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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강의를 듣고 나서
참여연대 정치철학 강의 7주간의 수업이 끝났다. 존 롤스부터 하버마스, 푸코, 데리다에 이어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 그리고 생소했던 아감벰과 랑시에르까지 총 7명의 철학자들을 만났다. 각기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달라도 나에게 남는 메시지는 하나다. 결국 너의 행동 속에 답이 있다. 존 롤스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고, 하버마스는 이성의 힘을 믿었고, 푸코는 깨어있는 개인이 될 것을, 데리다는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는 공공의 장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행위할 것을 엄명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란 개념으로 배제를 통해 포섭하려고 하는 통치 체제를 바라보게 해주었으며, 결국 랑시에르에 와서는 민주주의를 혼란으로 보는 엘리트들에게 민주주의는 ‘원래’ 혼란한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민주주의는 만들어진 것,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행위 위에 잠시 존재하는 현상일 뿐. 나의 행위가 사라지면 언제든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는 체제다. 누군가 메시아가 나타나서, 선량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 줄 일 따위는 결코 없는 것이다.
강의 마지막 시간, 수업장은 눈물바다가 될 뻔했다. 마지막 시를 낭독하던 선생이 그만 눈물보가 터졌기 때문이다. 세계의 문제와 늘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철학자. 세상에 대한 앎에 다가서기 위해 정치공부를 택했는데 자신이 아는 것만큼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며 그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세월호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을 그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고, 우리보다 혹독하게 자기 반성하고 있었다. 그가 눈물을 터뜨렸던 건 마종기 시인의 <대화>란 시에서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 시가 불이야? /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란 대목이었다. 그에겐 철학을 하는 것이 등불이었다고 했다. 문학을 전공했던 그가 보여주는 감수성이 불편한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강단에서 저렇게 진심을 다해 강의하고 자신의 서성거림, 주저함까지도 모두 보여주는 선생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마치 아는 것처럼 떠벌렸으며, 자신이 아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앎을 떠들었다. 학생들과 공감하면서 세상의 문제에 진심을 다해 대면하고 고민하고 모색하는 모습 자체가 어떤 뛰어난 철학가의 이야기보다 더 의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는 분명 우리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전환의 계기가 된 것 같다. 더 이상 침묵하거나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뚜렷하게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정치에 전혀 관심없던 사람들조차 ‘국가란 무엇인가’란 문제를 심각하게 사고하게 된 것 같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세월호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에게는 숙명같은 일이다. 나는 그 시작을 ‘앎’에 두었고, 그 앎의 동반자로 김만권 선생이란 좋은 분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기대가 된다. <위기의 국가>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지.
오늘 아침 어제 참여연대 정세윤 간사님이 나눠주신 ‘프랑스 아동 민주시민 독본’을 손에 들고 아침 미팅에 참석했다가 주변 사람에게 보여주니 다들 반색하며 서로 복사해 가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나이 어린 후배부터 이제 아이를 둘(?)이나 갖게 된 부모 직원에 이르기까지. 결국 우리 팀 직원 대부분이 복사해 나눠가졌다. 그렇게 목이 마른 거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이 처참한 상황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따라서 김만권 선생님은 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앎을 전파해야 한다. 선생님의 실천은 그 강의 한 자락을 통해 커다랗게 자랄 밀알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기에.
P.S. 김만권 선생님께,
강의 시간에 말씀하셨던 17명의 철학자가 누구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그 17명과의 대장정을 부디 참여연대에서 함께해도 될 런지요.
그 대장정을 완주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