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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참쇼 나도강사다 <PH익스프레스> 상영회
안녕하세요?
아카데미느티나무 전보임입니다
지난 3/25 참쇼- 나도 강사다 <PH익스프레스-거문도를 점령하라>상영회는 잘 마쳤습니다.^^

간단히 작품의 배경을 설명드리면,
19세기 말, 제국주의 말기 시대에 증기선은 군사력과 상업 양쪽에 있어 가장 발달된 운송수단이었습니다. 세계는 새로운 세기를 향해 변해가고 있었고 영국의 우수한 해군력은 주변 유럽국들의 증기선 개발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팽창정책에 있어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흑해지역 및 중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러시아는 크림 전쟁(1854~1856)에서 영국, 프랑스, 오토만제국의 연합군에 패배했습니다. 펜지에 전투의 승자는 러시아였는데,
이는 영국의 주요 식민지 인도로 향하는 관문 헤랏(Heart)으로의 진격을 의미할 수도 있었지요. 다급해진 영국은 동아시아와 북태평양에서 시도되던 러시아의 팽창을 막고,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러시아의 주의를 돌기리 위해 조선 남해 거문도의 작은 항구 포트 해밀턴을 점령, 해군기지화하게 됩니다.
<PH익스프레스>의 극본은 크림전쟁 종결로부터 약 30년후, 영국이 보호권을 쥐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영국-아프간 연합군의 펜지에(Penjdeh)전투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상영에 앞서 자기 소개 겸,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연유와 기대를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작품은 삼십여분을 시종일관, 1885년 서구열강들의 항해와 그 뒤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뒤 2년 여간의 상황을 극형태로 묘사하며 시대의 난센스를 꼬집으며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상을 볼대는 아래 사진처럼 2채널 화면으로 보여집니다.
작품 상영이 끝나고 큰 박수가 나왔고 또한, 설명중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 공유합니다. ^^ 통계로 부상병을 구하다
앞으로 전시장 뿐 아니라 더 대중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작품을 나누고 싶다는 작가님의 바램처럼 느티나무에서도 더 좋은 기회를 마련하여 다시 한 번 만나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림전쟁 당시 나이팅게일은 모두 아시죠?
그런데, 아래 도표처럼 '파이(원)그래프'를 발명한 사람이 나이팅게일 이란 사실은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찾아 보았습니다.
1854년 러시아와 연합국간에 ‘ 크림전쟁 ’이 일어났다. 많은 영국 군인이 부상과 질병으로 죽었다. 영국의 국방장관 시드니 허버트는 나이팅게일에게 크림 반도의 야전병원으로 가 간호활동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이팅게일이 가기전 야전병원에서는 부상병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벌레가 들끓을 정도로 불결했으며, 붕대와 환자복 같은 기본 비품도 부족했다.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동을 청소하고 부상병의 옷을 빨았다. 뜨거운 물을 공급해 병사들이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는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은 더럽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병실이나 방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은 좋은 간호를 하기 위해선 우선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나이팅게일의 통계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하기 위해 숫자로 야전병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통계를 내기 전까진 아무도 크림전쟁에서 죽은 영국군의 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통계를 작성하기 위한 통일된 기준조차 없었다. 세 가지 기록체계가 있었는데, 기준이 각기 다르다 보니 결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은 먼저 통계 작성기준을 세워 기록체계를 통일했다. 기준에 따라 입원, 부상, 질병, 사망 등의 내역을 매일 상세히 작성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영국 정부에 크림전쟁의 상황을 전하고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나이팅게일의 보고서를 본 영국정부는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화장실과 오수구덩이를 청소하고 환기구를 설치했으며, 필요한 비품을 공급했다.
개선사업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자 야전병원의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42%에 달하던 환자의 사망률이 2%까지 떨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며, 깨끗해지면 왜 사망자가 줄어드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이 제시한 통계는 깨끗한 위생이 사람을 살린다는 증거가 돼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중략>
나이팅게일은 복잡한 숫자들이 나열된 통계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통계를
이해하기 쉽게 그림(도표)으로 보여줬다. 나이팅게일의 장미 도표(Rose diagram, coxcomb)는 위생 개선 사업의 극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이 도표는 프랑스의 토목공학자 찰스 미나가 그린 도표와 함께 19세기 최고의 통계그래픽으로 손꼽힌다.
크림전쟁의
사망원인에 따른 월별 사망자를 표현하기 위해 나이팅게일은 원을 12개의 쐐기로 나눴다. 원의 중심에서부터 세 개가 겹쳐진 모양으로 그려진 쐐기의
넓이는 월별 사망자 수를 나타낸다. 각각의 색이 다른 쐐기는 서로 다른 사망원인을 표현한다. 오른쪽 도표가 1854년 4월부터 1855년
3월까지의 사망자 수이고, 왼쪽의 도표가 1855년 4월부터 1856년 3월까지의 사망자 수이다. 파란색 쐐기는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고, 빨간색
쐐기는 부상으로 죽은 사람이다. 검은색 쐐기는 기타 이유로 죽은 사람을 뜻한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대체로 파란색 쐐기가 크지만 왼쪽의 그림을
보면 파란색 쐐기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나이팅게일은 이 도표를 통해 군 병원의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이팅게일의 도표는 영국의 통계학자 윌리엄 파르의 도표를 개선한 것이다. 파르는 나이팅게일과 비슷한
자료를 갖고 월별 사망원인을 분석한 도표를 그렸는데, 월별 사망자 수를 넓이가 아닌 원의 반지름 위에 길이로 나타내고 그 점을 연결했다. 이
도표를 보는 사람들은 선의 길이가 아닌 면적이 사망자 수를 뜻한다고 착각한다. 결과적으로 월별 사망자 수의 차이를 과장하게 된다. 나이팅게일은
파르의 도표가 갖는 문제점을 간파해 선의 길이가 아닌 쐐기의 면적으로 사망자 수를 나타낸 새로운 그림을 그린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이 끝나자 영국으로 돌아왔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도 열악한 위생으로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녀는
크림전쟁 중 영국에서 조성된 ‘나이팅게일 기금’으로 1859년 런던의 세인트토머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했고, 같은 해
‘간호론’이라는 책을 써 간호학의 기초를 세웠다.
2. 전쟁이 없던 시기에도 군대의 사망률은 민간 사망률보다 두 배나
높았다. 나이팅게일은 통계와 도표로 이런 사실을 알렸다.
3. 나이팅게일이 쓴 ‘간호론’에는 질병의 치유와 예방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리돼 있다.]
그녀는 영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쟁이 없는 시기에도 영국
병영 내 사망률이 민간의 사망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을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크림 반도의 경험과 통계를 근거로 삼아
병영의 위생을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186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통계대회에서 나이팅게일은 병원 기록 양식을 통일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당시 영국 병원의 기록양식은 서로 달랐다. 병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양식이 제각기 달라서 기록을 모아도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실행해도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이팅게일은 병원 기록 양식이 통일되면 쓸모 있는 통계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의 위생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의 모든 영국군대에 설문지를 보낸
뒤, 결과를 분석해 20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에는 인도 주둔 군대의 사망률이 1000명 당 69명에 달한다는 사실과
사망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가 불결한 위생 때문이라는 내용이 수치로 기록돼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보고서에 근거해 위생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10년이 지난 뒤 사망률은 1000명 당 18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통계를 통해 세상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나이팅게일은 영국통계학회의 첫 번째 여성 회원이자, 미국 통계학회의 명예회원이 됐다.
나이팅게일은 통계를 잘 사용하면 인류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법률과 정부의 부적절함, 정치 체계의 무능함, 사회를 이끄는 자들의 답답한 몽매함’을 오직 통계 연구로만
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통계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