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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5회 이피게네이아 강의 후기
#이번 책은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명료하다. 아가멤논이라는 정치 지도자는 우유부단해서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현명한 딸 이피게네이아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기로 선택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치는 그런 책이다.
먼저 갈래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 문학적으로 읽는다면: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한 아버지 / 자식을 희생시켜야 하는 어머니 /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자식의 이야기이고,
- 정치적으로 읽는다면: 1. 전통과 권위를 위해 새로운 세대를 희생시키는 보수적 세대의 이야기
2. 정치에서의 우유부단함과 결단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읽는 방법 2번의 시각을 위주로 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번 책이 나에게 가장 크게 준 시사점
교수님께서는 강의를 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결단을 희생의 당사자가 직접 내렸다는 것을 꼽으셨다. 그 점이 주목할 만한 첫 번째 이유는, 먼저 정치 지도자(강자)인 아가멤논과 현저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우유부단함은 독이며, 그 우유부단함은 책임감 회피로까지 이어지는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생각은 전부 다르고, 그렇기에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곤 한다. 그 다원화된 가치들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긴 하나, 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각들을 종합하여 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결단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흔히 우리들이 일컫는 '카리스마'이다. 가치다원주의 사회에서 한 방향을 제시했을 때, 그걸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힘, 그리고 그 제시한 방향에 대한 책임감이 바로 우유부단함과 대비되는 카리스마인 것이다.
희생의 당사자가 결단을 내렸다는 게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역설적으로 희생이 바로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형식적으로 강자이자 정치지도자인 '사람'은 아가멤논이지만, 사실상 진정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것은 우스꽝스럽게도 약자인 이피게네이아이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아가멤논의 결정적인 말이다.
"(중략) . . . 나는 이번 일을 감행하기가 두렵지만, 감행하지 않기도 두렵소. (중략) "
이 문장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각종 책임을 회피해왔던 뉴스들로 도배된 지난 뉴스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며,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흔히 레밍 효과라고,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데, 쥐 몇 마리가 갑자기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면 나머지 쥐 떼들도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 지 모르는 채 정신 없이 따라가다가, 벼랑 끝에 서더라도 멈추지 않고 떨어져 죽는 효과로 군중심리를 뜻하는 용어이다. 나는 판단을 내리기 무서워서 내가 내려야 할 수많은 판단을 유보하며 집단을 따라가곤 했었던 것 같다, 진로도, 사소한 것들도.
이 문제는 나같은 개인뿐 아니라 관료주의의 폐해와도 맞물린다. 베버의 말처럼 근대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주의로 도배되어 있다.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따지다 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매뉴얼대로"의 행동들이 나오며, 상식 밖의 상황들이 벌어진다. 책임을 가장 잘 회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승진하고, 책임을 가장 잘 무시한 사람들이 가장 잘 살아남는 건 어찌 보면 이미 이피게네이아와 아가멤논을 통해서도 보여지는 것 같다.
강의 자체는 정치철학이지만, 이번 우유부단함과 결단에 대한 담론은 단순한 팀플(조별활동), 일상생활에서의 판단들과도 크게 맞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판단과 결단을 밀어붙여서 본인들 나름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나간 동화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인어공주와 모아나가 떠올랐다. 먼저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목소리와 가족을 포기하고 얻은 두 다리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걸어도 행복해 했다. 그리고 왕자를 죽여야 본인이 살 수 있음에도 왕자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루고 하늘에서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인어공주가 선택한 총 과정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오롯이 책임을 지며 스스로 만족했다는점에서 인어공주 스스로를 위해 멋진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모아나는 섬나라를 떠나 항해를 자유로이 하고 싶은 소녀인데, 바다의 대한 갈망이 높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각종 위험 상황을 다 겪으며 항해를 계속해 나간다. 죽을 뻔한 위기 상황도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결단을 내렸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며 행복해한다. 그리고 그 무모해보였던 선택은 결과적으로 은연중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고향을 구해내는 영웅으로 그녀를 만들어 놓는다.
#마치며
휴학하고 나서 참 많은 고민들을 했다. 얼마 전에 20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이제 공식적으로 20대이자 성인이 된 만큼 내가 내 삶을 그려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앞으로 힘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늘 신중하게 고민하고,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지는 떳떳한 사람이 되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