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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소모임] 7/13<종로 피마골> 답사&공부하고 왔어요
안녕하세요? 아카데미느티나무 전보임입니다.
지금은 대표 강좌가 되어버린,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근현대사>의 강좌 후속모임 소식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강좌를 매개로한 자발적인 소모임들의 탄생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3 봄학기 종강이후
<느티나무 근현대사 공부&답사 소모임>이 생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달 몇 분이 모여 대략적인 일정과 진행에 대한 의견을 모아 봤습니다.
(향후,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들이 추가 의견 내어 수정보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매월 둘째주 토요일 점심부터 오후까지 진행
-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장규식 / <서울은 깊다>,전우용 두 책을 중심으로
- 매월 주제를 정하고, 해당 분량을 함께 읽고
- 중심 발제자의 역할은 내용을 조금 더 깊게 공부해 오고^^ 그것을 중심으로 모임에서 나눈 뒤, 답사지로 이동하여 안내
2013년 7월 모임 <피마골 풍물기행>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 일정 : 2013년 7월 13일 토 점심 12시 /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
( 답사까지 진행하면 약 3~4시까지 진행, 이후 뒤풀이^^)
# 발제 및 안내자 : 차수련
# 주제 : 피마골 풍물기행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p.240 - 265 읽어 오시면 좋구요.
(미리 텍스트 읽기가 여의치 않으시면, 7월 공부&답사 안내자 차수련님의 당일 발제로 대체)
# 차기모임 : 2013년 9월 7일 (토) 오후내내 / 발제자 김원식 /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석파정-간송미술관-백사실계곡 등
- 피마골은 질그릇과 뚝배기로 상징되는 ‘서민 전통의 문화 공간’이다. 종로1가에서 종묘까지 큰 길 양편 시전행랑 뒤쪽으로 나있던 골목길 ‘피마골은 조선 시기 서민들이 고관대작들의 큰 길 행차를 피해 접어들었던 그들만의 해방공간이었다.
종로3가 단성사 골목에서 종로1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까지 북으로만 그 자취가 남아있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의 쌍생아로서 피마골의 역사는 서울이 조선 왕조의 새 도읍으로 조성될 당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마골은 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제골목길’이다.
피마골을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비단 그 오랜 역사뿐만 아니라 폭 1km 남짓한 이 누추한 골목길에 녹아있는 ‘서민들의 일상의 애환과 살내음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은 지금도 값싸고 푸짐한 음식점과 술집들이 이곳의 공간 아이덴티티인 개방성과 서민 취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서민 전통 문화의 거리인 셈이다.
-우리는 문화유산 하면 보통 궁궐이나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같은 골동품을 생각한다. 조선시대 10%도 안 되는 양반 지배층만의 전유물이 ‘전통’인가? 청자 백자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실생황 용구인 질그릇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체취가 듬뿍 베어있는 서민들의 문화유산을 찾아 피마골 풍물기행에 나선다.
1) 피마병문
-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단성사로 가다보면 종묘로 통하는 일직선의 골목길
- 일제하에 지게꾼, 인력거꾼, 미장이 등이 하루의 일거리를 찾아 대기하는 인력시장이 열렸던 곳
2) 단성사
- 한국 영화사의 산 증인. 1907년 6월 지명근, 주수명, 박태일 등이 공동 출자하여 지금의 위치에 기존 목조 2층 건물 가지고 설립한 극장
- 개관당시 기생들의 판소리 민요 민속 무용, 악기 연주와 재담, 무속 등을 공연하던 전통 연회 전문 극장이었다.
- 1914sys 서양식 외형에 일본식 내무 실내를 갖춘 1천석 규모의 극장으로 신축 개관 - 신파극 공연, 장한몽(이수일, 심순애)
- 최초의 국산 영화 제작(박숭필) - 의리적 구투
- 1914. 10. 27 (영화의 날)
- 1918. 쇼치구영화사, 미국 유니버셜사로부터 직배로 필름 수입
- 1926. 아리랑 - 민족 정신을 일깨운 민족 영화의 이정표
3) 명월관 (서울 3대 요리점 명월관,천향원,식도원)
- 서울 장안의 제1의 요리점
- 1904. 동아일보 구사옥 자리에 개업
- 1918. 화재로 지금의 피마디리극장 제2관 자리에
- 비단이 장사 왕서방...
- 기생들은 본래 궁중이나 지방 관청에 딸린 식구들이었으나 1984년 갑오개혁 때 기생안이 혁파되면서 자유업자로 처지가 바뀜
- 기생 조합: 한성기생조합(서울), 다동조합(대동권번 평양),한남권번(전라,경상)
- 요리점과 기생는 정인들의 밀실 정치를 의미하는 ‘요정정지’ 신조어
4) 선술집
- 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 - 단돈 5전에 약주, 막걸리 한 잔에 안주 한 고치
- 신분, 계급에 관계 없이 누구나 서서 같은 장소에서 먹는다
- 술국이나 목판에 놓인 육포, 어포, 너비아니, 제육, 편육, 빈대떡 같은 안주를 마음대로 골라 먹음
- ‘민중호텔’
- 동양루 - 규모가 큰 선술집
- 1930년대 중반 종로 1가에서 동대문까지 220개의 선술집
5) 조선극장
- 인사 문화 마당(천향원 자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주차장 자리
- 우리나라 신극운동의 요람
- 황원균이 ‘조선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조선 연극을 상영할 것’을 표방, 1922. 11월 개관한 연극, 영화 겸용 극장 (700석)
- 명창대회,신극단체의 단골무대로 우리 문화운동에 기여
-, 박승희 창작극(길식이), 카츄사(톨스토이)
* 토월회 박승희를 비롯 일본유학생들이조직한 신극운동단체
토월회에서 극예술연구회)1932)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신극운동의 산실
- 이런 문화의 명소가 지금은 주차장으로 방치
6) 승동교회
- 북장로교회 선교사 무어가 1893년 설립
- 민중교회- 대갓집 소실, 백정, 장인 (첩장교회)
- 초대장로 박성춘- 1898. 10월 관민공동회의 연사로 나서 양반,사족만이 아니라 사농공상 모두를 합하여 나라의 기둥으로 삼을 때 나라의 힘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
- 3.1 운동 당시 학생단, 거사의 거점으로 유명
- 1919. 2. 20 전문 학생 대표들 첫 모임 - 학생 지도부 구성
- 3. 1운동 전야인 2. 28 모여 학생동원 최종 점검, 독립선언서 배포 등의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이어지는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의 발판 마련
- 지금의 예배당은 증축했지만 그때의 건물골격은 유지
- 승동교회는 백정이나 첩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3.1 운동의 발상지로 한국 근대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김
7) 인사동 전통 문화 거리의 산파 계명구락부와 한남서원
(가)계명구락부: 1918년 박승빈을 비롯한 지식인 33명이 발기하여 창립한 단체로 기관지 「계명과 고서 등을 간행하고 음력설 폐지와 두루마기에 단추 달기 등의 의식주에 걸친 신생활 운동 전개하던 당대 문화 운동의 사랑방이었다
- 좌장 박승빈 - 조선 어학연구회 조직, 한글 운동
- 인데코 화랑 위층 (복혜숙이 운영하던 바, 비너스)...지금은 신선설렁탕집이 들어서 있다.
(나) 한남서림
- 간송 전형필이 운영하던 고서점
- 전형필 - 우리 문화유산 수집 - 우리 문화재 해외 유출 막는 파수꾼
*1930년대 고서,골동,서화, 병풍들을 중심으로 고서적과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인사동길에 들어섰다
- 1934. 성북동 별장과 주변 땅 만평을 사들여 북단장을 개성하고 1938년 개인 박물관으로 보화각을 지었는데 그것이 간송 미술관이다
- 전형필이 10만석 재산을 들여 수집한 고려청자, 청자백자, 훈민정음 원본, 신윤복의 풍속화, 추사 김정희의 작품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소장돼 있는데 그 상당수가 한남서림을 통해 수집한 것들이다.
- 간송 미술관의 모체
8) 이문설렁탕과 피마골의 음식 문화
- 명월관 분점 태화관 (현 태화빌딩-인사동 네거리에서 서쪽 태화관길) : 민족대표 33인이 그들만의 독립선언을 거행했던 곳
(가) 이문설렁탕
- 여기서 다시 삼성 빌딩 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가면 오른편에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문설렁탕
- 당시 한 그릇에 15전
(나) 전통식당 - 오늘날 대중 한식집의 원조 (연-탕, 갈비구이의 원조)
(다) 청진동 해장국
<마무리>
우리네 서민문화와 보물 창고로서 청진동을 표함한 피마골 전체가 가지는 공간 아이덴티티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만이 풍기는 사람내음이고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한 가운데 피어나는 인정이다. 이 곳이 누추해서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추함이야말로 피마골을 피마골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피마골의 1m 남짓한 조-한 골목길은 6.25 전쟁의 총탄세례, 근대화와 도시화의 거센 물결도 어쩌지 못한 서민들의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이다.
이 곳을 청결하고 깔끔하게 가꾸는데 신경을 쓸지언정 성형 수술하듯 인위적인 칼은 들이대지는 말자. 그리고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피마골만의 맛과 멋과 소리를 먹고 마시고 느끼자.
*발제 및 내용 요약은 차수련, 사진은 전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