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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근대한국인..> 1강 후기
7월 8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근대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근대 한반도인들의 러시아, 중국, 유럽 소국관에 관한 의식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남한인들의 자아의식에 각종 문제들을 제기해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1강 <러시아관>의 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신다음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근대한국인들이 갖은 '튀는' 인식, 러시아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의 세계관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근대 한국인의 대외 인식은 철저하게 위계적이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중화가 중심이었지만 불과 몇 년 새에 그 중심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바뀐다. 이는 근대 한국인들 세계 인식에서 잘 나타난다.
조선시대 한학자 윤치호의 일기에는 흑인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는데, 당시에 미국에서 흑인들의 위치는 가난하고 백인에게 대들 수 없는 하찮은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윤치호는 그들이 ‘영어를 쓰고 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철저히 중화 중심의 한학교육을 받은 윤치호조차 불과 몇 년 사이에 서열의 중심을 미국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또한 민경환은 영국에 가는 길에 거쳐야 했던 싱가포르에서 말레이 사람들을 보고 “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는 미개인들. 심지어 반인반수다” 라고 표현 했지만, 갓 태어난 백인 아기를 보고는 “참 영특하게 보이고 광채가 난다” 라고 기록했다.
중화 중심에서 미국중심으로 바뀐 세계질서에 대한 인식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렇듯 철저한 위계질서의 세계관을 가진 근대 한국인에게 러시아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근대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란?
근대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인식하는 시각에서 는 3가지가 존재한다.
① 자연의 나라. 정글, 밀림이 살아 있는 나라.
이광수의 작품을 보면, 시베리아나 바이칼 호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자연이 살아 있는 나라. 울창한 정글이나 숲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조선시대 여류작가 백신애의 작품에서도 러시아는 방랑의 나라, 원시림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②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나라
이태준, 백남훈의 해방직후 소련 기록을 보면, 러시아는 문명의 최전선이라고 정의했다. 이 시각은 비단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상당수도 러시아를 문명의 최전선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시사잡지인 삼천리 잡지에서는 30년대 초반 기획특집으로 <우리는 아메리카의 문명을 취할까, 러시아의 문명을 취할까>라는 주제로 기사를 썼다. 이는 러시아의 문명이 아메리카와도 견줄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정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러시아는 일면 미국보다 나은 문명이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③ 한국인들과 묘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나라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백계 망명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곳이었다. 하얼빈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많이 가던 여행지 였는데, 러시아 백계노인들이 나라 잃은 슬픔, 애수 등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 일제시대를 겪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비슷한 동질감을 가졌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같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어서 러시아는 묘하게 한국인들과 닮은 나라로 인식 되곤 했다.
이 세 가지 시각으로 보아, 철저하게 위계 질서적인 한국인들의 세계관에서 러시아의 위치는 상당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문명인식은 어떠했는가?
이제까지 러시아가 한국인들에게 딱 한가지로 분류 될 수 없는 위치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러시아 근대 문명의 핵심을 알아보자.
① 열강
한성순보에서는 러시아를 조선을 잡아 먹을 수 있는 무서운 나라라고 표현되었다. 유길준은 러시아 군대에 대한 과장된 통계치를 들어 막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라고 인식,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37년 이후로, 러시아는 열강이긴 해도 엄밀히 말하면 적국이었다. 우파 지식인은 소련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 하고, 러시아 또는 소련을 악한 열강으로 파악하였다. 여기에 러시아 백계노인들까지 가담해 대일본제국 반공당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소련은 더욱 악한 열강으로 인식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전향을 할 경우엔 적색 제국주의, 소련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드러내야 했다고 한다.
② 후진국
러일전쟁때 친일파들은 러시아를 후진국이라고 인식 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때까지 러시아는 절대 왕정 국가였다. 공화제나 입헌군주제가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라고 하여 무매한 나라로 인식이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지닌 러시아를 바꾸기 위해서 허무당이 활약을 하였고, 이에 일본의 진보파들은 러시아 혁명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한국인들도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된 측면이나, 토지제도 관련 평가, 민족자치 법률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특히 공산주의 교육학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이어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는 이것을 집중 취재하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소련에 대한 나름의 동경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30년대에 우파 지식인이나 자유지식인들 일부는 소련의 선진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여전히 후진국으로 인지했다. 이는 나희석이 모스크바를 여행하고 쓴 글에서 모스크바의 사람들은 너저분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며 침울하고 우울한 회색의 도시라고 묘사한 것에서 확인된다.
③ 문학과 예술의 나라
최남선은 톨스토이가 죽자 잡지에 ‘토옹의 소고’ 라는 글을 쓰고 톨스토이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광수도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고 최승희 역시, 훗날 회고록에서 러시아에 가서 무용을 공부 하고 싶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는 근대 한국인들이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살펴 본바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에게 ‘다양한 관점과 인식을 가져다 준 독특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한국인들에게 러시아의 이미지는 계속적으로 변해왔다. 한국을 침략할 수 있는 열강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후진국, 나라 잃은 백계 노인들에게는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민족이기도 했다. 또한 높은 수준의 문학과 예술의 나라라는 인식도 있다.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들의 위계적 세계관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며, 위계 질서적인 한국인의 세계관에 균열을 준 나라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평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