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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번째┃누구나 맘대로 톡톡, 이대훈
느티나무 백인보 스물네 번째 - 이대훈
평화교육 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
이대훈 진행자
안녕하세요. 이번 2012 가을학기 [평화교육 워크숍] 진행팀에서 활동한 이은주입니다. 모두 6회에 걸쳐 이대훈 선생님과 느티나무 평화교육을 함께 만들어보았는데요, 같이 평화교육을 진행하면서 이대훈 선생님만의 매력을 느꼈고, 그분 안에 얼마나 명랑하고 맑은 영혼이 있으신지 궁금하여 따로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
평화교육을 진행하며―
Q. 느티나무에서 처음 시도해보신 이번 평화교육 워크숍은 어떠셨나요?
이번 평화교육은 저한테도 굉장히 큰 배움의 기회였고, 제 자신도 변했고 재발견의 시간이었어요. 일단 참가자들이 좋아하는 모습, 저랑 비슷하게, 자신의 재발견? 그런 순간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어요. 요새 흠뻑 빠지고 있는 평화교육은 저에게 굉장히 많은 걸 주었어요. 제 나이가 지금 한 바퀴 도는 그런 시점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 맞아, 내가 옛날엔 이런 걸 좋아했었지, 이런 걸 즐겼었지.’ 하고 페다고지 속에서 찾아지는 거예요. 저와 비슷하게 나이 드신 분들도 추상적으로 ‘동심’이라고 말하는, ‘어, 맞어. 이런 게 내 안에 있었지!’ 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아카데미 느티나무 평화교육 워크숍 2012.10.17 진행중
Q. 이번 참여연대에서 ‘P.E.A.C.E 평화 페다고지’를 진행해보셨는데, 사람들이 사실 ‘평화 페다고지’이라고 하면 감을 잘 못 잡아요. 선생님은 이번 워크숍을 세팅하시면서 평화교육을 마치신 분들이 어떤 걸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좀 심하게 얘기하면, 참여자들이 정신 착란증을 일으키게 한 데 성공했다... (^^) 그 말은 뭐냐면, 저는 사실 ‘평화가 뭐예요? 어떻게 개념 규정 하세요?’ 이런 질문 싫어하고, 평화가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대답도 직접적으로 잘 안 하고 그래요. 정신 착란증이 뭐냐면, 이제 단체나 학교에 돌아가서 뭘 하려고 하면 자꾸만 머릿속에서 ‘삐릿삐릿’ 다른 이미지가 뭔가 유령이 나오는 것처럼 삐릿삐릿 나오는 거죠. 이런 감각이 이제, 뭔지는 모르겠지만 ‘삐릿삐릿’ 하는 게 굉장히 좋은 상태인 것 같고요. 저는 잔잔한 호숫가에 비둘기 날아가는 평화 이미지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 깨져요. 굉장히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이미지라서... 그것과 다른 평화 이야기를 할 때는, ‘평화가 뭐지?’ 하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간 평화가 아닌 것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약간 불안한 상태에서 헷갈려 할 때, ‘와, 이건 뭔지 모르겠다’ 할 때 저는 그 속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잔잔한 호숫가의 비둘기가 뭔가 삐릿삐릿 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상태.
Q. 그러려면 뭔가 낯설게 보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겠군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화된 폭력을 재발견해보아야 하는 것.
교육 준비를 많이 한다기보다, 질문자의 역할을 제가 즐겨야죠. ^^
Q. 선생님의 평화교육은 조금 아카데미컬한 편이라고 봐야 하나요?
적립된 이론으로 보면 ‘비판적 페다고지’를 평화교육에 도입한 거고요. 교육학에서 비판적 페다고지는 이론화가 잘 되어 있어요. 평화와 폭력 문제를 비판적 페다고지로 풀어가는... 저도 잊고 있었는데, 제가 옛날에 연극이나 연극 이론을 좋아했어요. 거기에 ‘낯설게 하기’ 방식이 있는데, 이런 거예요. 공연을 하다가 중간에 공연을 딱 깨요. 관객들에게 다른 생각의 공간을 열어주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약간 ‘확 깨는’ 방식으로 공연을 깨는 거예요. 연출자가 들어오더니, “이거 오늘 관객에 맞지 않아. 우리 다시 해봐.” 하는 거예요. 19세기 말부터 이런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냥 몰입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용이 있는 거였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비판적 페다고지가 그런 것을 많이 고민하더라고요. 거기에 여성학에서 제가 배운 것이, 생물학적 성은 실제고 젠더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거로 보다가, 심지어 생물학적 성까지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보는, 그런 면에서 삶에 어떤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이 주어진다기보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퍼포먼스를 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젠더가 그렇게 만들어진다면 대부분의 권력 관계도 퍼포먼스, 자기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관계에서 그런 사회적인 퍼포먼스를 벌임으로써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추측 겸 생각할 수 있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의 연수 진행 파트너인) 레아처럼 교육에 퍼포먼스를 끌고 들어오는 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봐요.
‘평화학’과의 만남―
Q. 어떻게 평화학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단순한 이유로는, 저는 대학교 대충 마치고 나서 대부분 사회 운동에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참여연대가 마지막이었고요. 그때 참여연대 하면서 몇 년 정도는, 이러다 사람 망가지겠다 하는 생각이... (웃음) 옛날에는 가톨릭 사회 운동, 노동 운동, 인권 운동... 그리고 청년 학생은 뭘 해도 청년 학생 운동이고.. ^^ 이러저러하게 활동하다가 나중에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하자고 잡았죠. 제 실천하고 제일 가까운 인권 공부를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그 당시는 국내에 인권 변호사, 인권법학 정도 있었는데, ‘인권학’이라고는 따로 없었죠. 따로 책을 구해서 보고, 참 재밌었어요. 국내법 학자는 많으니까 그럼 나는 국제 인권법이나 국제 인권 제도를 해야겠다 하고 생각해서 시작했죠. 그렇게 공부 계획 잡을 때 마침 영국에서 국제회의가 열려서 갔었고, 그때 영국에 알았던 친구들한테 물어봤죠. 내가 이런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으냐? 했더니, 너한테 딱 맞는 사람이 저기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가면 뭐든 다 풀릴 거다 하면서,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을 추천했고요. 그분이 제 지도교수가 되셨는데, 그분이 속한 과가 평화학과였어요.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제 관심사가 거기에 맞았어요. 진짜 우연인데 정말 잘 풀렸다, 그리고 지도교수가 친구처럼 정말 마음이 잘 맞았어요. 그렇게 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인 게 평화학이었죠.
Q. 그 당시만 해도 평화학을 공부하고 들어오셨을 때, 암담한 국내 상황에서 딱 나와 있는 싸워야 하는 의제가 아니라면 어쩌면 외로운 싸움이지 않았을지? 평화학에서도 어떤 쪽으로 포커스를 갖고 공부하셨는지, 공부하신 것이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시는 데 어떠한 기반이 되어 주셨는지? 또 평화학으로 여기서 가닥을 어떻게 잡으셨는지?
제가 별로 크게 목표를 잡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목표에 비해 잘 안 될 거라고 전제하고... 인권운동 할 때도 사실 제가 비관했던 것보다 훨씬 한국 사회는 진전이 빨랐던 것 같아요. 제가 한국 사회를 좀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좀 있어서... (웃음) 제가 구체적으로 초점을 잡은 것은 ‘안보의 정치학’이라고 해서, 일종의 ‘보호해주겠다’라고 하는 국가 정치적 차원이 일상 정치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거였어요. 그 안보의 사유 방식이나 담론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누가 어떤 대안적인 담론을 생산해내는가 하는 것들. 한국에서는 민주화 과정을 통해 국가 안보 담론과 정책 해체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은 정책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나온 것이죠. 그 당시 공부한 게 한국에서 다 써먹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월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위원회’라는 운동 단체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하자고 했었고, 평화군축센터도 한국에 돌아와서 참여연대와 이야기하다가 또 하게 되고, 그래서 비관했던 것보다는 잘 되었죠. 한국에는 아무래도 전문가/비전문가 경계가 굉장히 강해서, 군사/안보/군축 이런 거는 전문가들이 하는 거라고 경계선이 생기고, 무슨 제대로 된 걸 하려면 딱 교수들이 하고 다 남자고... 평화교육과 실천 쪽은 여성들이 하는데 정책 쪽은 꼭 남성들이 하고... 그렇죠.
‘평화’와 ‘인권’의 접점_?
Q. 인권교육 쪽에서 요즘 평화교육에 관심을 두시는 것 같아요. 인권교육과 평화교육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어딜지? ‘평화교육’에서 ‘평화’ 대신에 ‘인권’을 넣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인상이 들 때가 있는데?
평화교육에 인권 영역이 들어와 줘야 하고 그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제가 아는 평화교육과 제가 아는 인권 교육에서는 두 가지 접점을 잘 찾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고 있어요. 그게 무어냐면, 인권 교육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차별’에서 나오는 폭력하고, 평화교육에서 얘기하는 훨씬 더 많은 다양한 불평등의 권력 구조가 일부는 차별로 드러나고 일부는 직접적인 폭력으로 드러나고. 그래서 권력 관계에서 폭력으로 끌어오면, 현실에서는 두 개가 같이 돌아가는 거죠. 두 축을 평화교육에서 적극적으로 같이 들여오려는 것이고, ‘차별, 폭력, 권력’이라는 이 축을 이번 연수에서 많이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인권 교육은 ‘반차별 평등’이라고 표현이 딱 돼요. 예를 들어 교사-학생 관계는, 교사가 학생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해주고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역할이지, 교사와 학생의 불평등한 관계가 수평적 권력 관계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것인지 까지는 다루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남성-여성 관계에서 젠더 불평등 구조로 인해 여성이 차별받기 때문에 남성이 평등하고 동등한 젠더 역할을 해서 동등한 상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권 상태인데, 오늘 평화교육 워크숍에서 김엘리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대로 남성과 여성이 해체되는 새로운 인간들 사이의 관계, 무지개 색깔 같이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관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인권 담론을 넘어서― 어떤 가치와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런 영역들이잖아요.
Q. 그런 해체 작업을 평화교육에서 많이 할애하시는 거네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수직적인 권력 문제를 평화교육에 갖고 오려 해요. 너무나 많은 경우 개인적으로는 평화적 감수성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문을 딱 열고 나서면 선후배 관계로 돌아가는 건 과연 어떤 건지... 이게 과연 평화의 힘인가 하는...
Q. 교육 공간 안에서 수직적 권력이 해체된 상태를 많이 경험하고 돌아가면 좋을까요?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Q. 사실 구조를 아는 것보다 그것을 체화하는 게 정말 어렵잖아요?
‘요한 갈퉁’의 구조적 폭력 이론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비판하는 측면을 보자면, 사실 일상에서 구조는 너무 멀리 있어요. 구조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몸짓과 언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계속해서 형성해내는, 역동적인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요. 기존 권력 관계가 ‘카피’되는 것. 그게 이제 구조가 개인 차원에서 미세하게 계속 생성되고 연습되는 것. 삶을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본다면, 권력 구조는 퍼폼(perform), 즉 연기되고 놀아진다고 할 수 있어요. 동작 하나하나가 공연이라는 거죠. 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던 걸 하는거죠. 그러니까 결국 자기에게 안전한 방식을 퍼폼 하는 거죠. 그렇다면 교육 공간에서 또 다른 퍼포먼스를 많이 대역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 인생에 들어온 ‘퍼포먼스’―
Q. 지금의 활동을 끌어오게 한 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사명감’ 같은 단어 자체를 싫어해요. ‘시대적 과제’ 그런 센 말 싫어해요. 무슨 풍선 같이 느껴져요. 저 자신도 그래서 무슨 ‘우리의 과제’라고 하면서 활동하진 않고... 젊었을 때는 약간 눈앞에 보이는 게 짜증이 나서 운동했어요. 과거에 최루탄과 곤봉이 난무했을 때, 그때도 결사 항전의 자세로 머리띠 묶고 막 전투경찰하고 싸우고 돌 던지고 하는 곳에서도, 그것도 몰입이 잘 안 되고... 전경하고 부딪히면 맞는 경우가 있잖아요. 근데 막 맞으면 이 ××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막 이런 생각이 나면 좋은데, 맞을 때 약간 우스운 느낌이 들었어요. (웃음) 막 이렇게 ‘퍼퍼퍽’ 하고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약간 우스운 느낌이 있고...
광주학살 터졌을 때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제 주변 학생들이 결사항전하자고 해서 막 싸우자고 하니까 저도 같이 해봤어요. 그런데 계엄령 선포되니까 그 친구들이 금방 없어져서 짜증났어요. 같이 데모하던 사람들이 큰소리치더니, 이게 뭐야... 그러던 중 청계천에서 피복 공장에서 일하는 주로 10대 여공들 만나서 야학을 했어요. 그런데 야학 선생님들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대학교 2학년, 3학년들이 가서 노동자들에게 뭔가 가르친다는 건데, 아 이게 뭔가... 그래서 ‘나 안 할래’ 했더니 ‘그럼 너 뭐 할래?’ 해서, 제가 그때 연극 좋아했거든요. ‘우리 연극 해보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했죠. 저도 진짜 제 인생을 변화시킨 경험을 했죠, 그 연극 한번 하면서. 음... 삶에 대한 창피함? 일하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연극 도중에 막 완전 울음바다가 됐는데... 완전히 슬프면서도 완전히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상태였어요. 그 친구들이 (여공들이) ... 저희들 대학생들 마구 나무란 적도 많은데...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거든요. 그게 큰 계기였죠.
Q. 야학을 연극으로 하셨군요!
처음부터 대본도 같이 쓰고요,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진짜 그때 힘 받았어요. 연극을 지금도 교육 안에 넣으려고요.
강정/밀양에서 진행한 “평화마당 공감토크”
Q. 요즘 낙(樂)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평화교육 연수요. 학교 선생님들하고 하는 게 재밌죠. 수업이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평화교육 연수를 하면 재밌어요. 선생님들, 요즘 너무나 힘들어하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자괴감도 크고... 그런데 계속 만나다보면 그래도 교육자로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갖고 계시거든요.
강정하고 밀양하고 가서 주민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좀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어요. “평화마당 공감토크” 이게 생소한 거고, 외부에서 온 사람이면 연설을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지지를 하거나 그런 역할인데, 이번 경우는 가서 얘기를 듣기만 하는 거였거든요. 그러니 얘기가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고. 국가 폭력을 경험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경험으로 우리가 누려야 할 평화나 인권들을 말하고, 그런 컨셉을 가지고 외부 사람들이 가공하지 않고 오직 자기 목소리로만 얘기하는 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난상토크처럼 아무 얘기나 막 하는 시간이에요. 그 다음에 약간 구조화된 토크로 넘어가는데, 가령 강정 해군기지 문제로 넘어가서 제일 인간으로서 억울했던 것을 1가지씩 말하게 하면서 얘기 안 했던 분들도 얘기하게 해요. 그러면 머뭇거리시던 분들이 그간 억눌렸던 걸 막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앞서 말 하셨던 분들이 들어주시고 그러다 어느새 그 분위기 속에 다 파묻히고...
@2012.12.02 대추리주민 평화권리선언 중
Q. 애도의 물결이었나요?
아니요. ‘존엄성 회복’이 느껴졌어요. 얘기판이 열리니까, 처음엔 예의상 머뭇거리는 척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러다가 말하는 차례가 오면, 와~ 파도예요 파도. 시간이 모자라요. 그러니까 제대로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자기 존엄성이 회복되는 시간이에요. 유명하신 분들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거지요. 저도 가끔 거들고요, 우리에게 어떤 것이 꼭 있어야지만 행복한 마을로 설 수 있는지 이거 한 가지만 말해주시라 하면서, “이렇게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강정 마을의 평화권이 수립이 됩니다.” 라고 말하고 “이게 진짜 역사에 남을 겁니다.” 했지요. 그리고 한 줄씩 종이에 쓰기로 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여러 사람들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들이 눈앞에 가시적으로 나왔죠. 저항하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가시적 기억이 하나 남죠. 그거를 판으로 정리해서 저희가 다 드렸거든요.
그러고선 밀양에 가서 밀양 주민들을 만나서 공감 토크를 할 때도, 저항과 해방이 같이 가는 거 같았어요. 무슨 얘기냐면, 아무것도 저항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앞에 갑자기 굴삭기가 집 앞에 등장하니까, 할머니들은 먼저 몸을 던져 저항했던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국가 폭력 얘기하니까 할머니들 발언권이 세요. 할머니들의 발언권이 세진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발언권이 세지는 것과 똑같아요. 몇몇 마을 어른들의 목소리에서 이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그것도 아무런 인위적인 작용 없이 그 만남 자체가 굉장히 많은 것을 얻고...
피리 부는 이야기꾼 ‘이대훈’―
Q. 선생님은 무얼 잘 하세요?
음... 저는 토론 사회요. 참가자들 얘기를 기억했다가 잘 연결시키는 것, 그런 걸 좋아합니다. 목공도 해요. 한 10년 됐어요. 잔재주 좋아해요. 목공을 아주 좋아하고 악기도 혼자 해보는 거 좋아해요. 이것저것.
Q.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음... 악기를 두세 개 정도 재밌게 해서, 한국은 좀 재미가 없고 한국이 아닌 데를 좀 돌아다니면서, 옛날로 치면 떠돌이 악사로 ‘이야기꾼’ 있잖아요. 저는 약간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의 사유를 짧은 시간에 몇 마디 대화에서 좀 기억에 남을 만한 질문식 대화를 하는, 그런 걸 돌아다니면서 하고 싶어요. 아주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상호작용 같은 거.
Q. 특별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으신 거예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생각이 나요. 언덕길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면 아이들이 하나둘씩 따라 모이는...^^ 참 어울리시는데요.
특별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제일 소통이 잘 돼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통이요. 부탄에 한번 갔었는데, 부탄 사람들이 전통을 잘 지키면서도 영어를 참 잘해요. 영어 교육이 참 도가 튼 곳 같은데, 그래서 어딜 가나 아이들하고 소통이 가능했는데, 일단 그곳이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좋았어요. 아이들과 피리 불고 이야기 주고받고... 몇 마디 했는데 굉장히 소통이 잘 됐던 경험이 있어요.
Q. 그러면 5년 뒤에는요? 참여연대에서 평화교육의 담임선생님으로 계시지 않을까요? ^^ 느티나무도 평화교육 워크숍을 매 학기 했으면 하시던데...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걱정했는데...^^ 그런 공감대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안 생기면 제가 우길 수도 없고.. (웃음) 자꾸 이곳에서 해보고 개발하고 해보고 개발하고 하는 기대가 있어요. … 페다고지는 한번 책을 써볼 생각이에요. 페다고지를 같이 고민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요. 쉽게, 쉬운 책으로.
느티나무에서 처음 진행된 <평화교육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은 참여자들의 굉장한 열의와 진행팀의 남다른 열정으로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열띤 호응에 힘입어 이번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단기 집중 워크숍으로 평화교육이 진행됩니다. 이대훈 선생님을 포함해 평화교육 프로젝트 모모에서 활동하시는 문아영, 전세현 선생님이 진행팀으로 뭉쳤습니다. 학교에서나 시민사회에서 평화교육을 실천해보고 싶으신 분들을 초대합니다. 이대훈 선생님의 매력에 한번 흠뻑 빠져보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