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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인터뷰ㅣ'심장 하나, 다리 넷' 유상모 회원
심장 하나, 다리 넷
유상모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나보다.
“정작 전 걱정 안 하는데 남들이 더 걱정해요. 그렇게 놀고 대체 일은 언제 하냐, 회사는 잘 굴러가냐….”
어? 일 하세요? 난 그가 은퇴한 줄로만 알았다. 내가 평소 보아온 그의 얼굴은 딱 ‘노는 사람(?)’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뇌가 당황한 사이 입이 재빠르게 사고를 친다.
날라리 같으세요. 윽, 그게 아니라 얼굴에서 빛이 나신다구요.
그의 유쾌하고 즐거운 에너지를 핑계 삼아 오늘 난 계속 덜렁댈 예정이다.
일 이야기는 짧게
노는 줄로만 알았는데 생업이 있다는 놀라운 반전으로 시작하는 인터뷰. 그것도 무려 중견업체의 CEO라니!
“엔지니어링 업체예요. 쉽게 말해 토목 분야인데 4대강 같은 거 설계하는 일을 하죠.”
팥빙수 한 숟갈을 입에 떠 넣다가 하마터면 제대로 사래가 걸릴 뻔했다. 켁, 켁. 4대강이요?
“예를 들어 한강변을 정비한다하면 저희 업체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어떻게 정비를 할 것인지 설계·검토해서 최종 디자인을 해요. 그 설계를 가지고 시공사가 공사를 하고.”
그럼 4대강 한창 할 때 돈 좀 버셨겠네요?
“그땐 일이 많았죠. 근데 결국 4대강 때문에 토목업체들이 망하게 생겼어요. 일이라는 게 꾸준히 들어와야 먹고사는 건데 4대강 때 왕창 몰아서 하고 나니 이젠 일이 없거든요. 정부가 돈을 다 써버려서 복원공사도 하기 어려울 거예요. 지금 전국의 상하수도관도 전부 교체해야 하는데 수자원공사도 4대강에 돈 다 써서 이거 못하고 있잖아요. 1조면 전국의 웬만한 관(파이프)들은 전부 바꿀 수 있는 돈인데, 참….”
4대강은 단지 4대강 하나만 문제가 아니었다. ‘녹차 라떼’로 대표되는 자연파괴 문제만도 아니었다. 거대 토목공사가 남긴 폐해들 중엔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깨끗한 물을 마실 나의 권리도 있었다. 그나저나 얼굴에 빛이 나는, 일명 ‘노는 오빠’의 입에서 토목이니 4대강이니 하는 단어들이 나오니 영 기분이 묘하다.
사장님이시라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거군요.
“사장이라서 혹은 일이 없어서 그런다기보다 이젠 일이 지겹고 재미가 없어서 그래요.”
해서, 재미없고 지겨운 ‘일 이야기’는 짧게 마친다.
노는 이야기는 길게
제대로 놀아보자는 담대한 포부를 품고 사람들이 모였다. 모임의 이름은 ‘호모루덴스 소셜 클럽.’
“희망제작소의 ‘퇴근 후 렛츠’란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만든 모임이에요. 그 프로그램에서 ‘호모 루덴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제가 노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하하.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안 듣고 잘 놀 수 있는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제대로 노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종의 사회문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에 ‘50플러스 재단’에서 시민들이 만드는 소모임이나 단체의 설립을 돕기 위한 공모전이 있었는데 저희 단체도 선정되었어요. 현재는 사회적 기업도, 협동조합도 아니지만 계속 정체성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호모루덴스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은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인간관이다. 일은 하기 싫고, 놀고만 싶고, 해 보고 싶은 거 천지라는 그가 ‘루덴스 클럽’의 회장이 된 건, 그러니까 운명이다.
“오늘이 마침 ‘루덴스 데이’예요. 한 달에 한두 번 만나서 제대로 노는 날이죠. 멤버는 한 20명 쯤 되는데,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해요. 인터뷰 끝나고 같이 갈래요?”
네에? 전 한 10년 쯤 후에…. 근데 오늘은 뭐 하고 노나요?
“오늘은, 보자, (휴대폰을 꺼낸다) 처음엔 ‘제대로 건강법’, 그 다음엔 스마트폰으로 영상 촬영하는 법에 대해 배우고, 저희 모임에 서울 역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한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마지막엔 제가 탱고도 가르쳐줄 거예요. 이 프로그램 모두 저희 모임의 멤버들이 가르쳐주는 거예요.”
이 엄청난 멤버들을 만난 곳, ‘퇴근 후 렛츠’는 대체 어떤 프로그램일까?
“사업을 한지 15년 쯤 되었을 때였는데, 사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고 일상이 답답하기만 하고, 일이 잘 돼도 불안하고 그랬어요. 그때 만난 게 바로 ‘퇴근 후 렛츠’ 프로그램이었어요. 정말 행운이었죠.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거든요.”
10년 후에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나는 지금 삶을 즐기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을 들은 후 회사를 때려치우는 사람들도 꽤 있었죠. 억대 연봉을 받으며 보험회사에 다니던 사람은 결국 직장을 그만 두었어요. 지금은 보험금 제대로 타는 법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죠.”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나날들을 멈춰 서게 하는 근원적 물음들이 쏟아졌다. 짧고 단순한 질문들은 무감각해진 일상을 예리하게 파고들었고, 굳어진 삶은 그렇게 균열을 일으켰다.
“제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지금도 후원하는 단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일상도 많이 바꿨죠. 전엔 논다하면 골프 치고 술 마시는 게 전부였는데, 에너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재미있는 ‘꺼리’들이 많아졌어요. 광화문 집회에도 가고, 박원순 시장 선거 때는 함께 선거캠페인 활동도 하고, 평소 안 해 보던 것들도 배우게 되고,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것도 엄청 많아지고. 연극도 하고 싶고 그림도 꼭 배워보고 싶어요. 탱고도 ‘퇴근 후 렛츠’에서 만난 분에게 배운 거예요.”
‘호모루덴스 소셜 클럽'의 회장 정도면, 탱고쯤은 춰줘야 한다, 아무렴.
탱고를 추는 유상모 회원(좌)과 광화문에서 공연하는 '도시의 노마드' 팀원들(우).
심장 하나, 다리 넷
“1년에 한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탱고대회가 있는데 거기 참가자격을 얻기 위한 선발대회에 나갔었죠. 파트너랑 1년 정도 연습했는데 예선은 통과하고 본선에서 떨어졌어요. 어차피 아시아를 통틀어 한 팀만 뽑는 거니까, 이 정도 한 것도 훌륭한 거죠.”
탱고를 취미로 즐기는 정도가 아니었구나, 내 편협함에 찬물이 쫙 끼얹어지는 순간이다. 근데 이렇게 춤추면서 열심히 노는 거에 대한 아내분의 반응은 어떠세요?
“지금은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데,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죠. 처음으로 셔츠에 립스틱 자국 묻혀서 갔을 땐 살벌했거든요.”
립스틱 자국을? 그것도 여러 번?
“탱고를 추다보면 상체가 밀착되니까 여성이 키가 작으면 입술이 딱 셔츠깃 위치에 오거든요, 하하하. 혼자 노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해서 아내에게도 탱고 배우라고 했어요. 가끔 집에서 아내랑 와인 한잔 하며 함께 추기도 하고 그래요.”
이 대답에, 난 한동안 인터뷰가 아니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내분의 내공이 거의 부처님 급이다, 립스틱 자국은 지우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다 등등. 그러자 돌아온 그의 대답.
“제가 또 생활비는 따박따박 갖다 주는 성실한 가장이에요. 그리고 원래 남자의 와이셔츠 칼라는 여자들 꺼라고, 그런 말이 있어요.”
푸하하하! 정신없이 웃다가, 다시 질문, 탱고가 굉장히 밀착돼서 추는 춤인가 봐요?
“심장 하나, 다리 넷!”
이쯤 되면 인터뷰고 뭐고, 참석한 이들 모두 웃느라 정신이 없다. 에고고, 너무 웃어서 배가 다 아프다.
“탱고의 매력은 몸이 좋아진다는 거죠. 무엇보다 하체가 정말 단단해져요. 그리고 힐링? 힘든 일이 있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말없이 서로 몸을 기대고 춤을 추다보면 위안을 받는 느낌이에요.”
이야기만 들어도 황홀한 춤, 탱고. 그러나 그의 춤 이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참여연대 느티나무에서 ‘도시의 노마드’란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춤출 때조차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느티나무에서 자유로운 춤을 춘다 해서 당장 와 봤죠. 근데 정형화되지 않은 춤이 더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아, 내가 잘못 왔구나! 하하하”
여전히 심심하고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 좀 해주세요.
“요즘 세상은 외부의 자극도, 정보도 너무 많은데 사람들은 그걸 슬쩍 접하고선 마치 자신들이 전부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정작 개인들의 판단력과 사고력은 굉장히 떨어져요. 이런 타성과 경직성을 깨고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려면 몸을 많이 움직이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시도해봐야 해요. 내가 먼저 시도하고 참여하면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언젠가는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는 오빠’라고 장난스럽게 불렀지만, 삶과 세상에 대한 그의 사유와 철학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가 ‘놀이’에 집중하는 것 또한 이 땅의 척박한 문화에 대한 끝없는 고민 때문이다.
“60세 전후로 은퇴한 사람들이 갈 곳이나 누릴 문화가 거의 없어요. 이대로 두면 좀 있다간 그 사람들 전부 파고다 공원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런 근본적인 고민들을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모임도 하는 거죠. 남은 반생을 어떻게, 어떤 ‘꺼리’들을 가지고 향유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후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여, 그는 지금도 일하는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광장에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도시의 노마드’ 팀원들 하고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10월인데도 칼바람이 불고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요. 촛불을 든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 근데 춤을 추고 나니까 드는 느낌이, ‘아, 내가 이 깊은 상처와 슬픔의 한 조각을 함께 했구나.’ 눈물이 흐르면서 동시에 희열이 느껴졌어요. 내 스스로가 치유 받는 경험이었죠.”
문화는 놀이의 형태로 발생했고, 문화는 아주 태초부터 놀이되었다. 생활의 필수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들, 가령 사냥도 원시사회에서는 놀이의 형태를 취했다. 사회생활에는 생물학적 형태를 벗어나는 놀이 형태가 스며들어가 있었고, 이것이 사회의 가치를 높였다. 사회는 놀이하기를 통하여 생활과 세상을 해석했다.
-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중에서
여느 사람들처럼 그 또한 인생의 대부분을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로 보냈기에 행복과 즐거움은 늘 추상의 무엇이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놀라운 개념이 일상을 잠식해가던 타성들을 무너뜨리자 그의 놀이는, 그의 춤은, 즐거움에서 공감으로, 희열과 치유로 변화하고 확장되었다. 칼바람이 부는 광장에서 꽁꽁 언 손으로 촛불을 든 채 춤을 추었던 날. 그날 의 눈물은 생활과 세상에 대한 그의 해석을 바꾸어 놓았다.
한 여성주의자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심장을 세상에 한껏 밀착시키며 진행 중인 그의 혁명은 그래서, 탱고처럼,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