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세계 종교의 이해] 3강 - 유대교 ②
<세계 종교의 이해>의 세 번째 시간. 이번 주에는 중동사를 되돌아보며 유대교를 집중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커리큘럼 상으로는 유대교를 공부하는 마지막 시간으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대교의 전반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강의가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그 중 일부만 소개하려고 한다.
1. 성전 시대에서 분열에 이르기까지
강의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성취할 왕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사울의 실패는 사실상 왕정의 실패였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화 하지 못한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사울 일파가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견제의 대상으로 삼았던 다윗이었다. 다윗 치하의 이스라엘은 넓은 영토를 소유하며 번영을 누렸고, 솔로몬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선택한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지혜로운 심판자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된다.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은 분명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왕이 국정을 소홀히 하고, 국가 재정을 자신의 사치에 이용하기 시작면서 분열과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실정으로 인해 남유대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으며 이후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남유대는 바빌론에게 각각 멸망을 당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예언자들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그리고 에스겔이다. 예언자 아모스는 정치 기득권의 부패한 현실을 타파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는 예언을 내렸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했으며, 이사야는 보편 신관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에스겔은 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할 것이라며 신에 대한 헌신을 이야기했다.
2.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그리고 시온주의
가히 유대교의 역사는 분열과 박해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시점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예루살렘은 식민지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저항을 계속했으나, 로마의 티투스가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면서 멸망의 길을 걷는다. 티투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모든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이 시기부터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본격화 된다.
중세 시대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 했다. 경제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여 부를 축적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회적인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이슬람 국가의 유대인들은 개종을 강요받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유대와 이슬람 문화가 혼융된 사라센 문화이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시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의 상징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를 수치의 상징으로 간주했으며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유대인들은 차츰 사회에서 고립되어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의 거주 지역인 게토 안에서 자신들의 영적 고향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유대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들의 소망이 반영된 사상이 바로 시온주의이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의 성지를 회복하겠다는 이기적인 욕망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고질적인 분쟁을 낳았고,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원인이 되었다. 지나친 민족주의로 인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 국가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었고, 국민들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공습에 불안해하며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3. 오늘 날의 유대교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땅을 소유하지 못함에 따라 고리대금이나 보석 상인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이들은 숫자 놀음에 밝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이 게토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신분 상승의 통로가 거의 막혀있는 상태에서 유대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학문에 몰두하는 것 뿐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유대교 신자들의 높은 교육열로 연결되었다.
칼 마르크스, 프로이트, 멘델스 존, 아이슈타인 등 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학자나 예술가들이 유대교 출신이라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금융계는 유대인들이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유럽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유대인에 대한 험담을 하면 비판이나 사직을 면하기 어렵다며 그들의 현재 위치를 빗대어 말씀하셨다.
현재 유대교 신자들은 약 1,300만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이들은 지금까지도 고유의 관습을 지키며 살아간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식일.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이르는 말로, 약 하루 동안은 오직 신을 경배하며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해야 한다. 교수님께서는 전쟁이 나도 안식일만은 지켰을 정도라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어쩌면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킨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유대교도에게 안식일은 그들의 전통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기에, 분열을 거듭하면서도 자신들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좌의 한 챕터를 마무리 했다는 의미에서 교수님과 함께하는 뒤풀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참여연대의 카페 통인에서 간식과 마실거리를 두고 교수님과 담소를 나누었는데, 뒤풀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 미니 강좌라고 해도 될 만큼 유익한 말씀을 많이 전해들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듣거나 강좌를 들으며 마음 속으로 느꼈던 깨달음을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강좌를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 종교 강의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물론 수강생의 대부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강남 선생님께서 들려주는 종교 이야기는 나에게도 꽤 유익한 부분이 많다. 종교는 일상 속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고, 믿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깊게 탐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종교를 불신했던 것은 믿음의 왜곡된 형태만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뒤풀이가 끝나고 밤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상쾌했다. 이 강의가 아니었다면 평생 서로를 모른 채 살았을 사람들이 종교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이 마음에 활력이 되었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4월 말 쯤에는 이미 봄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봄이 만연한 그 때 쯤,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깨달음이 자리잡고 있을지 새삼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