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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복지국가인가 (복지국가 2강 후기)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2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한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또 누가 어느 시점에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숫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김연명 교수는 한국의 2011년 사회복지비 구성 도표를 통해 정부가 주장하는 복지국가의 실체(?)를 명쾌하게 드러내었다. 다양한 수치들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들이 강의 내내 이어져 갔다.
복지예산, 역대최고?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연말,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정부의 복지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예산은 역대 최대”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참조한 정부재정 기준 한국의 사회복지비 구성이다. 이를 살펴보면, 2011년 정부재정 중 복지재정은 모두 86조3천929억원 가량이다. 전체 재정이 309조원 가량 이므로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 비율은 28% 가량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오롯이 한국의 복지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의 지출 구성비를 살펴보자. 예전에 영세민들에게 쌀과 생활비를 주던 생활보호제도를 말한다. 2011년 예산액이 7조2천억원 가량이다. 이중 4조원 정도는 절대빈곤층인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 돌아간다. 그 대상자는 4인 가족 기준 소득 160만원 미만이다. 7조2천억원 중에서 4조원 가량은 의료비이고 나머지 3조2천억원 가량이 생계비로 나간다.
이 돈이 과연 많은 것일까. 일단 그 규모는 복지비 전체 규모에서 비율로 크다. 대상자 규모는 160만명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통계분석을 해보면 대략 400만 정도가 절대빈곤층으로 나온다. 160만명을 제외한 240만명은 소위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상황이 가지는 특수한 특징들은 의료비용과 기타 사회정책 지출이 .크고 노인에 대한 지출이 작은 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는 형태인걸까? 그렇지 않다.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일 뿐이다. 한국은 담보형태를 제외한 주택부문 전혀 지출을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복지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금지출, 임대주택, 건강보험료 등이다. 정부의 산출은 86조원 가량이지만 여기서 차감과 추가 요소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복지비 국가 지출은 100조원(30%) 가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별 의미가 없다. 복지재정을 이야기 할 때 어느 항목을 집어넣고, 빼느냐에 따라 규모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86조원이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의 28%를 차지한 것으로 보면 복지 재정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은 국내용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GDP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나누면 우리나라는 7.5% 정도이다.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10년은 약 10%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28%냐, 7.5%, 10%냐는 분모의 차이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냐에 따른 차이인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위와 같은 언급은 그렇게 인식할 만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수준의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
무엇을 복지국가라고 하는가
복지국가에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우선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minimum)이 보장되는가’이다. 현대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드는데 기여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2)의 기본 사상이기도 한 이 지표는 그 사회가 이룩한 문명의 수준에서 최저의 삶을 공공부문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소득, 의료, 주거, 교육 등에서 최저생계를 보장(생존권)하고,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제공(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표에 근거한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럽과 같은 형태의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세팅은 됐다는 것이 김연명 교수의 주장이다.
두 번째 지표는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가 구비되어 있는가’이다. 노령, 질병, 산재, 실업, 출산, 빈곤 등에 대한 위험 대비책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국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웬만한 사회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질의 차이가 있다. 사각지대가 많고 급여수준이 높이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현금수당 및 사회서비스 제도가 약하다. 선진국 중 아동수당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세 번째 지표는 ‘복지비 지출은 어느 정도 되는가’이다.
GDP 3%, 5% 정도면 복지국가의 시작단계, 20%면 성숙된 복지국가란 설이 있다. 20% 이상 국가는 전 세계에서 10개국 내외이다. 김연명 교수는 개인적으로 5%가 넘고 제도가 셋팅되면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제도가 셋팅되면 자기발전논리에 따라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난다. 2000년 초반 건강보험이 10조원 규모였는데 10년 만에 30조원이 된 경우만 봐도 그렇다. 복지제도 성숙으로 인한 자동증가 가능성이 높다. 특기 연금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10%를 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국가인가?
한국이 복지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 꽤 오래도록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이 초기 복지국가의 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 하는 국내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일본 동경대학 다케가와쇼고 교수는 1998년 이후 한국은 복지국가 형성기에 들어갔다는 입장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미쉬라 라메스 교수는 한국이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라고 진단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한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새로운 복지프로그램이 도입되지 않아도 인구고령화와 복지프로그램의 성숙으로, 끊임없이 팽창하게 될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an embryonic welfare state)이다”고 말했다.
국내학자들 중에서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와 성균관대 홍경준 교수가 복지국가의 태동 단계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돌입했으며 복지제도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사회적 요인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복지국가’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이지만, 복지국가를 향한 시동은 이미 걸었다고 판단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에 덧붙여 후진국에서 복지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을 말한 바 있다. 아시아권에서 복지국가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고, 200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한국의 복지제도 발전 수준은 아시아권에서 일본 다음의 위치를 차지한 점,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최근에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복지의 팽창속도가 급격히 진행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한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출발해 복지국가로 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의 학자들 가운데 홍콩대학교의 이안 홀리데이 교수는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로 이동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 개혁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이것이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벗어나 복지국가로의 체제이동(paradigm shift)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넘어섰다. 그리고 생산주의 복지체제론은 한국 복지체제의 새로운 발전적 흐름을 해석하는데 이론적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맞받은 바 있다.
이같은 논쟁에 대해 맨체스터 대학의 폴 와일딩 교수는 한국은 복지국가적 특성과 비복지국가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중립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발전은 인상적이며, 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생산주의적 복지체제와 복지국가의 두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일종의 혼합형”이라고 밝혔다.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들
김 교수는 에스핑 엔더슨의 복지에 관련된 개념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복지국가를 유형화는 것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였다. 유형화된 틀을 통해 특징을 잡아낼 수 있게 되며 이것은 10년 뒤 우리나라가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밑바탕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에스핑 앤더슨은 복지체제(welfare regime)란 국가, 시장, 그리고 가계(가족) 사이에서 복지생산이 배분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복지체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의 우선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이다. 탈상품화란 복지를 통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업수당, 연금 등을 사회적 위험에 노출됐을 때 시장에서 노동력을 거래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수당이 월급의 90%라면 노동자는 실업을 걱정하지 않는다. 사용주도 해고에 부담이 적다. 탈상품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동자들이 시장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 탈상품화가 높으냐 아니냐는 노동자들에게 중요하므로 그 사회의 계급관계를 판별하는 중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 다음 계층화(stratification)이다. 계층화는 복지제도가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조합주의가 대표적이다. 직종별 사회보험방식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복지제도가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사학연금을 받는 교원들은 241만원(2008), 공무원연금은 210만원(2008)을 받는데 반해 국민연금은 26만원(2010)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은퇴 이후에도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복지제도라고 하면 빈곤을 줄이고 계층을 통합하는 것이지만 어떤 복지제도는 계층을 나누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공공부조를 받는 층과 일반제도의 수혜를 받는 계층간의 구별이 보이는 이중주의(dualism)도 계층화에 포함된다.
일단 이 두 가지 분류를 유형화해 OECD 20여개 국가에 대비해 보니, 그룹을 형성했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고, 계층화 유형이 없는 나라는 스웨덴/핀란드가 대표적이었다. 이를 사민주의 복지체제(Social Democratic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직종별 사회보험제도와 같은 지위차별화(status segmentation)로 정착된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이었다. 이를 보수주의/조합주의 복지체제(Conservative/corporatist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낮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공공부조 수혜자와 일반제도 수혜자로 나뉘는 이중주의(dualism)가 정착한 나라는 미국/영국 등이었다. 이를 자유주의 복지체제(Liberal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이후 탈가족주의(defamilialization)가 복지체제 분류의 마지막 기준으로 포함된다.
탈가족주의란 가족의 보호 영역을 국가화 시장이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를 통한 탈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가 공공보육시설을 통해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을 통한 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를 시장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공보육이 중심이었다. 중부/남유럽 국가들은 보육을 가족 내에서 해결하며 여성 취업률이 대단히 낮다. 영미국가들은 민간보육시설이 중심이었다. 탈가족주의 지표를 통계 분석하니 역시 세가지 유형으로 그룹핑 됐다. 북유럽은 공공보육, 중부/남유럽은 가족이, 영미는 시장이었다. 이 지표를 앞서 지표에 넣어도 세 가지 유형 구분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복지국가의 세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어떤 모델일까? 또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유형으로 가게 될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하고 상이한 주장들을 펼친다. 조영훈 교수는 “한국은 영국,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복지국가로 이동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공부조가 발달하면서 민간보험시장 역시 발달한 특징을 지목한 것이다. 실제로 국내 4대 보험 총액은 약 65조원, 개인보험 역시 60조원에 이른다. 민간보험의 팽창 속도는 세계 5위권이다. 공공보험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찬섭 교수는 “한국은 유럽 대륙의 독일과 같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이 드러나 있고, 이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이 보이는 등 계층화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여러 복지체제의 특징이 결합된 혼합형적 특징을 가질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일어나는 4대 보험 통합 논의 등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가까운 반면 복지 사각지대 등의 계층화도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남미형 복지체제로 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때문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 중 5할에 이른다면, 이들은 퇴직금을 받는 비율도 정규직의 20%에 불과하고, 10명중 6명은 실업수당도 못 받으며, 절반은 직장 국민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일등시민과 이등시민으로 갈라져 노동시장 핵심계층은 복지혜택, 나머지 집단은 복지에서 배제되는 ‘분리된 복지국가’(divided welfare state)갈 가능성이 있다. 스웨덴은 고사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남미로만 안가도 다행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국가 초기 단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야당의 무상복지가 논쟁이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야당의 주장대로 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주택에 대학 등록금 반값이 실현된다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집권하면, 복지가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이므로 안 할 수는 없지만 다른 행로를 찾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지금 한국 사회는 복지논쟁이 붙어서 누가, 어떤 세력이 집권하던지 복지 정책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유권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다면,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남미형으로 갈 수도 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2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한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또 누가 어느 시점에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숫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김연명 교수는 한국의 2011년 사회복지비 구성 도표를 통해 정부가 주장하는 복지국가의 실체(?)를 명쾌하게 드러내었다. 다양한 수치들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들이 강의 내내 이어져 갔다.
복지예산, 역대최고?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연말,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정부의 복지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예산은 역대 최대”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참조한 정부재정 기준 한국의 사회복지비 구성이다. 이를 살펴보면, 2011년 정부재정 중 복지재정은 모두 86조3천929억원 가량이다. 전체 재정이 309조원 가량 이므로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 비율은 28% 가량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오롯이 한국의 복지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의 지출 구성비를 살펴보자. 예전에 영세민들에게 쌀과 생활비를 주던 생활보호제도를 말한다. 2011년 예산액이 7조2천억원 가량이다. 이중 4조원 정도는 절대빈곤층인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 돌아간다. 그 대상자는 4인 가족 기준 소득 160만원 미만이다. 7조2천억원 중에서 4조원 가량은 의료비이고 나머지 3조2천억원 가량이 생계비로 나간다.
이 돈이 과연 많은 것일까. 일단 그 규모는 복지비 전체 규모에서 비율로 크다. 대상자 규모는 160만명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통계분석을 해보면 대략 400만 정도가 절대빈곤층으로 나온다. 160만명을 제외한 240만명은 소위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상황이 가지는 특수한 특징들은 의료비용과 기타 사회정책 지출이 .크고 노인에 대한 지출이 작은 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는 형태인걸까? 그렇지 않다.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일 뿐이다. 한국은 담보형태를 제외한 주택부문 전혀 지출을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복지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금지출, 임대주택, 건강보험료 등이다. 정부의 산출은 86조원 가량이지만 여기서 차감과 추가 요소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복지비 국가 지출은 100조원(30%) 가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별 의미가 없다. 복지재정을 이야기 할 때 어느 항목을 집어넣고, 빼느냐에 따라 규모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86조원이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의 28%를 차지한 것으로 보면 복지 재정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은 국내용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GDP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나누면 우리나라는 7.5% 정도이다.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10년은 약 10%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28%냐, 7.5%, 10%냐는 분모의 차이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냐에 따른 차이인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위와 같은 언급은 그렇게 인식할 만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수준의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
무엇을 복지국가라고 하는가
복지국가에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우선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minimum)이 보장되는가’이다. 현대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드는데 기여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2)의 기본 사상이기도 한 이 지표는 그 사회가 이룩한 문명의 수준에서 최저의 삶을 공공부문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소득, 의료, 주거, 교육 등에서 최저생계를 보장(생존권)하고,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제공(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표에 근거한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럽과 같은 형태의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세팅은 됐다는 것이 김연명 교수의 주장이다.
두 번째 지표는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가 구비되어 있는가’이다. 노령, 질병, 산재, 실업, 출산, 빈곤 등에 대한 위험 대비책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국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웬만한 사회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질의 차이가 있다. 사각지대가 많고 급여수준이 높이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현금수당 및 사회서비스 제도가 약하다. 선진국 중 아동수당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세 번째 지표는 ‘복지비 지출은 어느 정도 되는가’이다.
GDP 3%, 5% 정도면 복지국가의 시작단계, 20%면 성숙된 복지국가란 설이 있다. 20% 이상 국가는 전 세계에서 10개국 내외이다. 김연명 교수는 개인적으로 5%가 넘고 제도가 셋팅되면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제도가 셋팅되면 자기발전논리에 따라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난다. 2000년 초반 건강보험이 10조원 규모였는데 10년 만에 30조원이 된 경우만 봐도 그렇다. 복지제도 성숙으로 인한 자동증가 가능성이 높다. 특기 연금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10%를 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국가인가?
한국이 복지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 꽤 오래도록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이 초기 복지국가의 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 하는 국내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일본 동경대학 다케가와쇼고 교수는 1998년 이후 한국은 복지국가 형성기에 들어갔다는 입장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미쉬라 라메스 교수는 한국이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라고 진단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한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새로운 복지프로그램이 도입되지 않아도 인구고령화와 복지프로그램의 성숙으로, 끊임없이 팽창하게 될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an embryonic welfare state)이다”고 말했다.
국내학자들 중에서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와 성균관대 홍경준 교수가 복지국가의 태동 단계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돌입했으며 복지제도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사회적 요인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복지국가’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이지만, 복지국가를 향한 시동은 이미 걸었다고 판단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에 덧붙여 후진국에서 복지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을 말한 바 있다. 아시아권에서 복지국가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고, 200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한국의 복지제도 발전 수준은 아시아권에서 일본 다음의 위치를 차지한 점,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최근에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복지의 팽창속도가 급격히 진행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한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출발해 복지국가로 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의 학자들 가운데 홍콩대학교의 이안 홀리데이 교수는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로 이동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 개혁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이것이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벗어나 복지국가로의 체제이동(paradigm shift)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넘어섰다. 그리고 생산주의 복지체제론은 한국 복지체제의 새로운 발전적 흐름을 해석하는데 이론적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맞받은 바 있다.
이같은 논쟁에 대해 맨체스터 대학의 폴 와일딩 교수는 한국은 복지국가적 특성과 비복지국가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중립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발전은 인상적이며, 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생산주의적 복지체제와 복지국가의 두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일종의 혼합형”이라고 밝혔다.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들
김 교수는 에스핑 엔더슨의 복지에 관련된 개념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복지국가를 유형화는 것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였다. 유형화된 틀을 통해 특징을 잡아낼 수 있게 되며 이것은 10년 뒤 우리나라가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밑바탕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에스핑 앤더슨은 복지체제(welfare regime)란 국가, 시장, 그리고 가계(가족) 사이에서 복지생산이 배분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복지체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의 우선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이다. 탈상품화란 복지를 통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업수당, 연금 등을 사회적 위험에 노출됐을 때 시장에서 노동력을 거래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수당이 월급의 90%라면 노동자는 실업을 걱정하지 않는다. 사용주도 해고에 부담이 적다. 탈상품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동자들이 시장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 탈상품화가 높으냐 아니냐는 노동자들에게 중요하므로 그 사회의 계급관계를 판별하는 중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 다음 계층화(stratification)이다. 계층화는 복지제도가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조합주의가 대표적이다. 직종별 사회보험방식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복지제도가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사학연금을 받는 교원들은 241만원(2008), 공무원연금은 210만원(2008)을 받는데 반해 국민연금은 26만원(2010)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은퇴 이후에도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복지제도라고 하면 빈곤을 줄이고 계층을 통합하는 것이지만 어떤 복지제도는 계층을 나누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공공부조를 받는 층과 일반제도의 수혜를 받는 계층간의 구별이 보이는 이중주의(dualism)도 계층화에 포함된다.
일단 이 두 가지 분류를 유형화해 OECD 20여개 국가에 대비해 보니, 그룹을 형성했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고, 계층화 유형이 없는 나라는 스웨덴/핀란드가 대표적이었다. 이를 사민주의 복지체제(Social Democratic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직종별 사회보험제도와 같은 지위차별화(status segmentation)로 정착된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이었다. 이를 보수주의/조합주의 복지체제(Conservative/corporatist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낮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공공부조 수혜자와 일반제도 수혜자로 나뉘는 이중주의(dualism)가 정착한 나라는 미국/영국 등이었다. 이를 자유주의 복지체제(Liberal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이후 탈가족주의(defamilialization)가 복지체제 분류의 마지막 기준으로 포함된다.
탈가족주의란 가족의 보호 영역을 국가화 시장이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를 통한 탈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가 공공보육시설을 통해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을 통한 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를 시장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공보육이 중심이었다. 중부/남유럽 국가들은 보육을 가족 내에서 해결하며 여성 취업률이 대단히 낮다. 영미국가들은 민간보육시설이 중심이었다. 탈가족주의 지표를 통계 분석하니 역시 세가지 유형으로 그룹핑 됐다. 북유럽은 공공보육, 중부/남유럽은 가족이, 영미는 시장이었다. 이 지표를 앞서 지표에 넣어도 세 가지 유형 구분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복지국가의 세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어떤 모델일까? 또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유형으로 가게 될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하고 상이한 주장들을 펼친다. 조영훈 교수는 “한국은 영국,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복지국가로 이동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공부조가 발달하면서 민간보험시장 역시 발달한 특징을 지목한 것이다. 실제로 국내 4대 보험 총액은 약 65조원, 개인보험 역시 60조원에 이른다. 민간보험의 팽창 속도는 세계 5위권이다. 공공보험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찬섭 교수는 “한국은 유럽 대륙의 독일과 같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이 드러나 있고, 이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이 보이는 등 계층화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여러 복지체제의 특징이 결합된 혼합형적 특징을 가질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일어나는 4대 보험 통합 논의 등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가까운 반면 복지 사각지대 등의 계층화도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남미형 복지체제로 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때문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 중 5할에 이른다면, 이들은 퇴직금을 받는 비율도 정규직의 20%에 불과하고, 10명중 6명은 실업수당도 못 받으며, 절반은 직장 국민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일등시민과 이등시민으로 갈라져 노동시장 핵심계층은 복지혜택, 나머지 집단은 복지에서 배제되는 ‘분리된 복지국가’(divided welfare state)갈 가능성이 있다. 스웨덴은 고사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남미로만 안가도 다행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국가 초기 단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야당의 무상복지가 논쟁이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야당의 주장대로 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주택에 대학 등록금 반값이 실현된다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집권하면, 복지가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이므로 안 할 수는 없지만 다른 행로를 찾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지금 한국 사회는 복지논쟁이 붙어서 누가, 어떤 세력이 집권하던지 복지 정책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유권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다면,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남미형으로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