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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4강, 인간 사회는 왜 불평등해졌을까? 루소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4강(12/02) 인간의 사회는 어떻게 불평등해졌을까? 루소 <사회불평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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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3년에도 12월이 찾아왔습니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달인데다가 크리스마스까지 있어서 왠지 설레는 달이죠. 하지만 12월은 눈으로 하얗게 빛나는 만큼이나 추워서, 낮은 곳에 있는 이웃들에게는 더 힘든 때이기도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화목한 가정의 푸짐한 저녁 만찬을 부러워하며 길거리에서 죽어갔던 것처럼 겨울의 낭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공부할 루소도 12월의 성냥팔이 소녀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워했을 인물입니다. 왜 인간 사회가 이토록 불평등하게 되었는지 학문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했고요. 그런 루소의 이론은 결국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습니다.
1.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루소는 자신의 고향인 제네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저서마다 ‘장 자크 루소, 제네바의 시민(citoyen de Geneve)’이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또 루소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근면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고, 책 읽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해요. 루소 역시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며 평생동안 가난에 연연하지 않은 채 학문에 열중하여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죠.
김만권 선생님은 루소를 찌질이라고 지적하셨는데요, 정말로 루소는 자아도취가 대단한 나르시스트였습니다. 자서전을 정말 많이 썼고, 특히 <고백>이라는 저서에서는 ‘난 그 누구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며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장황하게 설명하죠.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책 내용의 ⅓이 거짓말이라는 거! 루소의 사상이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중시했던 것처럼 루소 그 자신도 참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2. 자연에서 사회로: 불평등의 시작
자연은 인간을 행복하고 선하게 만들었으나
사회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불행하게 만든다.
- <장 자크 심판자로서의 루소: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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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는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져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자연에서는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고작해야 가족으로 한정되고, 당연히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때의 인간이 갖는 자연적 감정은 자기 보존과 연민입니다. 특히 연민(compassion)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으로, 루소는 당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이성과 인간, 감성과 동물을 엮어 사고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이론을 펼치고 있죠. 다른 동물, 다른 동포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연민의 감정은 자연 상태의 자유로운 인간을 선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어떤 우연한 이유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함께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나타났고, 이것이 바로 불평등의 시작입니다. 참 특이하죠? 어떻게 여가가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건지 이해가 되시나요?
루소는 여가활동에서 각자가 남에게 인정과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게 되면서 자기애(amour propre)와 허영(vanity)이 탄생했다고 봅니다. 다른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립하면서 인간은 남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라고,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하게 됩니다. 루소는 이러한 욕망이 불평등의 씨앗이라고 말합니다.
3. 예술과 과학에 대한 혐오
방탕한 이여, 당신은 모른다 -<학문예술론>
예술과 과학은 우리에게 인류 문명의 꽃, 인간 진보의 극치로 여겨집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의 계몽주의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술과 과학이 타락의 정수라고 주장하며 충격을 안겨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루소입니다. 여가에서 발생한 자기애가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본 루소가 여가의 산물인 예술과 과학을 증오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루소는 천문학은 미신에서, 물리학은 과도한 호기심에서, 기하학은 계산에 밝은 인간들의 탐욕에서 온 것이라며 비난합니다. 과학을 사랑하시거나 전공하신 분들은 발끈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발칙하면서도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요?
사치와 연관이 있는 예술은 더 싫어했습니다. 나태와 허영심이 사치를 부르고, 사치는 도덕적 타락을 부른다고 생각해서, 사치하게 만드는 예술이란 공동체를 나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했어요. 루소에게 예술은 공동체의 방어에 필요한 용기를 형성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실속 없는 것일 뿐인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루소는 아테네가 아닌, 강인한 공동체였던 스파르타를 이상적인 도시로 꼽기도 합니다.
이러니 볼테르가 제네바에 대규모 극장을 지었을 때 루소가 엄청난 비난을 퍼붓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예술도, 과학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고 적정한 선에서 누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루소의 말을 들으니 과연 사치가 없는 예술이 가능했을까, (자연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파괴하지 않는 과학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4. 재산권: 불평등의 안정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사슬에 묶여있다. -<사회계약론>
인간 능력이 발달하고, 인간 정신이 진보하여 불평등이 강화되었다면 재산권은 불평등을 최종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인류의 자산은 모두가 공유해야만 할 것이지만 어느 순간 개인의 소유, 즉 재산권이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을 지배하는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폭력과 약탈을 일삼으며 강해지고, 부유해져갔습니다. 그렇게 자기애의 욕망과 재산권 분쟁이 휩쓸고 간 인간 사회에는 불평등 구조가 고착되었고, 이러한 구조가 인간의 악덕을 길러냅니다.
5. 정치공동체: 불평등의 치유
우리로 하여금 공평한 법을 만들게 하라 -<사회계약론>
그렇다면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안은 있는 걸까요?
루소는 '일반의지에 입각한 법이 있는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일반의지(general will)란 한 마디로 공동체의 공동선을 향한 의지입니다. 일반의지는 개개 의지들의 총합인 전체 의지와는 다른 것으로 일반의지가 법에 잘 표현될 수만 있다면 그 사회는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입법자가 lawmaker가 아니라 lawgiver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lawmaker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법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익에 따라 법을 만드는 반면, lawgiver는 일반의지에 따라 법을 만들어주고 나면 그 사회를 떠나야 합니다. 많은 근대 국가들의 법은 전문적 lawmaker가 만든 것이어서 복잡하고,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워 문제가 됩니다.
참고로 루소가 <에밀>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은 인간 본연의 감성에 충실하란 의미로, 사회계약론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라고 합니다. 일반의지에 따른 법이 연민을 품은 개인들을 이끌고 가는 사회가 바로 루소가 생각한 이상사회인가 봅니다.
글 : 자원활동가 김슬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