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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은 민주주의강좌가 진행되고 있지만 웹사이트가 오픈하기 전에 있었던 경제 강좌에 대해 토론이나 의견이 없었기에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경제 강좌에서나 신문등에서 신자유주의니 케인즈주의니 하는 예기는 많이 들으셨을텐데 너무 이분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생각난 것을 적어볼까합니다.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신자유주의경제학은 자본주의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많이 주창되어온 이론의 근간이었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고 시장은 소비와 지출에 있어서 적정한 균형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작동된다는 이야기이고 반대로 케인즈주의는 알아서 잘 굴러갈 줄 알았던 시장이 경제 공황의 위기에 처하자 자유시장이 문제가 있을수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개입해서 지도해야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이후 다시 자유주의가 재창된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이지요.
얼핏보면 두 이론은 대립적인것이 맞습니다만 아담스미스가 자유주의경제학을 이야기하기 전의 사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18세기 이전 유럽은 중상주의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병패는 정경유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지배층인 각국의 국왕과 귀족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상인세력들이 공정한 시장을 회손해 부를 쌓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의 영향을 배제시켜야만 했겠지요.
이후 20세기초에 세계의 자본중심이 미국으로 옮겨 간 후 뉴욕의 금융재벌과 석유나 철강, 자동차등 초거대기업들이 국가의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게 되고 국민들은 중세의 농노같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윤추구에만 치중하다보니 거대독점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국가위에 군림하는 사회가 됩니다. 이런 현상은 부의 분배에 있어서나 고용에 있어서 큰 문제를 낳게 되고 자유시장이 구조적으로 이런 문제를 가속화시킬뿐 자생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국가가 정부지출을 통해 적극개입해서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이론이 나오게 됩니다.
20세기후반 이루워진 신자유주의는 엄밀히 이야기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이 성장하기전에 자본적 침략을 하기위해 사용된 키치프레이드이지 자국내에서 이루워진 현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미국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엄밀히 말해서 케인즈주의나 뉴딜정책과는 정반대의 정부의 시장 적극개입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이득을 위해 정치가들을 조종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중남미와 아시아등의 국가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개방하게되고 선진국들에게 엄청난 착취를 당하게 됩니다. 미국내에서는 정부는 시장에서 물러난다고 이야기하지만 의료와 교육, 세금등 각종 사회복지가 무너지고 부의 불평등이 가중되는 정책을 적극추진합니다.
현 이명박정권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케인즈주의의 이름을 내걸고 강바닥을 파헤치는게 한국형 뉴딜이라면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거부해야합니다. 정부예산은 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쓸데없이 강바닥파는데 건설사들 배를 불려주기위해 이루어지는 정경유착이니 타당하지 않습니다. 또, 신자유주의의 이름을 걸고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각종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려하면 케인즈주주의의 이름으로 거부해야합니다. 서민층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료제도나 연금제도, 전기나 수도와 같은 사업을 축소하고 민영화하는 것은 서민들의 생존권을 거대자본의 이윤추구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니 절대 용납해선 안됩니다.
신자유주의나 케인즈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반대이론이 아닙니다. 자본세력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바에 따라 적절한 선전물을 언제나 돌려가면서 사용했습니다. 이론이나 정책의 표면적인 내용보다는 그것을 주장하는 그 근본 목적을 살펴봐야 합니다. 저들은 무엇을 원하기에 저러한 주장을 하는지를 ...
진실은 현상의 저 너머에 있으니
선생님께서 서술하신 경제사의 주체는 일관되어지게 기득권층 (자유방임주의 시대-자본부루주아지, 케인즈주의시대-정부 관료 신자유주의시대-패권헤게몬국가들) 인데요.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이와 같은 논리(경제사의 주역=기득권계층)는 생산성 극대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 그리고 그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위한 기득권층의 사회계층 견고화의 메커니즘을 위한 '이데올로기의수단적 활용'이 그 근저에 내포되어 있는 원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고로 우리가 현재 논의하는 신자유주의나 케인즈 주의라는 것 자체가 대학집단이란 지배이데올로기 씽크탱크와 그를 적극 수용한 정부권력의 결합에 의해만들어진 정책이란 결과물의 답습적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생님께서 주장하신 이데올로기의 이상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시민사회의 서민의 정치적 주체권을 보장받는다는것은 굉장히 좋은 방편과 해결책이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에 먼저 선행되어져야 할 것은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저항과 투쟁에 있어서의 시민사회의 현존 기득권층과 대등할 정도의 영향력과 사회권력 집산(輯産)화의 강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듭니다.
아무리 좋은 이상과 생각 그리고 체제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 정치적 지원이 있지 못하면 사상누각의 결함을 범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각할 여지를 충분히 많이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