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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여성사 기행> 3강
3강은 ‘어느 고려부인의 일생: 시집가지 않는 여자’를 주제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성과 여성의 삶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려시대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기도, 성적 규범이 엄한 사회이기도 했다. 고려가요 ‘만전춘’과 ‘쌍화점’ 등을 보면 남녀가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크게 거리끼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신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귀족 여성들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기도 했다. ‘자녀안(姿女案)’이라는, 남편 있는 여자가 간음할 시에 그 이름과 소행을 기록하는 대장을 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은 풍기를 문란 시킨 죄로 바느질하는 공인으로 삼았다.
성에 대한 통제는 당시 사회의 규범이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다. 고려의 주요 사상이었던 불교와 유학에서 정절은 ‘상대방에 대한 신의’를 의미했다. ‘쌍무적 정절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부부 간에 서로 도리를 지켜 간음은 물론 자기 아내와 남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정절 의무의 주 대상은 살아 있는 부부 간이었고, 과부가 남편 사후까지 정절을 지키라고 사회에서 강요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과부나 미혼녀가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데 적극인 행동을 취했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비하여서는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관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법제적으로 혼인 외 관계는 모두 간통으로 처벌했다. 간통은 쌍벌죄였으나 여성의 경우 부가형이 있어 더 무겁게 벌을 받았다. 그리고 이혼에 대하여는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여성 측에서 이를 요구하기는 어려웠다. 고려시대 여성은 남편 사망 후 재혼만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남편 외의 남자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이혼, 도망, 살부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꾀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혼인관계 내에서 사랑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고려 여성들의 혼인 양상을 ‘염경애’라는 한 여성의 일생을 통해 더욱 알아볼 수 있었다. 염경애는 고려사 효우전에 등장하는 효자 최루백의 아내이다. 당대 명문가 자식이었는데, 지방 향리의 자식이었던 최루백과 혼인하였다. 최루백은 과거급제자였고, 당시 지배층은 사위의 장래성을 고려하여 혼인하였기 때문에 최루백을 사위로 맞았을 것이다. 고려의 혼인은 일반적으로 같은 계층 간에 이루어졌는데, 이와 같이 지방의 한미한 가문 출신자가 과거에 합격한 뒤 귀족의 사위가 되어 사회의 최상층에 진입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그리고 친족구조가 ‘양측적 친속제도’로서 친가, 처가, 외가도 상당히 중시되어 사위의 출세는 아들의 출세와 마찬가지로 ‘가문의 영광’에 기여하였다.
혼인의 형태는 처가에서 혼인식을 올리고 처가에서 살다가 남편 집으로 가는 식이었다. 서류부가혼, 남귀여가혼, 솔서혼 등이라 불렸다. 그리하여 처가와의 관계가 밀접했다. 여성이 혼인 뒤에도 친정부모를 모실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아들 선호가 크지 않았다. 처가에서 거주하는 기간은 가족 상황이나 경제력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차이가 많았다.
혼인 뒤 여성은 전근대시대 여성에게 공통적이듯,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식을 잘 기를 것이 요구되었다. 효도에는 제사도 포함되는데 윤회봉사 형태로 여성도 제사에 동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재산 상속 시 딸과 아들을 특별히 차별하지 않고 균분했기 때문이다. 제사는 주로 절에서 재(齋)를 지내는 방식으로 치렀다. 그 당시 절의 시주 명단을 보면 남편과 부인의 이름이 각기 기재되어 있다. 이를 보면 부부가 재산을 따로 소유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은 고리대나 상업, 무역활동을 통해 가정경제를 꾸렸다.
부계친족구조가 강고하지 않았던 사회라 여성은 사후 친정 묘역에 묻히기도 했다. 고려 여성들은 아내, 며느리로서보다 딸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고려 여성들이 혼인 이후에도 자신만의 재산을 소유하고 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지금껏 주위에서 보아 온 여성들은 결혼 후 법적으로는 재산권을 인정받음에도 현실적으로는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 다룰 조선시대 여성의 삶도 현실의 여성이 겪는 일들과 비교하여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