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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이슬람 2강 - 오르한 파묵<내이름은 빨강> (4/4)
소설가란 개미와 같은 끈기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 사람이며 마법적이고 몽상적인 상상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자신의 인내심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 오르한 파묵 -
오르한 파묵은 터키 문학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참여연대 이슬람 문학 2번째 수업은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내 이름은 빨강’을 주제로 번역가 이난아 님이 진행해 주셨다.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의 전통 화풍인 세밀화에 대한 전문 지식과 세밀화의 역사 지식을 바탕에 깔고 오스만 시대에 실존한 세밀화가들의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과 고뇌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와 대치되는 베네치아 회화라는 새로운 화풍과 전통화풍의 속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배치하면서, 세밀화가의 살인사건의 비밀을 밝혀가는 추리기법을 채용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이 지어진 터키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터키는 기독교 문명이었던 비잔틴 제국에서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이슬람 문명으로 변모하는 큰 변화를 겪는다. 역사로 보면 유럽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국토의 97%가 아시아 대륙으로 되어 있는 터키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터키는 동양과 서양 문명 사이에 있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 이름을 빨강 또한 이런 동서양 문명의 충돌을 세밀화를 소재로 해서 그려내고 있다. 베네치아 화풍으로 언급되는 서양화의 터키유입이 결국 살인사건으로 까지 확대되고 있고 그것이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르한 파묵은 그러한 동양과 서양의 갈등을 통해 터키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나는 왜 나인가. 왜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 가 하는 물음이 깊숙이 녹아 있다. 이 소설도 역시 여러개의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분신 모티프를 활용한다.
세밀화는 원근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밀화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위한 것이기에 모든 것은 신의 눈으로, 신의 입장에서 그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그림이 그려지기까지 고군분투하는 세밀화가들의 모습도 잘 그려지고 있다. 작은 그림을 계속 보다가 결국 장님이 되고 말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는 그들의 열정은 ‘빨강’이라는 색으로 대표될 수 있다. 이 또한 세밀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난아 교수는 소설과 함께 오르한 파묵에 대한 개인적 성향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며 그가 얼마나 치밀한 사람인지,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한지 곁들였다. 이 소설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오르한 파묵이 치밀한 조사를 통해 전략적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소설은 작가의 성향에도 영향을 받았고 그가 살았던 터키 이스탄불에도 큰 영향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스탄불 가보셨어요? 겨울엔 절대 가지 마세요.”
그는 이스탄불의 우울함에 대해 설명했다. 그 곳은 허물어진 건물이 가득하고 석탄가루가 날리는, 위풍당당했던 도시의 열기만 남겨진 곳이라고 했다.
오르한 파묵은 이 곳에서 주변부에 있다는 분노에서 비롯된 상처와 고뇌를 안고, 어느 날엔가엔 우리가 쓴 것들이 읽히고 이해될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세밀화라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를 가지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그가 말했던 개미와 같은 끈기로 얻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소설에 놀라고 소설 뒤의 작가의 노력에 감동했던 흥미진진한 강의였다.
후기 : 최혜진 (수강생,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