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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인문학 3강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소설을 통해 본 우리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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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부터 가을학기 강좌 [집의 인문학 : 아파트 공화국에서 다시 집을 생각한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단순히 자산증식의 수단으로서의 집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삶이 엮이는 공간으로서 집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주택정책과 가족의 의미까지 보다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3강의 강의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이현정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거북아, 거북아! 행복 줄께, 아파트 다오?
2011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 가을강좌 ‘집의 인문학’은 작년부터 기획되었다고 한다. 의, 식, 주. 입고, 먹고, 거처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 중에서 주, 즉 집은 대한민국에서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여전하게 강하다. “주거문화, 부동산 문화를 변화시키는 씨앗이 되면 좋겠다”는 느티나무의 바람에 100% 동의하며 집의 인문학 강좌를 소개한다. 3강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가 맡았다.
여러모로 밀리는 ‘철수’다. 대세인 안철수, 외모는 배철수… (청중 웃음) 고등학교 때 꿈은 인문학도였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좀 했는데, 삼촌들이 길을 정해주었다. 얘는 이과라고. 근대 한국사회는 인간을 몇 가지 종류로 나눈다. 문과, 이과, 예체능과… (청중 웃음) 근대 세계가 목표하는 생산적인 인간이 된다. 왜 우리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은 학습하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통섭’하라고 해놓고 사회 체계는 그렇지 않다. 통섭하면 안 되는 구조다. 문과, 이과, 예체능계 각 영역만 가지라고 한다.
소설은 근대의 산물이다. 소설이 많이 읽히려면 문자 해독층이 많아야 하고, 인쇄술도 발달돼야 한다. 동시에 뿌려질 수 있는 운송수단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보는 소설의 시선으로 그 시대의 장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걸 문학지리학(문학작품 속에서 지리적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의식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살피는 “지리학적 현상으로서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장소와 공간에 이야기, 역사사실이 있어 고증의 켜를 올리는 것이다. 이 근처 통의동에 보안여관이라고 있다. 시인 서정주가 기거하면서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보안여관에 ‘시인 서정주가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얹히면서 그 시대의 어떤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1930년대부터 2006년까지 숙박시설로 운영된 종로구 통의동의 보안여관. 지금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네이버 블로그 르허기씨(blog.naver.com/lhaej57)
소설 속에 비친 아파트
대한민국의 56.8%가 아파트에 산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를 좋게 말하지 않는다. 소설도 아파트를 좋게 얘기하지 않는다. (아래부터는 소설 속에서 나타난 ‘아파트’ 모습이다. 강의 교재에 있는 순번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문장과 출처 일부는 편의상 생략했음을 알린다.)
1. “벗어날 수 없는 일상과 버릴 수 없는 욕망, 그 사이의 깊은 절망이 그들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서영인, ‘비약과 소멸의 꿈, 혹은 변신이야기’, 김윤영 소설집『타잔』에 대한 작품 해설, 300~301쪽)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와 동네 바꾸기가 청장년의 욕망이다. 여기서 절망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2. “… 엄마가 아들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 들고, 가족 아닌 사람들을 죄다 밀어내고 자기 가족만 배타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믿고....”(이남희,『세상의 친절』270쪽)
아파트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문 밖으로 내놓는다. 철문 안쪽은 우리 공간이고 밖은 나와 상관없는 공간이다. 일본은 화분을 내놓기 위해 산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에 들여다 놓고 우리만 보려고 산다. (자기만의) 전용공간 늘리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공용공간에는 관심이 없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은 전용공간에 충실하다. 그래서 이익을 가지려는 건축주가 어수룩한 땅 주인을 만나 다세대, 다가구 건축을 동의하게 만든다. 베란다 확장도 전용공간 늘리기다. ‘나만 좋으면 된다’면서 공공, 공유 공간에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 세상을 탓하는 것은 모순이다.
3. “… 내가 왜 영감이 물려준 버젓한 내 집을 두고 이 아래 위 줄행랑 같은 셋집에 드냐, 들길. 아이고 망했구나 망했어, …”(박완서 ‘울음소리’,『그 가을의 사흘동안』29~30쪽)
줄행랑이란 뜻은 줄줄이 늘어서 있는 행랑이다. 행랑은 대문 양쪽에 벌여 있는 노비나 하인들 주거하던 곳이다. 주거계층에서 상것이다. 늘어선 행랑처럼 아파트 형태가 획일적인 것이다.
4. “아파트에 살던 후배가 땅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하길래 덮어놓고 잘했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정작 어디다 집을 샀는지 …”(박완서『그 남자네 집』9~11쪽)
땅 집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본질적 차이를 말한다. 아파트를 ‘공중에 떠다니는 포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타운하우스, 블록형 단독주택, 펜트하우스 등이 관심을 받는다. 이들은 아스팔트든 땅이든 내가 관리할 땅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해가 있다. 요즘 카페와 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외부공간과 일상생활의 긴결성이 가까워졌다. 아파트 공간이 갖는 피로도의 분출구가 아닐까.
5. “… 끝없는 직각과 직선의 세계,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아프트가 모여 있는 곳이 … 공장을 중심으로 이룬 소왕국.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김채원 ‘푸른 미로’『지붕 밑의 바이올린』293쪽)
우리나라 도시의 공동주택에는 방음벽이 기본이다. 유럽 도시에서 방음벽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이미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산다. 이것은 사회에서의 분리를 의미한다. 아파트는 공간이 철저하게 나뉘어져, 외부공간과 교류하지 않는다.
6. “…이곳 아파트의 여자들은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순전히 남을 닮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나는 이런 닮음에의 싫증으로 진저리를 쳐 가면서도 … 철이 엄마나 딴 방 여자들이나 남보다 잘 살기 위해, 그러나 결과적으론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 내 남편이 18평짜리 아파트를 위해…”(박완서, ‘닮은 방들’『그 가을의 사흘동안』352쪽)
아파트 생활은 철저하게 닮아 있다. 주상복합은 더욱 요새다. 주차장, 사우나, 식당, 네일아트… 수직이동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8. “잔뜩 발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있는 아파트 덩어리는 다시 거대한 난수표가 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난수표.”(한수영『공허의 1/4』101쪽)
아파트는 무지무지 욕망이 팽배한 곳이다. 유지비용이 많이 나오는 타워팰리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더운 여름 날, 에어컨을 가동하는 복도가 시원하니까 각 집이 모든 문을 열고 살았다. 관리실에서 “제발 문 좀 닫으세요”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10. “강남의 외딴섬, 또는 강남의 음지로 불리는 수서의 임대아파트 단지는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근 주민들의 눈엣가시였다. 우리 학교는 …”(김윤영 ‘철가방의 추적작전’『루이뷔똥』121~123쪽)
수서동에 영구임대아파트가 있다. 이런 플랭카드가 붙은 적이 있다. “살기 좋은 수서에 왠 임대아파트?” “강남 일원동에 장묘공원 왠 말이냐?” 공간 격리가 사회적 격리가 된다. 삶이 갖는 기본 흐름이 있다. 피붙이를 보자.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한 가계를 이룬다. 이런 가계의 확대가 마을이고 우리 사회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들만 사는 노인 아파트가 있다. 젊은 애들은 출퇴근한다. 노인들만 모아놓고 살면 좋을까?
12. “… 나는 내 삶의 깊숙한 곳에 촌충처럼 들이박힌 무료함의 발톱을 빼낼 수가 없다.”(김인숙 ‘술레에게’『그 여자의 자서전』111~113쪽)
아파트, 연립주택의 일상을 표현했다. 조정래가 1973년 발표한 ‘비탈진 음지’ 소설을 보면 농부였던 아버지가 서울로 와 아파트를 보고 처음에는 학교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잘 먹고 사는 누군가의 창고라 생각한다. 나중에서야 아파트가 ‘집’이라고 알게 된다. 아파트를 3D로 잘라보자. 같은 위치, 공간에서 비슷한 일상을 산다.
13. “십오 층 복도식 아파트. 가슴팍까지 올라온 높이로 … 다 같이 시장으로부터 쑥 올라온 공중 한복판에 둥지를 마련하고 중력을 느끼지 못한 채 슬금슬금 떠다니는 포자들일 뿐이다.”(은미희 ‘편린, 그 무늬들’『만두 빚는 여자』174쪽)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넌 고향이 어디니?”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14. “… 줄여? 뭘 얼마나 줄여? 32평에서 더 줄일 게 뭐 있어. 몸을 팔았으면 팔았지 이건 절대 못 팔아!”(김윤영 ‘얼굴 없는 사나이’『타잔』59~60쪽)
얼굴 없는 사나이는 IMF가 배경이다. 전 세계 베이붐 세대 중 대한민국의 가장이 가장 불행하다. 자산의 대부분이 아파트다. 네덜란드는 자산 중 45%는 부동산이고 나머지는 다른 종류다. 융자 3억2천을 끼고 산 8억2천하던 집값이 6억2천으로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면 재산은 재산대로 줄고 이자는 이자대로 는다. 집값이 떨어지는 순간 중산층은 완전하게 무너진다. 한국의 이 중간층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다.
15. “… 찬국은 복처라는 소리에 한없이 낄낄거렸다. … 누구 망신을 시키지 못해 복부인 노릇을 하려고 야단을 쳤지만 …「우리가 무슨 복에 복처를 모시겠나.」처복도 없는 두 남자는 …”(박완서 ‘서울사람들’『박완서 소설전집15』300~301쪽)
복처(福妻), 복부인(福婦人), 처복(妻福)은 이 시대의 신조어다. 과거에 좋은 부인은 육아 잘 하고 부모님 잘 모시는 것이었다. 지금은 월급쟁이의 아내가 남편도 모르게 부동산 굴리는 게 좋은 부인이다.
24. “… 내 집에서의 풍경이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는 순간, 내 집의 풍경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아파트에서 아파트로의 이동. 여자들은 부엌으로, 남자들은 텔레비전 앞으로, 아이들은 …”(공선옥 ‘비오는 달밤’『명랑한 밤길』177쪽)
디시인사이드 부동산 갤러리에 ‘2011년 수도권 계급표’라는 그림파일이 있다. 아파트 평당 가격을 기준으로 계급을 9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황족으로 평당 3천만원 이상에서 사는 강남구다. 맨 아래는 노비, 가축이다. 아파트가 대한민국 신분과 경제 지렛대를 가늠하는 아이콘이다.
▲ 2011 수도권 계급표 사진=디시인사이드 부동산 갤러리
37. “… 소연이의 피아노 소리는 초라한 청운연립과 어울리지 않았다. 고급스런 아파트에서나 들려올 법한 소리였다. …”(조영아『여우야 여우야 뭐하니』181쪽)
다세대․다가구를 포장한 것이 ‘빌라’이다. 양재동 빌라는 초호화 저층 빌라이고 상계동 빌라는 다세대․다가구이다.
유럽 개념의 임대아파트는 없어
여러분은 ‘집’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와 내 가족과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단독주택에 살면서 달라진 점은 아파트 가격표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거다. 아파트, 돈이 지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행복한가? ‘돈’에 쫓아다니며 인생의 상당부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아파트라는 삶에서 공동생활, 커뮤니티 가능성이 있을까? 유럽에서의 아파트는 고급주택이 아니다. 사회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였다.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이라고 해서 관리, 소유가 공동이고 각 개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임대를 다르게 한다. 싱글 맘이고 성별이 다른 아이가 있다면 방3개짜리를 준다. 연 수입에 따라 내는 임대료도 다르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비용과 크기가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순수한 임대주택이 없다. 아마 영구임대주택정도?
아파트는 결국 우리가 살아야 하는 곳이다. 공급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애매하게 비난하는 것이 있지만 아파트 때문에 생활이 그렇게 어그러진 것도 아니다. 아파트 독과점이라 경쟁 상대가 없었다. 공동체는 자발성이 없으면 깨진다. 노인정, 부녀회는 뜻을 같이하는 몇 명이 장악하면 나머지가 떠난다.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참고
① 보안여관이 궁금하다면 클릭! ‘청와대 옆 보안여관을 아시나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haej57&logNo=10112650799
② 긴결 : 한글사전에서 ‘긴결’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다. 다만, 건축과 관련된 글에서 ‘긴결철물’ ‘긴결기구’란 형태로 등장한다. 긴결기구는 ‘구조기구’라고도 하는데, 목재 접합부를 단단히 결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철기구를 말한다(출처 : 네이버 블로그, 하람디자인). 긴결철물은 역시 건축에서 서로 맞물리지 않는 것의 일체화를 위해 ‘연결시키는 철물’을 의미했다. 위 글 4번에서 “외부공간과 일상생활의 긴결성이 가까워졌다”에서 ‘긴결성’이란 외부공간과 일상생활의 연결 정도, 혹은 일체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