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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교실 기사] 김동춘 "노조운동하면 감옥 갈 각오하는 '민주 국가?!'"
6월 1일 사회정치교실 김동춘 선생님 강의를 정리소개한 프레시안 6월 11일자 기사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됐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얼마나 민주화가 이뤄졌나. 노조 운동 열심히 하고 감옥 가지 않을 수 있는가. 기업 측의 손해배상소송 청구를 당해서 노동간부가 파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부당노동 행위를 한 사용자가 처벌될 수 있는가."
10일로 6월항쟁이 22주년을 맞았다. 20주년이었던 지난 2007년 이후 각계에서는 6월항쟁과 민주화 운동을 재조명하고 재해석하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특히 2007년 대선을 전후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그러나 역사를 뒤돌아보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숨가쁘게 움직였다. 유례없이 일어난 지난해 촛불 집회를 비롯해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은 과거보다는 지금 당장 일어난 현실에 대한 고민부터 풀어야 했다. 더군다나 정부와 경찰이 헌법을 뛰어넘는 행정을 일삼으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커녕 10년 전,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화 20년, 우리가 체감하는 변화와 한계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20년간 민주화의 진도는 별로 나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지난 2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 민주주의학교'에서였다.
김동춘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됐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당선됐다"며 "이들의 당선에는 어느 정도 노동세력의 힘이 작용했지만 결국 6월 항쟁의 성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더 거시적으로 얘기하면 1987년 이후 민주화가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 세력은 시민운동과 민주노총 운동, 혹은 진보정당, 혹은 이들을 지지하는 소극적 지지세력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 역시 단시 신자유주의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쇄시킬 수 없었던 내적 역량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자본, 국가의 힘 빌리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없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외생적 형태로 진행됐다. 자본가도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계급·계층의 변화와 사회운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부르주아와 지배 세력은 태생의 한계가 있었다"며 "또 국가주도의 성장정책과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자본은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동춘 교수는 "국가의 후원이란 면세 조치, 수출 특혜 등 각종 혜택으로 자본이 외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것과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차단하는 것과 두 가지로 집중되었다"며 "이 두 가지로 초기 한국 자본이 성장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은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요청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며 "또 초기 자본축적 과정에서 권력과의 결탁, 부동산 투기, 탈세, 노동자 탄압 등 온갖 부도덕한 과정을 거쳐서 부를 축적한 도덕적 취약성이 있으며 따라서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성을 두고 "기본적으로 2차대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작품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일·한 자본주의가 가진 특성이 있다. 우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노동 배제 체제다. 미국 자본주의는 노동 운동과의 전쟁의 역사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어용노조 밖에 없다. 한국 노조는 공식적으로 허용돼 있지만, 노조 운동은 감옥행을 의미했다."
그는 "또 다른 공통점은 진보정당이 없는 점, 사회 복지나 국가 복지라는 개념이 없는 점, 계급적 연대 대신 교육을 통해 가족이나 개인단위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끊임없이 성취를 유도하는 사회라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 사회는 이런 특징이 극우 반공과 함께 굴러가는 정치경제 체제"라고 설명했다.
"개발독재변형의 신자유주의+지구화+주주자본주의"
이어 김동춘 교수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며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안일한 해석이며, "개발독재가 변형된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미와 한국처럼 개발독재형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간 나라는 사실상 자유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는 어느 정도 복지 체제가 남아있는 서유럽 등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198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지구화"라며 "특히 서비스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노동유연화와 연결되면서 비정규직의 숫자가 50%대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째 특징은 주주자본주의"라며 "국민의 다수가 주식 투자자가 되면 이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주주로 생각하게 되고, 노조의 파업에 반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 |
"하나로 뭉친 지배 계급, 정치적 단결 막힌 노동 세력"
김동춘 교수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비대칭적 계급구조화'를 들었다. 그는 "지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온 반면 사회적 약자, 소수자, 노동자는 계급으로 뭉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1992년이후의 총선과 대선을 분석해보면 소위 '강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투표행태를 '여촌야도'로 설명했지만, 1992년을 계기로 서울에서도 부유한 지역에서는 일관되게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또 계급구조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부가 세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결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벌가는 재벌가 끼리만 결혼하고, 명문대 입학자의 출신 배경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동춘 교수는 "반대로 노동 세력은 현실정치에서 하나의 세력이나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했다"면서 지역주의와 낮은 계급의식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친노동 후보가 나오더라도 현실 정치의 한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힘이 있는 쪽을 지지한다"며, 민주당의 애매한 노선도 노동세력의 취약성과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세력화가 되지 않는 노동 운동은 비정규직, 서비스화, 위로부터의 노동 탄압과 맞물리면서 조직률이 떨어졌다"며 "민주노동당이 2004년 10석을 얻은 것 역시 노동 운동의 힘보다는 선거제도의 변화 즉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서거에 슬퍼한 이들이 단결해야 할 사람들"
이처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민주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어진 거대한 추모 행렬이다. 서울 덕수궁 앞 분향소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분향을 하고, 하루 밤낮을 달려 봉하마을에 가서 또 수백 미터 줄을 기다리며 조문을 한 이가 500만 명이 넘었다.
김동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18대 총선 결과 온 국민이 '경제 동물'이 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의 소중함을 알 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조문의 성격"이라며 그들은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애통해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슬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이 가진 이들은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 많이 슬퍼한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많이 힘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과 자신의 처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 통칭 서민이라 불리는 약자, 당하고 산 사람들, 차별 받았던 이들이 더 많이 슬퍼했다고 본다."
김동춘 교수는 "더 많이 슬퍼한 바로 그 사람들이 정말 단결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누가 자기를 대변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들 대다수는 노조활동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시민단체는 잘난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이라며 "조문한 수백~수천 만 명의 에너지를 어떻게 현실적 동력으로 전환시킬지는 결국 진보정당, 시민단체, 노조에 던져진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김동춘 교수는 "더 많이 슬퍼한 바로 그 사람들이 정말 단결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누가 자기를 대변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
"노무현의 유업, 냉정히 따져보는 언론이 없다" 이날 김동춘 교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회 분위기를 두고 강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일부 학자나 언론 보도는 정서적으로 치우쳐 있고, 냉정한 분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특히 그의 죽음과 연관된 언론이나 검찰 문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노력을 했고 좌절했는지 언급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권 문제로 한정시키거나 검찰총수의 도덕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경향은 있지만,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대로 책임자가 사퇴한다 해도 바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는 이날 강의의 주제였던 노동 운동과 관련해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재임 당시 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는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죽은 16살의 문송면의 문제를 처음으로 국회에서 터트려 산재 문제를 의제화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 초선 의원이었다"며 "또 같은 해 노태우 대통령이 노동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할 때 현장에 내려가 직접 담판을 한 이 역시 노무현 의원이었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는 "그러나 이런 사실에 주목하는 언론을 본 적이 없다"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순 있지만, 이 사람이 국민의 대표로 무엇을 했고 좌절했는지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노동계와 거리 둔게 사실이지만, 그가 왜 그랬는지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작업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유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런 성찰을 거치지 않으면 설사 이명박 정부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집권한들 뭐가 달라지겠나"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