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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 강연-질문입니다 ^^
벌써 마지막 수업이네요 ^^ 한달동안 폴라니에게 푹 빠져있었고,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폴라니가 사회를 믿고있으며, 사회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자연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이란 긍정적 희망을 갖게 됩니다.
수업이 끝나더라도, 질문이 생기면 메일로 또 질문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배운만큼 발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욕심에, 적절한 질문일지는 모르지만 나름의 문제제기를 제시해봤습니다.
1. 폴라니의 예측은 어긋났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측은 틀렸습니다. 20세기가 끝나기 전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는 결국 새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한 바로 이 지점 말입니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 실제로 탈배태 되어왔던 19세기 시장경제가 결국 사회안으로 배태되는 것이 벌여졌습니다. 뉴딜, 파시즘, 복지국가 등의 다양한 형태였지만, 본질적으로 시장이 다시 사회 안으로 묻혀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시장은 다시 사회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크 블리스는 그의 저서 Great transformations 의 저서에서, 폴라니의 이중운동은 그의 말처럼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이중운동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1970년대라고 지적합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변환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 경기침체는 기존과 다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전혀 새로운 문제였고, 이를 위해 반 이중운동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그것입니다.
만일 폴라니가 1970년대, 다시 시장이 전면화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궁금합니다. 폴라니는 1930년대 이후 사회가 발견됐다고 표현하면서, 이제 시장체제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발견된 사회는 왜 다시 시장을 전면화시키게 돼버렸을까요?
저는 이 지점이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라는 것은 너무도 모호하고 거대하고 컨트롤이 불가능한 자연적 존재입니다. 사회의 자기보호 기능이 자연적으로 발휘되면서 시장의 폐해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왔다고 말해왔는데, 사회의 대응은 너무도 오랜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970년대 다시금 신자유주의가 밀고 들어온 것을 보면, 사회의 대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를테면, 사회란 것은 흔히 합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소비자집단과 같은 잠재적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맑스를 비판하면서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어떤 계급이든 전면적인 사회를 위한 외침을 해야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움직인다, 는 식으로 이해를 했는데, 이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사회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 지는 결코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이뤄질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 사회의 자연적 대응력, 그 힘을 어떻게 일깨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 설명되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실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맑스의 계급강조와 같은 것이 더 실천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데요.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거대한 맷돌을 멈출수 있는 것인지 하는 고민이 듭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오기 전에 진보진영에서 이뤄졌던 논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마 손호철 교수님이 그렇게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왜냐하면 신자유주의의 착취를 더 받아야만 민중들이 깨닫고 진보세력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었고,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분명 이런 입장이 존재했습니다.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는 결국 더 최악과 극도로 내몰려야 전면적으로 시장을 내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국가의 제도
마크블리스는 폴라니가 설명하는 이중운동을 해석할 때, 시장에 의해 갈려버린 사람들은(사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했고, 그 결과 제도는 변했다”고 설명하며, 1930년대의 변환이후 연계된 자유주의에 기초한 제도가 만들어졌다면, 1970년대의 변환이후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폴라니는 제도를 통해 19세기의 자기조정적 시장과 그 변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피남랜드법, 구빈법, 금본위제 등등. 1장을 보면 제도의 기원을 통해 인류가 처한 조건이 무엇인지, 그 위기를 낳은 제도의 기원을 통해 규명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사회가 여기저기 신음소리를 내고 보호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보호라는 기능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제도화돼야 합니다. 그 제도를 공식화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국가의 인위적 행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폴라니는 국가를 사회의 매개자? 라고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조정적 시장이란 인위적 형태를 만들어낸 과정에서 국가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역시나 시장을 위한 제도를 만든것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국가는 시장의 매개자?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매우 잔인하고 거대한 자본가의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매우 다중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왜, 어떻게 사회의 매개자로서 국가는 존재하는 걸까요? 또한 그것이 제도만으로 가능한 이야기 인지 고민이 됩니다. 사실상 시대의 지배적인 idea에 기반하여 사람들이 시대를 사고하고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급의 주도권, 지식담론의 경향성, 강력한 ism의 열풍 등등이 제도속에 포섭돼 있다고 폴라니가 인식하고 있는 건가요?
즉 국가를 사회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구요. 또한 제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구요.
폴라니가 불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사회, 국가, 제도 이 개념의 위치와 사회가 국가와 제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