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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2
7월 6일 진행된 박노자 선생님의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두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평소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아니다보니 생소하게 여기실 분도 많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두 번째 강의 시간은 첫 번째 시간에 이어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추가로 소개하면서 지금 시점에서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1. 공산주의의 내용이 이상적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으로 종종 인식되지만 박노자 선생님은 조선시대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주장에 의외로(?)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시급히 이뤄야 할 유의미한 주장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노동자 해방, 노조 등 결사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은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노조 활동가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나라이죠. 토지개혁 같은 문제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토지개혁을 거론한 것은 조선인 대부분이 농민(소작농)이었고 식량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지금 한국사회를 봤다면 주택문제 해결을 의제로 제시했을 겁니다.
그 외에도 기층대중의 권익이 보장되는 근대, 철저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온전히 독립된 민족국가 실현, 민중적 활동의 자유 등이 그렇습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분단체제 및 미국보호령 상황 해소, 경찰탄압 중지, 학생들의 완전한 자유연애, 부동산 부자에 대한 과세 강화 등등의 목표가 이들 구호와 연결돼 있고 아직 한국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임화의 근대론
당대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문학가로 꼽히는 분이죠? 임화가 활동하던 시대 그가 가졌던 의문은 왜 식민지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탄압받는 '밑'(프롤레타리아)으로부터의 계급운동과 혁명이 자연스럽게 발생해야 하고, 그러자면 당시 식민지조선만큼 '약한 고리'도 없지요. 그러나 현실은 일본이 세계대공황을 파시즘으로 극복하려 하면서 공산주의에 탄압을 가하고 오히려 많은 조선 인사들이 전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임화의 답은 조선의 근대가 '이식된 근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이란 '상부구조'가 발전하기 위해선 토대 역할을 하는 '하부구조'가 존재해야 하는데, 조선은 태생적 결함으로 자본주의를 스스로 탄생시킬 수 없었고, 일본을 통해 이를 이식받아야 했습니다. 임화는 신소설이나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도 일본에서 이식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조선의 근대화는 압축적이고 파행적인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정작 프롤레타리아들은 계급운동이나 혁명에 관심이 없고 일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운동의 방향을 놓고 파벌다툼을 벌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도 실제 계급현실에 기반하기보단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몇몇 아시아 국가들이 '토착적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 현재 임화의 '이식된 근대론'은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지식담론 역사를 보면 그의 비판을 곱씹어볼 지점들이 분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종속이론 같은 경우도 한국의 노동계급이 자연스럽게 생산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외부에서 수입해서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려 했던 것이죠.
3. 허정숙, 주세죽, 박진홍 등 "붉은 여성"들의 연애론
여성 혐오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 강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은 여성 공산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과거의 정조 개념을 타파하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남녀평등을 주장함은 물론, 자유연애를 지지하면서도 그 안에 존재하는 한계들도 비판합니다.
이들의 연애론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이들 여성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운동가"였습니다. 이들은 운동하던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자 다른 동지와 연애 관계를 맺거나(허정숙), 부부간에 호칭을 "집사람"으로 통일하는 등(박진홍) 남녀평등을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아가 동지와의 연애 후 허물없이 동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관계가 단수일수도 복수일수도 있다고 보는 태도도 나타납니다.
당시 공산운동이 남녀평등을 지향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의 역할은 아지트 키퍼 같은 부차적인 수준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흔했다는 것, 남성 공산주의자들도 연애보다 계급운동을 우선시하면서 금욕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젠더 문제를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들의 연애론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 신여성 자체가 조선사회에서 매우 드무었을 뿐더러, 그 때문에 매체 일각에서는 이들의 "붉은 사랑"을 퇴폐적인 가십으로 다루려 하는 시각도 나타납니다. "여성이 이렇게까지 막 나갈줄이야" 식의 선정적인 어조의 기사가 많았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이 많습니다. 허정숙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사에서 여성들이 집안에선 아버지/남편, 집밖에선 노동자로서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그래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현재 한국 경제 역시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정규직을 떠맡기거나 무급노동(가사노동, 가족의 사업 돕기 등)을 강요함으로써 작동하고 있습니다.
김옥엽이 "청산할 연애론"에서 쓴 자유연애 비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자유연애가 봉건시대에 비교했을 때 진보적인 것은 사실이나, 자유연애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자유연애 자체가 어느 정도 재산을 지닌 유산계급이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 아무리 자유연애를 부르짖을지언정 실제 결혼에서는 계급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자유연애가 일상화된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3. '전위당 이론'과 유기적 지식인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 혁신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반면 비판받을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당과 대중을 수직적인 관계로 놓는 계몽주의 패러다임에서 끝내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파업을 지도자에 의해 "영도"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인식, 운동을 통해 "대중을 획득한다"는 표현, 개인숭배까진 아니더라도 레닌 같은 지도자를 피라미드의 상위 위계에 올려놓는 사고방식 등이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공산운동이 보였던 문제점들이 이후 한국 좌파운동에서도 반복돼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학벌의식이나 운동가들이 노동자 위에 군림하려는 의식, 여러 운동 노선 간의 갈등, 운동 안에서 민주성이 얼마나 확보되었는가 하는 의문 등이 그 예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당시 공산당에서도 제기됩니다. '당이 지식인에 의해 영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1930년대엔 일선 노동자 출신 운동가들이 그람시적 의미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공산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철도 노동자 출신으로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자리까지 오른 차금봉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 박치우의 민족주의 비판
박치우는 박노자 선생님이 지금 시점에서 재발굴할 가치가 높다고 꼽은 공산주의 논객인데요, 1930년대와 해방 이후 신문 칼럼을 통해 자유, 파시즘, 민족주의 등의 개념을 흥미롭게 다뤘다고 합니다.
박치우의 관점에서 근대는 잠재적으로 파시즘을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파시즘의 도래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민계급의 자유를 통해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조직 안에서 '통제'하려고 드는 자기부정에 빠집니다. 특히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 논란처럼 몇몇 국가들이 다시 국가경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박치우의 관점에 비춰보면 이들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부른 일종의 '퇴락'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박치우의 민족주의 비판도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동원한다는 지점에서 나옵니다. 그는 타이나 폴란드 등을 주목하면서, 자기 국가를 '피의 공동체'로 부른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를 움직이는 지배이데올로기가 파시즘이라고 봤습니다. 이들 국가처럼 식민지화를 겪지 않은 후진사회는 자연스럽게 파시즘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박치우는 파시즘이나 극우민족주의가 민족을 "피"나 "흙" 등으로 정의하지만 실제 민족은 "의식", 즉 "자각"의 공동체라며 민족성의 긍정적 의미를 살리려면 민족문화부터 발전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6. 결론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당대 조선에서 계급/민족/노동/여성/이성 등등의 가장 충만한 해방을 추구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자율성을 확보한 개인상을 추구한 점, (파시즘의 특성인) 신비주의를 배격한 점 등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연을 통해서 살펴본 공산주의 사회세력은 해방 후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소멸했다는 점이 한반도 현대사의 비극이라는 게 박노자 선생님의 지적입니다. 남한에선 반공의 이름으로 탄압받았고, 월북한 이들도 북한에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이번 강의를 통해 언급된 인물들에 대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좀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인물도 있고, 박헌영과 주세죽의 연애사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