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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5/15(화) 김만권의 정치철학_'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
5월 15일 진행된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강의에 이어 기억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하였고, 기억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참여하는 방식으로써 시민불복종과 혁명을 다루었습니다.
우리, 데모스는 통치하는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주권을 지닌 국민 개개인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주권자로 정체화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집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을 ‘구경꾼 민주주의’로 설명하시며,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는 정치 엘리트가 남용하는 정치가 만연하며 시민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치를 시민의 일상에서 분리하였기에, ‘도망자 민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시민불복종이나 혁명과 같은 일상을 벗어난 순간에 주권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시민들은 다시 정치와 분리된 일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초일상의 정치
일상의 제도권 안에서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선거로 극히 제한적입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는 일상의 제도권 밖에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이자 혁명과 시민불복종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일상의 정치가 정치 엘리트, 관료적 정당, 완고한 제도적 절차의 특징을 지니는 반면, 초일상의 정치는 높은 수준의 집단 동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다양한 공론장의 출현 등을 포함합니다. 더불어 초일상의 정치 시기에는 초법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불복종은 일부의 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법정신을 지키려는 행위이며, 혁명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기에 초일상의 정치에는 일상에서 통용된 합법과 불법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법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며, 변화 자체가 초법적 행위의 결과인 것입니다. 강좌에서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 행위의 결과이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에 나오는 구절도 함께 읽었습니다.
시민불복종
시민불복종은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right of dissent) 중 핵심적인 것으로 법정신을 향한 근본적인 호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불복종의 4가지 조건에 대하여 설명하셨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정체 전체에 미치는 공공사여야 한다.
두 번째, 다수의 동료 시민의 일반적 정의감을 향한 소수자들의 호소이다.
세 번째, 비폭력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비폭력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참여의 지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믿음은 불복종의 목적이 폭력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를 통한 변화라는 정치적 믿음과 헌법이 비폭력을 지지한다는 헌법적 믿음, 그리고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다.
네 번째. 시민 불복종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법률 위반은 결코 은밀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시민 불복종은 일상의 시간 내에 존재하는 초일상의 정치로 정당한 이견의 권리,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라는 것입니다.
혁명과 헌법 : 폭력 없는 혁명은 불가능한가.
한나 아렌트는 헌법은 ‘전적으로 혁명의 소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혁명은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초일상의 정치이지만 왠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변화보다는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혁명과 헌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4가지의 혁명론 (응집심리이론, 체제/가치 합의론, 정치갈등, 계급갈등이론)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혁명 안에 폭력이 내재되어 있거나 또는 폭력을 혁명의 필수 요소로 여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폭력적 요소는 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혁명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에 대한 대답으로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설명하셨습니다. 아렌트는 폭력의 반정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폭력이 있을 때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는 다시 침묵하게 되므로 결국 폭력은 새로운 논의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폭력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폭력이 아닌 말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을 통한 혁명은 결국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체제의 변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목적이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헌법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지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가 헌법을 쓰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은 넓은 의미에서는 정체를 구성하는 주체를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정체의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헌법은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정부를 구성하는 인민의 행위다”라는 토마스 페인의 말처럼 구성권력은 시민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국민’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구성권력이 드러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
그러나 우리 사회가 헌법 제정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공통의 신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헌법은 일상과 괴리된 이상적인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썼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불려도 좋을 민주주의의 주요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일상의 정치에서 정권교체의 실패를 경험하였고, 엘리트 위주의 헌법 개정으로 인해 대중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을 개정하는 이번 시기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중요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대화(對話)’를 함께 읽으며 2강을 마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은 등불을 만들고, 등불이 다시 꺼지는 과정의 연속이었을지 모른다고, 그러나 구체제와 새로운 체제와의 대화인 헌법 제정에 다시금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고 제도화 하는 과정에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시민이 헌법을 만드는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강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