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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3/27(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4강 <연금> _ 가난한 노인이 넘치는 나라
3월 27일, 주진형 선생님의 네 번째 경제학 특강이 시작되었다. 4주차 강의의 주제는 <연금>이었다. 주진형 선생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잘못된 설계로 인해 많은 오해가 생기고 구조적인 문제가 심화되고 있었다.
1.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흔한 오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이 되어있고 매달 소득분위에 따른 금액을 납부하면서 나중에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말씀하신다. 원래 국민연금이라는 제도의 목적은 서민들에게 노후 대책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산 활동을 하지 않게 된 노인들이 경제적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일정 금액을 통해 생활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또한 직장인들이 현재의 내가 열심히 벌어서 낸 돈을 나중에 노인이 되어 돌려받는 것이 ‘국민연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또한 큰 착각이라고 하셨다. 첫째, 애초에 내가 낸 돈보다 더 많이 받게 되어 있고, 둘째, ‘내 돈을 내가 돌려받는’ 개념이 아니라 ‘현 세대의 생산인구가 내는 세금으로 비생산인구(노인)를 부양’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연금 제도는 도입 시기에 정책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설계되었기 때문에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제도의 잘못된 설계는 공적연금기금의 운용 측면에서도 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공적연금을 위해 거대한 기금을 조성해놓은 상태인데, 문제는 돈을 쌓아만 두고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적연금의 운용방식에는 가입자에게 지급해야할 돈을 100% 적립해놓는 완전적립방식,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의 일부만 적립된 경우로 “거대한 기금을 가진 부과방식”인 부분적립방식,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이 전혀 적립되지 않은 채 기금 없이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완전부과방식이 있다. 완전적립방식은 칠레가 유일한 사례이며 한국과 미국, 일본 등 5개국이 부분적립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밖에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완전부과방식에 해당된다. 즉 대부분의 나라가 돈을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걷은 세금으로 노인인구를 부양하고 있다.
2. 풍요 속의 빈곤 – 노인빈곤율과 세대 착취론의 덫
201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빈곤율은 약 15%였으며 그 중에서도 노인계층의 빈곤율은 45%로 OECD 평균 노인 빈곤율(13.3%)을 3배 이상 웃돌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부분적립방식을 통해 거대한 공적연금기금을 조성하고 있음에도, 이 돈을 노인빈곤 해결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어마어마한 기금을 쌓아두고 제대로 쓰지를 않으니 노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의 2010년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액은 0.9%에 불과했다. 2050년에는 9.8% 정도를 지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일본이 2010년에 지출한 비율(9.7%)과 같다. 꾸준히 지급 비율을 늘려온 결과 일본의 2011년 노인 빈곤율은 한국의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는 2050년에 일본과 한국의 노인 인구비율이 각각 39.6%, 38.2%로 거의 같아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훨씬 먼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일본을 대한민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음에도, 공적연금의 지출 측면에서 인구 구조의 변화를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심각한 노인 빈곤 사회에서도 연금 지급율을 높이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부담 저복지 기조의 제도 내에서 내가 내는 세금이 비생산인구를 부양하는 데에 지출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내면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앞에서 밝혔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연금을 자기가 낸 돈을 다시 돌려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노후대책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세금을 내는 생산인구(부양의무를 진 사람들)와 비생산인구(부양 받는 사람들, 즉 노인) 간에 빈곤으로부터의 보호와 상생이라는 연대감이 형성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그 결과는 노인이 젊은이들을 착취한다는 세대 착취론으로 발전했다. 주진형 선생님께서는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복지부장관마저도 이러한 세대 착취론에 속아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며 ‘유시민의 저주’라고 표현하셨다. 또 한국은 특이하게도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을 쓸데없이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하셨다. 실제로 세대 착취론과 기금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맞물리면서 2007년 유시민 장관이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연금개혁을 단행한 이후, 기금 고갈 예정 시기는 2060년으로 예정(2047년)보다 13년가량 늦춰졌지만 노인 빈곤율은 급등했다.
3. 국민연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수준이 저조하니 노인 빈곤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국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중요한 것은 소득 대체율이나 기금 고갈 따위가 아니라 당장의 노인 빈곤 해결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관료들이나 정책 담당자들은 다들 기금이 고갈되고 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미 연금 기금이 고갈된 나라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잘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애초에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아직 생산인구에 속해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비생산인구로 전환되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되면 공적연금 기금의 고갈은 언제가 되었든 대한민국 정부가 반드시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노인 빈곤을 방치하고 기초연금 지급율이나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인구 구조에 맞춰 납부율, 즉 세금을 늘리는 것이 우선 아닐까?
이 문제에 발언권이 있는 이들 대다수가 당장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사학연금, 관료들은 공무원 연금이 있다.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인 국민연금은 사실상 기초연금 버전2에 불과하니 국민들을 설득하여 납부율을 높이는 것보다 고육지책으로 지급율을 낮추는 데에 더 큰 동기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에게 증세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복지 국가로의 이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우리는 원래 우리가 연금제도를 만들었던 이유를 다시 고민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GDP대비 기초노령연금 지출의 비율을 늘리고,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 또한 높여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납부율을 올려야 한다. 세대 간 상생과 연대의 구조를 정착시키고 그러한 돌봄의 문화가 당연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낸 돈, 내가 돌려받는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내가 제공한 부양 서비스, 나도 돌려받는다.’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