번 강의는 내가 그들의 삶에 나름대로 공감해보고, 그들이 느낄 막연함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선거에 참여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나에게는 일상적이다 못해 당연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라니.
일각에서는 트랜스젠더 인권이 페미니즘과 대척점에 있다고 말한다.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른 기분은 알지 못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내 삶의 전제를 ‘희생’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갑갑할 것 같다.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여성상, 남성상을 타파할 필요가 있듯, 우리가 트랜스젠더에 갖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그들 또한 조금은 더 용기를 내어 개인으로서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는 다양성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여성이 있고, 수공예를 즐기는 남성이 있듯, 그리고 누군가가 그 사람을 향해 ‘남자/여자가 되고 싶은 거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무례한 일이듯,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수공예를 즐기는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이 두 문장은 우리에게 더욱더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 사상, 취향 등을 온전히 존중하는 사회에는 여성과 남성, 트랜스젠더라는 구분이 무의미하고, 차별과 편견에서 한결 자유로울 것이다.
언젠가 올(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 사회에서는 성중립 화장실도 그저 개별 화장실이라고 불릴지 모른다. 사실 나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변기와 세면대가 한 칸에 있는 넓은 1인용 화장실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공용화장실이 성별로 분리되고 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는 공간의 분리보다는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올바른 성교육 등의 제도적 개선으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활발히 한다면, 언젠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 소식이 다른 학생에게 위협으로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논의를 늘 회피했던 입장에서, 나에게 이 강의는 내 관점을 정립하고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질서 있게 내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후기가 횡설수설한 듯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두 번의 강의까지 마치고 나면 한층 깊어진 논리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강의가 두 달 정도 미뤄졌지만, 따뜻한 공기와 색색의 꽃들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 강의가 열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갖가지 색깔이 피어오르는 것이 무지개와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부족한 감수성 때문에 이 후기를 읽던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글. 박수민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