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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홈페이지 개설을 축하합니다....[죽음과 소녀]를 읽고.
축하 인사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진영종 원장님의 셰익스피어 강의도 다 들었고 김명환 교수님의 강의도 빼먹지 않고 다 듣고나서
이제 마지막 강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과 소녀]를 처음 읽을 때는 그야말로 단숨에, 중간에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지만
성의없이 건성으로 전화를 받고 중단할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한 호흡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되짚어 가면서 중간 중간에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훑어 보았습니다.
쬐금만, 진짜 진짜 진실은, 스터드, 너를 죽이는 거지. 그래서 내가 나의 슈베르트를 들을 수 있도록,
네가 나의 오늘과 나의 슈베르트와 나의 나라와 내 남편을 더럽히면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도록. 그게 내가 필요한 거야......
네가 전혀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죽이는 거야. 나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만을
용서할 수 있어. 이 거울은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몇개의 천천히 움직이는 스포트라이트가 관객들을 훑으면서 아래 윗줄로 이동하는
가운데 한번에 두세명씩을 비춘다. 그는 실물일 수도 있고 빠울리나의 환상일 수도 있다.
죽음과 소녀........
그리고 나서 도르프만의 후기를 읽었습니다.
많은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두고 한 극작가가 잔잔하게, 그렇지만 선명하게
뱉아내는 진실을 접하고 저는 하고싶은 말들이 뭉글뭉글 가슴 속에서 피어오름을 느낍니다.
지난 기억의 생채기들이 다시 파리한 통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고비를 넘어 그나마 대지에 직립한 지금의 내가 대견하다가도,
불의에 저항하는 분노인지.....
상처를 원망하는 옹졸한 미움인지.....
지금의 마음은 저도 분간하기 힘들게 뒤섞여 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어둠때문에 거울이 되어버린 책상 맞은 편의 넓은 창문을 응시합니다.
이 희곡에서와 마찬가지로 제 모습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내가 남과 다르지 않고 지금은 혼자이지만 이제 날이 밝으면
삼삼오오 만나게 될 무수한 이웃들을 생각하면
용서라고, 사랑이라고 말해놓고 뱉아놓기 무섭게 미움으로, 원망으로 돌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쌍곡선의 변증법을 경험합니다.
일단 사소한 것에서 부터 저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자학과 광기, 무책임한 강박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지만
우리 주변의 수많은 빠울리나와 함께
숨죽여 지켜보기도 하고, 속삭이 듯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같은 지독한 분열의 고통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래도 역시
아름다움에 가슴 떨리는 긴장과 절제, 그리고 전율의 믿음.
모색하고 만들어가는 본래의 인간다움을 믿기에
절망하지 않고 입가에 아득한 기억의 미소를 되살리면서
희망의 내일을 기다립니다.
허리가 많이 아프신데도 강의를 열심히 해 주시는 김명환 교수님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좌든 우든, 그것이 무엇인건 그를 만들어내는 힘을, 도덕과 정의로 인한 법치와 그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라는것을 만드는 본원적인 힘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힘의 본원은 역시나 인간이겠지요..
아주 재미 있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수 없이 많은 책에서 찾으려 하였던 그 힘의 원천이 제 안에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우리 곁의 수 없이 많은 빠울리나가 아닌 내 안의 많은 빠울리나도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해요.그래야 진실을 알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