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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 전쟁의 종교인가, 평화의 종교인가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첫 강좌는 조용한 질문과 함께 시작하였다.
전쟁의 종교인가? 평화의 종교인가?
올바른 – 그리고 요구되는 - 정답은 아마도 평화의 종교겠거니 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마음속에서 여러 반박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종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의 종교로 보이는 것이다. 참으로는 평화의 종교다.’ 라는 정답과 함께 정답풀이가 시작되었다.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가질법한 질문 – ‘종교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자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들이었다.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가? 지혜 즉 고차원적 지능, 언어능력, 이족보행 능력 등 많은 인간만의 독특한 특질 중 종교적 행태도 – 현재까지 우리가 알아낸 관찰에 근거하여 - 인간만의 것이었다. 종교 학자 Hans Küng의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을 인용하여 종교를 아는 것이 세계 평화를 진작시키는 첫발이기에 우리에게 종교 연구와 검토의 중요성을 환시시켰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 전쟁이 있었고, 여전히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슬람 시아파의 과격활동 등이 그 경우일 것이다. 집단간의 무력적 충돌의 원인이 종교인지에 대해 Samuel Huntington은 이를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로 이해하려 했다. 많이 알려진 유명한 견해이지만 이에 대한 반박이 존재하며, Karl Mark의 이론에 비추어보면 경제적 요소로 분열이 일어나고 종교로 인해 그 세력이 결집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종교는 무엇이길래 종교로 인해 충돌이 생기는 걸까? 종교는 어어(Uhuh)와 아하(Aha)의 매개였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해 부자유의 상태로 존재하고,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오고, 그에 따라 자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경계이전에 ‘어어?’가 있고 경계너머에 ‘아하!’가 있는 것이다. 궁극 변화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런 종교가, 궁극 변화를 위한 수단의 종교가 어떻게 충돌, 폭력,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걸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모든 종교는 표층부분과 심층부분을 갖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표층종교는 이기적인 나 중심에 머무르는 것, 무조건적인 믿음, 신과 나를 분리하고, 쓰여진 말에 집착하며, 배타적인 것이다. 심층종교는 새로운 나의 발견, 이해와 깨달음, 내속의 신과 신속의 나(범재신론)이며, 쓰여진 말의 속내를 살피는, 다원주의적인 것이다.
종교는 표층으로부터 시작하여 심층으로 다가가 진리를 깨우치고 변화해 자유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면 종교는 표층에 머무르는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일화를 통해 예수의 사랑을 설명하는 종교적 설화는 표층종교 – 종교의 외적 틀이고 –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진리를 알아 자유롭게 되는 것이 심층종교이다.
끝에 다다라 시작에 던지 질문에 다시 답하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 되었다.
Q. 전쟁의 종교인가? 평화의 종교인가?
A. 평화의 종교이다.
Q. 그렇다면 종교전쟁은 무엇인가?
A. 종교전쟁은 표층종교끼리의 – 종교의 표면적 규율, Rule의 – 전쟁이다.
Q. 요사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A.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근본주의 그리스도교와 근본주의 이슬람의 충돌이다.
개인적으로 질의응답시간에 이루어진 논의가 더 재미있었다. 개개인이 경험한 혹은 목격한 종교의 부정적 모습과 표층종교적 부분에 대한 비교대조, 근원적인 공포와 결핍에 대해 종교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러한 역할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에 머무르면 구복신앙적인 표층종교에서 심층으로 심화되지 못한 상태라는 논의, 종교의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순간 종교의 이상적 기능의 상실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종교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 편견이 사실은 표층종교에 집착하는 종교적 행태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