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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9강, 금정굴과 철원평화전망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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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양시 금정굴 답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우리의 금정굴 답사.
금을 캐던 곳이 문을 닫아 폐광굴이 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장소로 사용되는 동안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단촐 하고 허름해 보이는 그 곳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고양금정굴 사건 요약*
고양 금정굴 사건은 6ㆍ26전쟁 직후 북한군을 위해 부역했거나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1950년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경찰이 고양ㆍ파주지역 주민을 일산서구 탄현동 황룡산의 금정굴에서 총살·암매장한 사건이다. 1993년 문제를 제기한 유족회와 시민단체가 1995년 9~10월 사건 현장에서 153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안치할 곳이 없어 16년 간 서울대병원이 연구실 창고에 보관해 왔다. 서울대 의대의 1차 감정에서 희생자가 최소 153명이고, 약 10%는 여성에 10대의 유골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니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라고해서 목숨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또 하나 “금정굴은 복 받은 곳 이예요” 라는 고양 금정굴 유족회 관계자분의 말씀도 기억에 남는데, 얼마나 많은 우리의 과거사가 밝혀지지 않고 보상을 받기가 힘들었으면,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받지 못했으면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곳을 복 받았다라고 까지 표현을 했을까 싶어 그저 먹먹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고양시에서 이 사건에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련 조례안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희생자 유족들이 기금을 조성해 인권평화재단을 발족하려는 준비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겪어야할 어려움도 무수하겠지만, 금정굴이 더 이상 뒷산에 작고 허름한 굴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2. 점심식사, 동두천 기지촌
금정굴에서의 일정이 길어져 조금 늦게 동두천 기치촌을 향하였다. 그 곳에서 아주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고 철원으로 Go Go~!!! 시간이 부족하여 거리를 돌아 볼 수는 없었지만, 버스 안에서도 이신철 교수님의 깨알 같은 설명은 계속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너무 강렬하여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윤금이 사건’ 휴, 인터넷으로 뒤늦게 찾아본 그 이야기는 정말,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아픈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3. 철원 평화전망대
<군인 '동생'이 직접 버스에 타서 인원수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의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철원 평화전망대’ 그 곳을 오르는 동안 많은 철새들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마냥 자유로운 곳이 아니기에 참 대조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곳을 고등학교 때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마냥 신나서 소풍처럼 왔다만 간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똑같은 장소가 그저 ‘소풍갔던 곳’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곳 그리고 계속 되고 있는 곳’으로 기억될 수도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의 차이인 것 같다. ‘역사감수성’을 갖게 해준 이번 수업이 답사가 정말 좋았다!
4. 월정역
*월정역 소개*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졌던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다. 신탄리역 다음 역으로,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폐역 상태다.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다.
작고 아담한 월정역, 월정역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농지가 보이는데 그곳은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담벽(?)이 사라지고 농지를 마음껏 이용하고 월정역에 다시 기차가 달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이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5. 노동당사, 도피안사, 백마고지
*노동당사 소개*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그래서 벽이 굉장히 두껍게 지어졌다고).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였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다.
금정굴에서는 북한을 위해 부역했다고 죽이고, 노동당사에서는 반공활동 하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정말 힘들어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산’것이 아니라, ‘견뎌’온 것은 아니었을까.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곳에서 함께 한 친구들이 공연을 보여주었다. 서태지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친구들의 공연이 더 즐겁고 예뻤던 것 같다. 이렇게 후손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처리하고(금정굴유가족 분께서 이 일은 우리 대에서 끝내야한다고 했던 것과 같이), 문제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6. 저녁식사, 고석정
저녁의 고석정 모습을 살펴본 뒤 순두부찌개를 먹고, (배부르다고 하시면서도 다들 잘 드셨던...!ㅎㅎㅎ) 우리의 답사는... 끝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마이크를 전달 전달하며 서로의 소감을 나누고서야 그 어떤 답사보다 뿌듯한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신철교수님, 전보임간사님, 함께했던 모든 분들!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유익하게 잘~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