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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4강 - 문래동 예술인 마을, 용산 빈집 공동체 사례 보기 (5/7)
<공동체, 그 매력과 두려움> 4강 후기
누군가는 또 다시 누군가와 만나게, 그렇게 돼 있다.
아니라고? 음.... 아님, 말고.....
벌써 강의가 네 번째 시간을 맞았다. 첫날 품었던 공포심과 의문들... 그것들을 잘 기억하고 매 강의에 들어갔다. 그건 공식을 대입해서 풀어내야 하는 수학문제 그런 것의 일종이었다. 문제가 있으니, 해결 공식이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답 또한 있을 터이니, 강의 중간 중간 흘려질 공식들을 잘 잡아내서 멋지게 답을 맞춰내리라... 아, 이 범생이의 자세! ㅋㅋㅋ
근데 강의를 듣다보니 커다란, 실로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 ‘문제’라고 상정하고 시작했던 것들, 그것들이 사실은 그리 문제가 될 게 없더라는 것. 이러면 공식도 답도 구하기 어려워진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밖에서 내내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포심이 점점 부풀려졌던 것, 그것이 첫 강의 때 제시되었던 각종 문제와 의문들의 실체가 아니었나 한다. 개인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든지 침해당할 것이라는 뭇사람들의 우려 또한, ‘그럼 넌 함께 살지 않는 관계로 무한히 자유로우냐?’라는 반문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즉, 첫날 제시되었던 숱한 문제점들과 의문들의 성이 와르르 무너졌다는 게 지금까지 내 입장이다. 그 문제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어찌 보면 무척 단순하다. 공동체든 아니든, 사는 건 다 지지고 볶는 거, 딱 그 수준인 관계로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미워하고 욕하고 싸우고 뒷담화가 무성하다. 제일 겁나는 건 누군가 삐지는 일이고, 그동안도 문제가 많았고 또 지금도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욕먹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공동체도 그렇게 산다. 뭐 더 폼 날 것도 더 도덕인 삶일 것도 없다. 단, 좀 더 재밌기는 하다.
그러니, 강의를 들으며 발견해 낸 공식과 해답은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다. 그게 바로 사는 거라는 거! 공동체라고 다르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고 싶은 놈이 나서서 하면 되는 거고, 문제가 생기면 만나서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흘러간다. 아! 여기서 발견한 공동체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이것이다.
‘아님, 말고.... ’
이 너무도 적절한 삶의 자세 앞에서 지금 난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다.
근데, 이건 사실 2강 때, 성미산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들이다. 그리고 난 4강의 후기를 쓰기로 돼 있다. 그러니 이젠 그걸 쓰자.
문래동예술인마을 : 철공소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의 만남
예술가들은 어느 시대나 그렇게 가난한 걸까? 문래동예술인마을을 일군 한 무리의 예술가들도 예외 없이 가난했다. 작업공간이 필요한 그들은 문래동에 빈 공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불법적으로 점거하기 위해 들어왔다. 이른바 스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공간’이 지나치게 사유화되고, 있는 자들에게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스쾃의 문제의식이다.
근데, 와보니 점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임대료가 너무 쌌다. 20평 남짓한 공간이 보증금 200에 월세 20만원... 이러니 불법은 불필요해졌다.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예술해도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그렇게 예술가들은 문래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 너무도 많은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졌기에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재개발 문제를 가지고 지역민들과의 마찰도 있었다. 철공소 노동자들과 함께 산악회도 꾸리고 있다. 텃밭 사업도 하고 지역 아이들과 함께 문화예술 수업을 하기도 한다. ‘문래예술공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고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강의를 직접 해주셨던 김윤환(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씨는 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철공소 단지를 포함한 예술마을을 가꾸는 목적의식적 결사체인 예술생산자조합... 그런 조합이 만들어진다면 문래예술공장도 예술인들의 손에 의해서, 마을의 손에 의해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문래동에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개별적 관계망을 가지고 움직인다. 소통구조도 제각각이어서 생산의 시너지가 약하다. 이 네트워크를 조합의 형태로 묶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야 창작네트워크가 스스로 사이클을 만들어내 ‘문래동표 물건(작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이런 생각을 말하고 다니는 그는 예상대로 욕을 많이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의심한다. 너, 문래예술공장을 차지하고 싶은 거지?
공동체... 참 힘들다. 공동체에서는 나서서 무언가를 제안하는 사람들이 먼저 총 맞는 구조인듯...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속한 문래동예술인마을은 계속 무언가를 품고 있다. 그게 공룡알이든 메추리알이든, 품었으니 때가 되면 나올 것이다. 그때, 보러 가면 된다.
주거공동체 ‘빈집’ : 너무 급진적이야.... 혹시 공산당? ㅎㅎ
빈집의 이야기는... 듣는 내내 충격이었다.
우선, 그 탄생신화가 그렇다.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집을 사유화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내놓았다. 아니, 준 게 아니라,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필요하면 들어와서 함께 살자.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내가 사는 방을, 거실을, 특히 화장실을 내 준다는 것... 이 얼마나 급진적이 사유방식이란 말인가.
그렇게 살게 된 ‘빈집’은, 그래서 주인이 없다.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손님일 뿐이다. 게스트하우스? 뭐 비슷하긴 하지만 그곳에는 호스트가 있으니까 사실 굉장히 다르다. 주인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다만, 그 가족공동체가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가사노동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권위적인 가장의 존재가 없다는 것 그게 일반적인 가족공동체와 크게 다른 점이긴 하다.
식구들이 많으면 많은대로 한방에서 같이 자기도 하고 또 누군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형편껏 그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빈고라는 신협 비슷한 체계도 갖추고 있고 빈집에서 운영하는 가게도 있다. 함께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세미나를 만들기도 하고 마을잔치도 하고 연극공연도 하고 밴드 활동도 있다. 하긴, 저희 공동체엔 무슨 무슨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모여 있으니 맘만 맞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또 아니다 싶으면 바로 엎어질 수 도 있는 거지...
빈집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올해 갓 20살이 된 앳된 아가씨 둘이 와서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들이 했던 말들을 짧게 요약하면, 빈집에서 함께 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다, 가끔 부모님 집에 들르는데 그때마다 충격을 받는다, 냉장고를 3대나 두고 쓰다니, 또 웬 음식은 그렇게 많이 하고 버리는지...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발언은 들깨의 이야기였다. “처음에 들어올 때 갖고 있던 나 자신의 욕구, 욕망조차 변하더라구요.”
아니, 공동체가 대체 뭐길래 욕망의 구조까지 흔들어 놓는단 말인가...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사유화하기 힘든 것이 살림과 그 살림을 사는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주거까지 함께하는 공동체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빈집이 유독 튀어 보이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의 성격에 있다. 빈집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이들의 모임이 아니다.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해 뭉친 사람들도 아니다. 그저 살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사는 곳일 뿐이다. 계약기간 같은 것도 없다. 필요하면 들어와서 며칠 같이 살다가 불쑥 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와...진짜... 급진적인 공동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렇게도 공동체가 되는 거구나 싶다.
물론 이곳에서도 문제는 발생하고 다툼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미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대개가 소통이 있는 삶이다. 하지만 소통은 아름다운 내용의 대화만 오고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많은 대화가 다른 이 혹은 이토록 불완전한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웃을 일 만큼 싸우고 울 일도 있는 게 당연하다. 외려 그런 삶이 더 완전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는 게 그런 거니까 말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고, 모였다 흩어지고, 아니면 갈라서기도 하고...
결국 우리는 그런 다툼이 있을까봐 지레 겁먹고는, 아이고 그렇게 피곤하게 살 필요가 뭐 있어 하면서 이렇게 외롭게들 살고 있는 거다. 아니 단지 외로움의 차원이 아니라 뭔가 좀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손으로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죄다 흩어져버리는 모래 알갱이 같은 삶. 사진첩을 들추면 온통 내 피붙이 밖에는 다른 얼굴들이 없는 기괴한 삶 말이다. 그러면서 위로한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뭐...
근데 이 강의를 듣다보니 다들 그러고 사는 게 아니었다. 문래동도 그렇고 빈집도 그렇고 일단 몇몇의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그려나가니 그 만남이 자꾸 옆으로 번져만 갔다. 그렇게 우리네 삶은,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깨달음 속에서 나만 이렇게 게으른 삶을 사나 싶어 또 다시 겁이 난다.
그동안 나의 삶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같은 것은 그냥 마트에서 사다 먹는 삶이었다. 근데 다른 이들과 인생을 나누며 살아가는, 나의 시간과 공간이 타인의 그것 속에서 어우러지는 달콤쌉싸름한 쌈장 같은 삶은 마트에 안 판다. 겁이 나고 무서워도 이제 된장도 담그고 고추장도 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뭐라고 담그려는 시도를 해봐야 거기서 쌈장이 나올지 구더기가 나올지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더기가 나오면 발로 밟아 죽이면 된다. 아예 장독을 엎어버릴 수도 있는 거고.....
아니라고?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