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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독서서클-WA' 동물권 읽기
젠더와 인종차별을 공부하며 타자화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삶을 구성하는 큰 일부가 되었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불편한 것이 많아졌고, 많은 언어의 유입과 손실을 경험했다. 내 세계의 지각변동은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타인에게 공격이자 도전이었다. 관성과 방어기제로 무장하고 논리의 오점을 파헤치는 사람들 때문에 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책을 집어들게 한 것은 사고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갈 때의 희열이었다. 알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존재를 확장할 때 자유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내 관심의 대상은 늘 인간이었다.
특별한 계기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동물권 독서 모임에서 또 한 번의 거대한 삶의 지각변동을 겪었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인간이란 테두리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나에게 동물의 권리라 하면 운동화 속의 돌멩이였다. 성가시지만 걷다가 멈춰 신발을 벗는 것은 귀찮아서 어딘가 찝찝한 채로 안고 살아가는 문제였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네덜란드에 살 때 만난 수많은 채식인에게 무지를 가장하여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도 많았다. 사고의 벽을 허물 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의 견고한 종차별주의적 사고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독서서클 ‘와’에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동물학대의 사회학>, <동물의 권리>를 읽고 토론하며 걸음을 자주 멈추고 운동화 속의 돌멩이를 빼내 이리 저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물학대에 어떤 행위가 포함하는지, 학대의 대상은 의식이 있는 동물이어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기준자체도 인간주의적인 것은 아닌지. 피부처럼 익숙했던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기에 혼자였다면 금방 지쳤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문제에 천착한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어려움에 공감하며, 겸허하게 사고의 한계를 반성하고 동물을 새롭게 사유하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육식을 해온 사람으로서, 처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며 가장 내면화하기 힘든 문제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논의였다. 촘촘하게 구조화된 자본과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식탁에 올려진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있어도 살생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채 포장된 고기는 문제를 비가시화하고 우리를 무감각하게 한다. 산업화에 길들여진 나 역시 보기 좋게 요리한 고기를 생명체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었다. 하지만, <동물학대의 사회학>을 읽으며 보다 간접적인 폭력을 동물 학대의 범주에 넣고, <동물의 권리>에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과 온전한 의식을 가진 소에게 부여된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입에 넣던 고기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식에 단계적으로 진입하는 요즘은 일상 자체가 도전이고 어려움 투성이다. “유별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채식 식당을 조사하는 부지런함이 없으면 많은 경우 배고픔을 느끼며 어딘가 아쉬운 식사를 하기 일쑤다. 유튜브에서 보던 비건들처럼 맛있고 건강하게 먹으면서도 신념을 지키려면 상당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특히 우리나라에서). 하지만 내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며 그 어느 때보다 음식과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떠나, 나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하고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 것이다. 고기를 못 먹어서 어쩌냐는 많은 이들의 염려와 달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찾아보고 나만의 요리를 시도해보는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올 겨울 불편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 늘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계획되어 있던 세 번의 동물권 독서토론이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단톡방에서 동물권 관련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채식 식당을 서로 추천해주기도 한다. 1월에는 한 번 더 책을 선정하여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동질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우리 사회는 동물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척박한 환경이지만, 함께여서 든든하다. 차별과 폭력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찔러보며, 마땅히 느껴야 할 불편함과 사유를 확장시키는 즐거움으로 분주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