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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시민연극단 일곱번째 이야기]-기억과 기억은 만나야 한다
기억과 기억은 만나야만 한다.
#프롤로그
오늘은 느티나무시민연극단 일곱번째 만남이 있는 날이다. 공연 날짜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공연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다. 정해진 대본 없이 개개인의 기억과 생각들의 얼개만으로 어떻게 극이 완성될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어떻게 완성될까..?
#1. 신의 한 수
이번 모임부터 아이들이 참여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순간 우리의 연극은 놀랍도록 탄력을 받았다. 아이들의 참여는 마녀(연출가)의 신의 한수였다. 고연령자들로 다소 칙칙했던 우리의 연극(^^;;)은 활력을 찾으며 균형이 잡혔다. 배우들이 많아지니 무대도 꽉 차고 이야기도 풍성해진다. 쪽수의 힘! 젊음의 힘!
#2. 연출의 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던 연극의 내용들이 연출가의 힘으로 조각맞춤되기 시작했다. 연출의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연극을 준비하는 시민연극단의 갈등상황으로 연극은 시작되고, 하나 둘 아이가 등장한다. 뒤이어 나오는 아이들의 소리 없는 대화와 장난들. 호기심이 동한 관객들은 하나둘 무대 속으로 몰입하게 되겠지.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들의 일정표가 낭독되고 아무일 없는 듯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어른들.
세월호 사건 발생. 경악하는 사람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3. 기억 속의 고통
기억상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던 고통의 순간들. 세월호의 고통과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깊숙이 봉인되어 있었던 그것. 크던 작던 세월호의 또 다른 모습들. 전교조, 5.18 광주 항쟁, 학교폭력과 왕따. 이유없이 고통 당하고 억압 당하고 소외 당하고 외면 당하고 멸시 당하고... 잊혀지길 강요당한다.
#4. 함께 만들기.
우리는 기억 속의 세월호들을 끄집어냈다. 우리들이 기억을 끄집어내면 마녀(연출가)는 이미지화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장면을 완성해갔다. 우리는 순식간에 배역을 나누고 몰입해 들어간다. 길이 아닌듯 하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의견을 좁혀나가기도 하고 확장시키기도 한다. 대립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
#5. 일베
어린 시절의 모습을 거울처럼 아이를 통해 바라본다. 비겁하고 무기력해진 어른들. 무리지어서 비열함의 혀를 날름거린다. 고통 받는 자의 상처를 헤집어대며 영혼을 갉아먹는 폭력을 가한다. 여전히 일베의 연기는 어렵고 힘들다.
#6. 기억과 기억은 만나야만 한다.
우리의 연극을 보게 될 관객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의 기억 속에서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기억과 희생자들의 기억과 배우들의 기억, 그리고 관객들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연극의 울림은 극대화된다. 우리의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로 달려간다.
#7. 연대의 힘.
고통과 고통이 만나면 함께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진다. 연대의 힘이다. 나의 고통이 너의 고통임을 우리가 공감하는 순간, 우리의 만남은 기쁨이 되고 곁에 있는 제 3자의 존재로 인해 외롭지 않다. 그 고통은 잊혀지지 않으며 왜곡되지 않는다. 역사가 되는 것이다.
#8. 묵직한 엔딩
마녀(연출가)가 생각한 엔딩 장면은 뭉클했다. 독백하며 던지는 위로의 말들과 사람의 숲, 나무처럼 우뚝 서서 힘주어 시의 한 구절을 외친다.
#9. 신의 한 수 2
마녀(연출가)의 한 마디. 아직 연극의 10%도 완성되지 않았어요.
크헉! 내 생각엔 다 완성한 것 같은데!
연출가님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만들어냈을까..? 이 연극을 위해 그녀가 소비했을 시간들의 무게와 정신적 에너지를 나는 감히 가늠하지도 못하겠다.
진정한 신의 한 수는 느티나무아카데미 시민연극단에서 마녀 연출가를 섭외한 것이리라.
# 에필로그
개인적으로 최근 나에게 이런저런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재미있는 것은, 연극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속 막혀 있던 물꼬들이 터져나와 하나의 강물을 이룬다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연극단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 열정을 불살라 무대 위에 서는 그 날까지, 고고고!
이렇게 즉각 정리를 하시다니. 그 열정에 뜨거운 박수...
이 모든 과정이 공연 못지않게 소중한 배움인 것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