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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7/13(금) 박노자가 말하는 세계 속의 North Korea - 2강 북한의 세계 자본주의 관계사
‘북한’에 대한 잘못되거나 왜곡된 이미지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북한 내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로 있었을까요? 박노자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북한의 개발모델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우려되는 점에 대해 강의해주셨습니다.
1970년대와 적색 개발주의
북한의 개발 모델은 국내 수요에 맞춰진 균형 잡힌 각 부분의 내재·자립적 발전과 비교적 평등한 사회 건설 지향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낸 모델이 《적색 개발주의》였습니다. 중공업에 우위를 두었지만, 정밀기계 생산을 비롯한 기술 발전에 집중 투자를 했으며, 1970년대까지 북한의 1인당 총국민생산량은 산업화로 인해 꾸준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개발 모델은 경제 영토와 대외 경쟁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외부로의 자본이입이 정치적으로 제한된 상황이고, 더불어 남한과 군비 경쟁을 하려면? 소비억제를 할 수 밖에 없죠. 이는 생산력 저하를 시작으로 악순환이 생겼고, 위기극복을 위해 점차적으로 외국자본의 개방에서 찾으려는 선택을 했습니다.
외국 자본 유치와 함께한 1980~2000년대
1980년대로 들어오면 외국자본을 제한적으로 개방했습니다. 대외신용 상실해서 차관 도입은 어렵지, 화교 자본 및 일본·서방 자본은 중국에 투자해서 호황인 것이 시대적 상황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눈여겨 볼 건 1984년에 제정한 《합영법》입니다. 간단히 말해 ‘합작회사’에 관한 법률입니다. 이러한 법 제정은 서방자본과 합작투자 가능성을 봤지만,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체제에서의 이윤 창출 및 송금의 가능성 등의 이유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속에서 90년대는 중국의 경제특구(자유경제무역지대) 전략을 썼습니다. 나진-선봉 경제 무역 지대(1991)를 중심으로 특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외국자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조건이었지만, 대일 수교의 실패, 핵위기로 인해 자본 유치는 되지 않았습니다. 즉, 중국과 같은 자본화는 북한에선 대외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게 알게 된 거죠.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남북한 관계가 해빙되면서 《제한된 자본화》를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중국회사가 들어오면서 해외로부터의 자본·기술 유입은 경제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엔 대외 환경이 경색되면서 중국이 대북 무역·투자국 위치에 독점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북한은 외국의 자본이 없으면 발전을 할 수 없는 개발 과정에 있습니다. 결국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고, 외부자본과 축적된 기술이 상호작용이 되는 지도 의문이죠. 더군다나 격차 사회의 정착, 중국 본위의 경제권 속 북한의 역할에 대한 위험성도 다분합니다. 지금까지의 북한의 자본주의 관계사를 보면서 남한은 북한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에서 정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