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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북 토크 "우리는 왜" 제 1강 <공부중독> - 엄기호.
신년 북 토크 "우리는 왜" 제 1강 <공부중독> - 엄기호.
2016년 2월 4일 목요일, 오후 7시~9시
1부 : 강의
1. 서론
1) 교육의 양극화 현상 : 이제는 문화적·경제적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공부라는 테마에 관심이 없어진다. 중산층들은 가면 갈수록 공부문제에 골머리를 앓을 것이고, 더 투자를 하게 될 것이며 그것 때문에 아이들도 더 괴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저소득층, 생산직 노동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부모들은 자녀가 인 서울을 할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이 들 경우 공부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input보다 output이 적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이미 한국이 계급계층에 따라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전략이 합리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사회학적 배경 : 한국은 지금 학벌사회가 사실상 해체되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의 서열이 확실했으나 현재에는 학벌이라는 것의 하부가 붕괴되어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학의 서열이 무의미해졌다. 앞으로 이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지금 고3 아이들을 보면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공부를 해서 대학을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의미 없는 일을 우리가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3) 논점 :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는 것이 문제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했으나 가면 갈수록 ‘왜 가르쳐야 하는가?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설명이 필요해질 것이다. 교사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며 그로인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교사들의 정신질환이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 ‘공부중독’이다.
2. 본론
1) 공부중독 현상이 만들어진 이유
① 사회주도층이 된 486세대의 특수한 경험 : 486세대는 근대 한국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공부로 신분상승에 성공한 세대다. 정치·경제·역사적으로 많은 것들이 받쳐준 시기에 공부를 통해 개인의 신분상승과 공적인 사회(민주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486세대는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이들이 말하는 ‘공부’는 제도화(학교화)된 공부를 뜻하며 이들은 공부가 문제를 푸는 만능키라고 생각한다.
② 통치 권력의 통치술 : 한국 자본주의는 일자리를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 왜냐하면 기술발달 속에서 일자리가 증가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지 못 하기 때문에 취직이 안 되는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통치 권력의 통치술도 공부중독의 한 요인이다.
③ 주체의 입장 : 이런 압박 속에서 아이들은 실전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진다. 이럴 경우 공부 중이라는 것이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고, 스펙만 쌓는다.
2) 위 세 가지가 딱 맞아 떨어진 상황을 <공부중독>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개인과 계급 계층, 국가의 입장에서 한국사회가 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문제는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메시아적인 대책은 없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너희들(청년들)과 같이 노력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 두려워하지 마라.’는 메시지와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정책일 것이다.
3) 아이들 : 공부중독 현상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우울증, 불안장애 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① 무기력 : 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Yes, I can do it!” 때문에 아이들이 무기력해진다. 이 말만 보면 학생이 주체인 것처럼 보이나 그 앞에 숨어있는 말 “(You must say) Yes, I can do it!”을 보면 진짜 화자(교사, 부모, 사회, 체제)가 나타난다. 사실은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라 타율학습인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이 말 뒤에 숨어있는 책무성 (If you fail it’s your fault)도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기력함은 아이들의 생존전략이다. 무기력해야 실패한 다음에 받게 되는 비난과 낙오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② 우울 :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할 수 있어! 더 공부해야 돼!’라고 하다가 소진이 된다. 소진이 되는 순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우울해진다. 또한 이것이 언제 내 책무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는 동안 계속 불안해진다.③ 분노 : 반대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길도 있다. ‘나는 할 수 있고,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이 사회 때문에, 옆 사람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라는 것이 터져 분노로 나온다.
3. 결론 : 우리는 지금 ‘공부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다함께 망가지고 있다. ‘더 공부하고, 더 경험하고, 더, 더..’ 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러한 공부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의 목적에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를 배려하는 법,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2부 : 질의응답
1. 교수님의 주된 관심사(대상)는 무엇입니까?
소외받는 계층, 지역아동센터, 다문화, 편부모 등 아동·청소년의 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안을 고민 중이다. 더불어 공부를 안 하는 친구들을 위한 교육에도 관심이 있다. 이 친구들은 가면 갈수록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찾지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들은 스스로도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존재의 가치를 노동에서 찾았다면 앞으로는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미 이 사회의 공통의 것을 만들어 가는데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는 존재다>라는 것을 발견·경험·상기시켜주는 교육이 학교에서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누가 지금 공동의 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가? 왜 배제되고 있는가?’에 대한 토론과 교육이 아이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한 아이의 성장은 교사와 부모 공동 노력의 산물이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개인의 성과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서 공동의 노력이라고 하는 감각이 사라진다. 따라서 <내가 이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고, 이것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이다>라는 감각을 회복하자.
2. 혁신학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교육에 무관심해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다른 가능성의 교육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혁신학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는 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좋은 선례가 되어주면 된다. 다양한 형태의 좋은 선례들이 필요하다.
거시적으로는 이 문제를 위해서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하는 것이 대학 입시문제다. (외국의 사례를 들며) 온 국민이 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가고 싶을 때 대학을 감으로써 생애 걸친 공부를 하는 것이다.
3. 무기력, 우울, 분노 이 세 가지 길 외에 또 다른 길이 있는가?
우리는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아이는 무한한 존재가 되어야 하며 무한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고전에서 찾은) 교육의 목적은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는 네 분수를 알라고 주저앉히는 것이 아니라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정성을 다해서 살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겸손해지고 배우려 든다. 이것이 지혜이며, 이 지혜가 있어야 자신을 배려할 수 있다. 나아가 남을 배려하고 돌볼 수 있다. 이 지혜로부터 절제가 나온다.
예를 들어, 해녀학교에서 제일 먼저 알려주는 것은 자신의 숨의 길이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아야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내 숨의 길이가 5분일 수도 있고, 1분일 수도 있다. 5분은 탁월하고, 1분은 지질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탁월함이란, 1분의 숨의 길이를 가지고 내가 얼마만큼 물속에서 원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즉, 주어진 것을 선용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더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밝혀야 한다. 이렇게 내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
4. 마무리 : 사람들이 지혜와 절제, 그리고 용기를 갖추고 살아갈 수 있게 북돋아주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한다. 이 과정은 절대 개인의 과정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혜롭고, 절제하고, 용기를 내면서 살아갈 수 있게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통의 목적이 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고, 공공선이 되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