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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좌 마지막 시간 질의 응답 정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카데미 느티나무 인턴 김도형입니다.
김진호 선생님과 함께하는 5주간의 한국 기독교 강좌가 막을 내렸습니다. 수강생 여러분 만큼이나 제게도 삶의 여러 부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강좌 후반에서는 평소보다 긴 시간을 할애해 심도있는 질의응답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의문, 그리고 김진호 선생님의 답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올립니다. 다만 제 이해와 표현력이 짧아 말씀하신 뜻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중한 의견 주신 수강생 여러분과 답변 주신 김진호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개신교에서 너무나 강조하는 ‘착함’과 유일신교 특유의 배타적 분위기에 막연한 불편함을 느껴왔는데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더불어 칼뱅의 소명론의 개념 설명을 조금 더 자세하게 부탁드립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교회를 다녔고 그 후에도 교회계열 학교를 나왔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중에는 기존 기독교회가 불필요하게 세뇌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11조를 하고 있는데 교회에만 내는 것이 아니라 자선단체 등에 내는 금액까지 합쳐서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20년 째 다니고는 있는데 가슴으로 다니지는 않고 머리로만 다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UFO, 외계인 같은 느낌의 미지의 존재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얼마 전 천국은 없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조갑제로 대표 되는 보수우익 세력 배후에 기독교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특히 미국 단체를 포함한 국제 세력의 의지가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자면 극우 목사들이나 뉴라이트 등의 배경이 된다고 할까요. 그리고 교리 상 기독교인들은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데 한국 기독교는 이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라시대 조각에 있는 십자가문양을 기독교 전래의 증거로 봐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또 통일 후의 민족의 심벌로는 단군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기독교에서는 반대하지 않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답변
칼뱅이나 루터 등 소명론을 처음 이야기하기 시작한 종교개혁가들은 모두 라틴어가 아닌 민족어를 사용하며 대화하던 이들, 즉 부르주아 출신입니다. 이들 부르주아 부유층의 자제들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부르주아 정신을 신학화 한 논리를 소명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발언은, 기존 교회가 말하는 천국은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기독교는 평화주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종교입니다. 역사적 과오에 속죄부터 해야 하는 종교이지요. 특히 한국 기독교는 소위 ‘거룩한 전쟁’을 지지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전체적으로는 평화주의운동도 분명 존재합니다. 퀘이커 교도들이 특히 그런데요. 영국이나 미국 쪽 평화센터는 거의 퀘이커 센터나 마찬가지입니다.
신라시대의 기독교는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기독교 동방 전래의 증거들이 종종 발견되는데 대부분 경교 계통입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에서 자행하는 단군상 훼손 등은 분명 잘못입니다. 기독교가 해당 지역의 전통에 대한 연구나 전통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신학교수들 정도지만 대부분 교회에 말하지는 못합니다.
-주일학교에서 하는 축복과 통성기도 같은 것들이 하나같이 세속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모습이라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목사님들이 설교 내용에 교리와 무관한 개인적 견해를 끼워 넣는 것 역시 매우 보기 안 좋았는데 한국사회의 문제와 맞물린 배경을 알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하지만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만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도 다양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비판이 빈번한 현 상황에 대한 고민 끝에 강좌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들도 교인이 많고 제 부인도 신학대를 나왔는데, 강좌 수강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실마리를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비록 부패했다고는 하지만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래도 아이들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주일학교교사는 할 것 같습니다. 대안으로 주로 작은 교회 등의 교회 비주류 운동을 강조하셨는데 주류교회 자체의 변혁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권사로 계세요. 그래서 저랑 대립이 잦은데 어머니를 좀 이해해보고 싶어서 수강했습니다. 주로 대형교
회의 역기능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순기능은 없었을까요?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교회는 싫고,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발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할 수 없었는데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의 경우 처음 천막교회에서 시작할 때의 목적이 목회활동 자체였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돈을 많이 버는 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교회가 중대형교회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거쳐가는 목사님들 마다 설교 내용이 기복신앙, 휴거론 등 다양했습니다. 작은 교회 운동의 취지에 가까운 분도 계셨었어요. 교회 청년들에게 계몽운동이나 야학 등을 권하시곤 했는데 정작 그분은 그 교회에 오래 계시지 못 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류 교회의 입장은 다양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규모 교회들을 포함하면 각 교회의 성격에 따라 생각보다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주류교회의 변혁 가능성은 솔직히 전혀 없다고 봅니다. 큰 교회는 그 권위를 벗어버리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반면 작은 교회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매우 탈권위적인 흐름이 있어요. 80년대 민중교회운동의 실패 이유도 목사의 권위의식과 주체화 되는 민중의식의 충돌 때문이었고, 지금 그 목사들 대부분은 보수화 했습니다. 기존 목사의 권위체제와 전혀 다른 방향성을 바라보는 작은 교회운동이 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의 순기능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양산될 수 밖에 없었던 이농민, 이주 노동자들의 정서적 구제가 가능했다는 거죠. 이들 계층은 상당부분 범죄자가 되기 쉬운데 한국사회에서는 놀랄만큼 그런 현상이 적었습니다. 일종의 종교사회학적 기능으로 이런 부분이 대형교회의 성장과정에서 맡았던 순기능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기능이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말씀드렸다시피 달동네에서 천막교회로 시작한 사람이었고 적어도 그 시절의 그는 어려운 이들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다고는 말하기 어렵죠. 영향력이 커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퇴색하고 부패하고 스스로 주창한 성공주의에 빠져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은교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타자성과 타자화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자세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종교는 인정하지만, 신앙인들의 비리, 범죄 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수강신청을 했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의 큰 뜻을 단순히 착하게 사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더 복잡해졌습니다.
-작은 교회가 정확히 무엇인지, 실제로 주변의 많은 교회들 중 작은 교회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기독교사와 한국사회사의 맞물리는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타자성과 소외 속의 이농민 입장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고요. 왜 한국교회에서 타자는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하위주체로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기독교회가 왜 지탄받는지 궁금했었는데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작은 교회 운동이 교단 전체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타자성에 관한설명을 다시 한 번 드리자면, 기독교는 유일신 종교다 보니까 타자성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신교에서는 타자인 신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기도 한데요. 쉽게 말하면 어떻게 신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문제는 다양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너무‘교회’, ‘교단’의 의지에 주도되어 왔다는 게 문제입니다. 신앙해석의 좋은 전통으로 민중 신학과 토착화 신학이 있는데 먼저 토착화 신학은 전통문화에서 타자성을 찾는 방법입니다. 불교와의 대화 등을 시도한 변선환 목사님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민중 신학은 한마디로 사회의 고통에서 계시를 읽어내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낙경 목사님이 대표적인 분입니다. 두 부류 모두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지 않는 신학이지만 한국 주류교회/교단에서는 배척 받고 있는 현실이구요. 현대 신학에서 신을 어디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 중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이 타자성의 실험도 한국에서는 철저히 외면 받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물론, 규모가 작은 교회가 많지만 규모의 문제라기보다 기존 교회나 교단 측의 권위성을 벗어난 교회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존교회의 예배형식을 지키기 보다는 모든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찾아볼 수 있죠. 이를테면 찬송가와 관련된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기존의 찬송가나 복음성가 대신 스스로의 규모와 체제에 맞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른다든지 운동가요나 대중가요를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교회를 찾으려면.... 사실 겉으로 보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가 보고 그 교회 사람들과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눠보면 이 교회가 크기만 작은 대형교회인지, 작은 교회 운동을 하는 교회인지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가 행하는 적극적인 어필 등은 단호하게 물리칠 필요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런 작은 교회 운동은 기존 교회나 교단 측 주류신학자들로 부터는 철저히 외면, 혹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통제가 없어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큰 교회나 교단 측에서 지원을 받는다든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