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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자유의 계보학 3강 : 존 스튜어트 밀] 강의 내용 정리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자유의 계보학 3강 _ 왜 정치적 자유일까? : 존 스튜어트 밀 by 김만권
자유의 계보학 3강 강의가 있었던 2월 4일, 정말 추웠어요. 영하 10도라나? 저녁 무렵에는 추위가 살짝 풀린 듯도 했지만... 이런 날도 강의 들으러 사람들이 올까? 생각했죠. 다 쓸데 없는 생각이었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강의실을 꽉 채운 수강생들! 우리 모두 너무 훌륭하죠?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강의의 핵심을 나름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을 보장하라. ‘다른 생각’이 변화를 이루어낸다. |
1. 강의 듣기 전에 밀의 <자유론>을 읽었어요. (이건 책이 좀 얇더라고요.) 그런데, 서문에서 만난 감동... 이 19세기 남자는 절절한 아내 사랑으로 서문을 채웠더라고요.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시켰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급격히 밀이 좋아졌죠.^^ 김만권샘의 강의도 밀의 아내 사랑 이야기로부터 출발했어요. 24세의 밀이 초대받아 간 집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졌다고해요. 그런데, 그 여인 해리엇은 바로 그 집의 안주인, 두 아이의 어머니였죠. 밀은 19년을 기다렸어요. 해리엇의 남편이 죽자 비로소 결혼. 그런데 결혼 7년 만에 여행 도중 아내가 죽었다네요. <자유론>의 서문은 바로 이 상황에서 쓰여진 거라고 합니다. 그 후도 내내 아내를 애도하며 살았다고 하니... 순정남? 집착남?
2. 존 스튜어트 밀은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특별한 영재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어요. 그 특별한 교육 얘기를 들으며 제가 내린 결론. 역시 아버지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면 안되요. 예나 지금이나. 부모 자식 관계도 나빠지고, 아이의 행복에도 도움이 안되죠. 하지만, 그 결과 이토록 뛰어난 아들을 키워냈으니 할 말은 없네요. 옆집에는 벤담이 살고 있고 리카도가 아버지 친구라 맨날 집에 놀러왔고, 흄과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하니, 엄청난 교육 환경이죠?
3. <자유론>에서 다루는 것 : 자유론은 ‘자유 의지’를 다루고 있지 않아요. 밀은 “시민의 자유(정치적 자유)”에 대해 다룰 것이며,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했어요. 왜 권력의 제한에 관심을 가졌냐 하면, 역사는 권력과 자유의 다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어요. 다시 말해 자유란 권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거죠.
4. 밀은 대의민주주의가 왜곡되면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어요. 그리고 사회가 여론을 통해 행사하는 다수의 횡포가 큰 문제라고 보았죠. 여론의 횡포는 “정치적 탄압보다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의 통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통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는 거죠.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극형을 내리지 않는 대신,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24-25)
그리하여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재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되는 거예요. 최근의 ‘종북몰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다수의 횡보를 제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겁니다.
5. 무위해성의 원칙(no harm principle) == 단 하나의 자유의 원리
①다른 사람의 이익 침해는 침해 당사자의 책임이다.
②개인의 행위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 사회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한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32)
6. 자유의 세 가지 기본 영역
①내면 의식의 영역
②개별성의 자유
③결사의 자유
==> 이것은 모두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네요.
7. 내면 의식의 영역에서의 자유
여기에는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가 포함됩니다. 인류 역사상 다수의 횡포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는 많습니다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경우이지요. 다수의 이름으로 그들은 재판까지 거처, 절차를 밟아 살해되었어요. 다수의 뜻이다, 정당하다, 합법적이다, 하는 것이 곧바로 자유의 보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수의 생각이고, 그것이 다수의 뜻에 거스르는 것이라 할지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소수의 의견이 진리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②소수의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고요. ③소수의 의견이 전적으로 틀렸고, 통설이 전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진리의 합리적 근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진리를 하나의 편견처럼 간직하게 될 테니까요. ④사회가 통설에 어긋나는 의견들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다른 좋은 생각들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게 되겠죠.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의견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고 토론과 논쟁이 정말 중요한 거죠.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자신의 과오를 고칠 수 있다.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의 경험을 올바르게 해석하자면 토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관행은 사실과 논쟁 앞에서 점차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사실과 논쟁이 인간 정신이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그 정신 앞으로 불려 나와야 한다.” (50)
8. 개별성을 누릴 자유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해요. 개별성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인간다운 것이고요. 만약 이런 걸 할 줄 모른다면 원숭이와 같은 존재라고 하는군요.
원숭이? 원숭이라면 니체가 한 말도 있죠. 김만권 선생님께서 상기시켜주셨어요. 지난 시즌 강의에서 언급했던 내용이죠. 집에 가서 다시 찾아 봤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원숭이란 무엇인가? 웃음거리 아니면 견디기 힘든 수치. 초인에게 있어서도 인간은 꼭 그와 같은 존재, 즉 웃음거리 아니면 견디기 힘든 수치다. 그대들은 벌레로부터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고, 많은 점에 있어서 아직도 벌레다. 일찍이 그대들은 원숭이였고, 지금도 그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p.16)
(그나저나... 원숭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철학자, 저 철학자, 다 비웃는 거죠?)
욕망은 개별성에 도움이 되요.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고 다양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이 더 풍부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좋은 일을 할 가능성도 더 커지는 것이라고... 욕망을 부정하던 칼뱅이즘에 대한 반대라고 볼 수 있죠.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회성에도 도움이 되고, 또한 뛰어난 자의 개별성은 사회 변화에도 도움이 되죠. 일부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개성을 발휘할 뿐인 상황,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불행이라고 밀은 말했다는 데요, 19세기의 이 말이 21세기의 저에게도 조금도 낯설지 않네요.
9. 결사의 자유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어요.
10. 자유로운 사회는 이 세가지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이고요, 이때 자유사회의 구성원의 이무는 두 가지어요. ①무위해성 ②자기 몫을 해라!
이때 무위해성을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뭐든 내맘대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이것은 공익을 위한 사심 없는 노력을 의미하는 거죠.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잖아요. 그러니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