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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5강]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느티나무>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5강
- '빨갱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빨갱이 시비는 콤플렉스를 덮기 위한 자기 정당화”
‘빨갱이’ 만큼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며 폭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빨갱이’의 위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하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누구든지 언론과 여론의 마냥사냥을 감내해야한다. 전체주의에서나 있을 법한 ‘사상검증’이 왜 아직도 있는 것일까? 한사람의 삶을 그 자리에서 정지시키고 그 주변사람들까지 망가뜨리는 ‘빨갱이’는 무엇인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5강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빨갱이’는 현재진행형인 주제다. 김동춘 교수는 “우리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바로 오늘의 주제”라고 했다. “국가보안법(1948.11)이 62년이 됐다. 여순사건(1948.10)과 같다. 이 둘은 지금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다. 재밌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60년이나 됐는데 이 법을 연구한 법학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재야 변호사인 박원순씨만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책을 처음으로 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상위법으로 행사됐다. 헌법을 위반한 사례가 무수하다. 그 이념은 극우반공주의와 빨갱이 사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을 지탱해온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 사냥’은 어디서 왔는가?
그럼 이 같은 빨갱이 사냥은 한국에만 있는 것인가? 김 교수는 유사한 형태의 빨갱이 사냥이 있다고 했다.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빨갱이를 ‘Reds’라고 쓴다. 미국에서 적색공포가 온 것은 러시아혁명(1917)발생 후였다. 차르황제 당시에 미국의 부자들이 러시아 국공채에 투자를 많이 했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못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러시아에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공포감이 미국 부자들을 건드린 것이다. 이것이 빨갱이 사냥의 광기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한 탄압도 거세지고 매카시즘이 50년에 나타났다고 한다. 매카시즘이 원조라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혁명이 발단이었다니 ’돈‘이 무섭긴 무섭다.
독일에서도 ‘빨갱이’사냥이 있었다. 히틀러 나치 하에서 벌어졌다. 독일 국가에 충성심을 표하지 않는 자들, 국적 없는 유대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김 교수는 “유대인이 좌파, 무정부주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 이방인이었던 시간이 길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공산주의’라고 생각해 수용소 감금과 체포를 동시 진행하고, 러시아 스파이로 간주했다고 한다. 빨갱이 사냥의 원조는 미국, 독일인 것이다.
“미국의 정치는 일종의 파라노이드(낯선 사람에 대한 의심과 공포) 정치다”
리차드 홉스테더가 말한 ‘파라노이드 정치’는 낯선 사람을 과대포장해서 두려움을 갖는 증상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19세기 미국의 정치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었다. 가톨릭은 앵글로색슨 주류에 밀려난 상태고 개신교는 미국의 주류였다. 개신교 사람들은 18세기 미국건국 때부터 가톨릭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빨갱이 사냥으로 된 것”이라면서 파라노이드(공포) 정치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기독교는 미국기독교 근본주의와 같다. 가톨릭에 대한 공포가 미국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빨갱이 공포는 단순한 반공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이 있다.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극도의 자기존재에 대한 위기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익숙하지 않은 상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한 트라우마(PTSD)를 갖는 사람들은 공격적이고 비뚤어지게 생각한다. “이것은 (가톨릭에 공포를 가진)기독교 근본주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본다. 상대에 대한 관용이 없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애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종교적 태도가 전쟁과 결합했을 때 극히 극단적이고 공격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상대를 악마로 모는 사고방식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매스미디어의 선전, 선동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꼭 반공주의가 아니어도 이런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상대를 악마로 모는 심리는 외부에 의해 극단적인 공포가 발생했을 때 드러난다. 1923년 관동대지진(도쿄인근지역)때 동경에 살던 조선인 5천명이 학살당한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김 교수는 “당시 일본인들은 미친 듯이 조선인들을 잡았다. 지진이라는 위기상황에 조선인에게 광기를 휘둘렀다”고 했다. 전쟁 중인 데다가 대지진이 일어났으니 일본인들의 심리적 공항상태가 광기가 되어 만만해 보이는 조선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고 함석헌 선생의 전집에 유학당시 경험담이 실려 있다고 한다.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이라는 글인데 “당시 조선인들은 왜 학살을 많이 당했나? 위기에 처한 일본의 권력이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감과 지진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조선인들에게 퍼부은 것이다. 이것을 보면 정부에 쓴소리를 계속 하는 명진 스님을 ‘좌파’라고 모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의 그 기본적 원리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빨갱이 사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김 교수는 미국과 다른 점으로 “의심 가는 사람을 빨갱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만드는 게 차이”라면서 “그 가족, 주변인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미국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라고 했다. 7~80년대 납북어부들은 “빨갱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빨갱이를 사람이 아닌 동물로 간주해 동정심과 자비심, 공감 등의 감정을 없애고 죽어 마땅하다는 식의 감정을 이입해 도덕적 부채의식을 면제시키면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했다”고 했다. 개인뿐 아니라 관련된 가족들, 지인들까지 빨갱이 취급을 한 것은 일종의 연좌제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를 행사한 것인데 여기서 ‘연’이 두 가지 의미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연(連)-‘관련된 사람’과 연(緣)-‘혈연, 가족’을 의미한다. 아는 사람과 가족들 둘 다 적용한다는 말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천륜을 파괴하면서 빨갱이 사냥을 한 것이다.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논리”라면서 “MB정부의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고사 거부 교사 파면을 보면 알고 있는 교사들까지도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아는 체 하면 피해를 볼 수 있다', '모른 체 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반대세력은 무조건 ‘빨갱이’ - 여순사건 때부터
제주 4.3사건, 여순사건은 그 연좌제가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다. 연루된 민간인들은 다 처벌당했으니 말이다. 김 교수는 “500명 좌익계열 무장빨치산 중에는 산에 올라간 사람과 가족, 실종된 사람과 그의 가족, 단독정부 반대한 사람까지 다 섞여 있었다. 서북청년단은 태극기를 파는 척하며 빨갱이 사냥을 했다. 태극기를 사라고 강요하면서 돈이 없어 못 사는 사람도, 돈이 있지만 안사는 사람도 빨갱이로 만들어버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고 애국가를 안 불러도 빨갱이 취급을 했다. 70년대 박정희 시절 애국가 나오면 벌떡 일어났다. 안 일어나면 욕먹었다”면서 비이성적 빨갱이 사냥을 지적했다.
박찬길 검사사건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조만식(기독교 민족주의자)의 제자였던 박찬길 광주지검 검사는 사상적으로 좌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양심적인 검사였다. 경찰이 ‘빨갱이’라고 잡아도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들이 좋게 볼 리 없다. 박찬길 검사는 여순사건 때 도망가지 않고 여수에서 숨어있었는데 이를 경찰이 반란군 협조 혐의를 씌워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한 것이다. 검사를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경찰이 총살했다는 것은 당시 경찰의 권력을 말해준다. 법무부 당시 권승렬 장관이 경찰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반대에 부딪혀 결국 박 검사는 빨갱이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경찰들 위세가 커서 총살한 경찰을 용서한 이 사건은 사법부가 공안권력에 굴절당한 획기적 사건이다. 이후, 국가보안법 걸린 사람 풀어주면 빨갱이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빨갱이 논리에 검사들이 공안권력에 겁을 냈다고 한다. '그 배후에는 김구가 있다'고 계속 이승만이 흘리고 나중에는 우파임에도 좌익의 배후로 몰려 49년 암살이 정당화 된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모는 이분법이 여순사건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 빨갱이 사냥의 배경들 - 상처받은 영혼들의 몸부림.
김 교수는 문제의 배경을 남북한의 분단 상황으로 꼬집으면서도 분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정신적 스트레스다. “북한에 큰 책임이 있다. 북한 초기 사회주의 개혁과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1945~6년 토지개혁 때 중립적인 사람들까지 친일로 몰고 자본가로 간주해 남한으로 쫓아냈다. 중도적 인사를 끌어안기보다 내치는 북한의 사회주의는 지금까지 남한에서 광기어린 반공반북에 대한 감정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람은 동물이지만 식물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것을 원한다. 식물적 존재인 인간을 삶의 터전에서 뽑아 다른 곳에 강제로 살게 했을 때 공포는 남쪽사람들까지도 전부 빨갱이”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통하면서 반공색채는 더 진해진다.
강한 친일콤플렉스
제일 결정적인 배경은 한국 우익들의 친일 콤플렉스였다. 해방 후 친일세력들(한민당)은 이승만 하에서 친일경력을 은폐하려했고 그를 위해서는 맹목적인 반공주의로 정치적 입장을 취해야했다는 것이다. 친일행적이 심할수록 극도로 반공주의가 되었다. 빨갱이 시비 벌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때 민간인을 학살한 김창룡, 김종원 등이다. 이들은 일본헌병, 독립운동가를 잡으러 다녔던 비밀경찰출신이다. 가장 악질적인 친일파는 친일경력을 덮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 마찬가지다. 피신할 곳 없는 친일자들의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행태를 이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우익반공주의만으로는 설명 안 된다. 조선일보는 일제 때 친일신문이라는 콤플렉스를 덮고 자기정당화하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 영웅만들기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가진 자들과 행동이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그럼 87년 민주화 이후 빨갱이 사냥은 무엇인가? 비판적 지식인, 운동권 출신들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에 자유주의자는 없다. 자유주의자가 없는 이유는 반공주의자들이 심각한 콤플렉스를 못 벗어났기 때문”이라면서, “이승만에게는 김구에 대한 콤플렉스, 박정희에게는 친일경력과 김일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레드콤플렉스로 된 것이다. 레드콤플렉스는 분단 후 거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을 만드는 심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통일과 정상적인 국가로 가기 위해 극복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레드콤플렉스는 무의식적으로 정서에 깔려있다”고 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상처받은 자유주의
정신적 상처가 심하면 공격적이 되고,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 빨갱이 사냥의 논리다. 전향한 좌파나, 피해 입은 사람들이 극우적 행태를 더 보이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좌파’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나라당내 입지를 높이고, 출세하기 위해 더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특정인을 욕해야 내가 살고, 대세에 편승해야 자신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정치적 심리는 레드콤플렉스를 조장하는데 기여한다. 빨갱이 시비를 강하게 벌일수록 강한 콤플렉스를 의미한다.(친일, 군사정권, 비판적 지식인, 운동권, 애국과 관계없는 기회주의) 극복하지 않는 이상 한국 시민사회는 정상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했다.
콤플렉스로 사회를 해석하는 눈도 새롭습니다.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할 수 있는 우파의 출현은 언제나 가능할지요....
토론하고 싶습니다.^^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별빛소리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