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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따라잡기> 2강 후기
6월 30일 김만권 선생님의 미국 대선 따라잡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1강에 이어 미국 정당체제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의 제3정당은 분명 존재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같이 무소속으로 당선한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실제 선거가 양당제 시스템으로 치러지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을 우대하는 제도가 미국엔 없고, 버니 샌더스처럼 당원이 아닌 사람도 각 당에서 입후보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당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개방성을 양 당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3정당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2) 각 주에서 정해놓은 선거 규칙에 제3정당이 성장하기 어려운 제한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대선 후보 출마를 위해선 일정한 수의 서명 숫자를 채워야 하는데 대규모 조직이 없는 제3정당들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이래 양당의 이념적 색채가 강해졌다는 특징도 들 수 있습니다. 과거 미국 정당은 지나치게 이념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공화당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민주당이 서로 경쟁해야 책임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화당은 보수 우익 계열로, 민주당은 중도 계열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념적 일관성은 생겼지만, 공화당 내 자유주의자와 민주당 내 보수주의자 같은 온건파가 당 내에서 사라졌고, 양당이 서로 대치만 할 뿐 제도적 완성은 낳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1강부터 시작된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선거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시스템이 매우 복잡한데, 핵심은 현재 미국 선거가 금권정치, 즉 돈이 많을수록 승리하는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50만개 이상의 공직을 선출 방식으로 뽑지만 선거 참여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여기엔 미국 유권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제도적으로 선거 참여를 가로막는 측면도 강합니다. 미국에서 선거에 참여하려면 각 주에 유권자 등록을 미리 해야 하는데, 이 절차가 까다롭고, 주에 따라 전과자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유권자들이 선거일은 알고 있어도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여기는 후보들이 유권자 등록 마감에 대해선 홍보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민주당 대선후보 선거에서 실제 분위기는 버니 샌더스에게 더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 것도 유권자 등록을 한 달 전에 미리 마감했기 때문에 당일 분위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사상 최대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썼다고 하죠? 미국에서 공직 선거에 뜻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선거자금 모금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TV에 나오는 소위 '의견광고' 같은 미디어 광고에 특히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필요한 만큼 선거 자금을 모을 수 없어서 미국 대선 후보를 뽑는 선거 투어 도중에 후보를 사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하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일단 미국 정치자금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크게 하드 머니(hard money)와 소프트 머니(soft money)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자는 후보들에게 직접 기부할 수 있지만 단체는 기부가 불가능하고 기부 액수 등에 대한 제한도 엄격합니다. 반면 소프트 머니는 그런 제한이 없지만 개별후보가 아닌 정당 건설 활동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당들은 우회로를 택하게 되는데, 후보들에 대한 지지 여부 대신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 메시지를 실어서 광고에 소프트 머니를 대량으로 쓰는 것이죠. 미국 선거가 낙태, 동성애, 인종문제, 총기 같은 특정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후 2002년 미국 의회에선 중요 선거자금 규제법안을 통과시켜 소프트 머니의 편법적인 사용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연방 정부 단위의 선거에서 소프트 머니의 사용을 금지하고, 선거 전 일정 기간 동안 이슈광고 자체를 제한하는 것 등이 이 법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당들은 여기에서도 우회로를 찾아냅니다. 연방 세법 527조에 의거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비영리 단체인 소위 '527 단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들 단체들은 면세 혜택을 받는데다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들에 대한 공격적인 광고를 쏟아부어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어서 등장한 단체가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는 PAC(정치활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입니다. 연방선거자금법은 미국정부와 계약관계에 있는 노동조합과 기업들이 PAC을 통해 정치자금을 형성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PAC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기부를 할 순 없지만, 대신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모금한 돈을 쓸 수 있습니다. 하드머니를 기부할 수 없는 기업, 노조 등 단체들의 우회로가 생긴 것이죠.
미국에 존재하는 PAC이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이 중 금권정치의 정점에 있는 것이 거액을 보유한 부자들과 기업들로 구성된 "슈퍼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2010년 미 연방 법원의 판결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스피치 나우'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등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특정후보와 결탁되지 않은 한 자금모금이나 이슈 광고 등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PAC의 무제한적인 모금을 허용하게 된 근거로 '표현의 자유'가 동원된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연설 능력이 주요한 장점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 버니 샌더스의 선전이 놀라운 이유 역시 이러한 금권정치의 실정에서 비롯됩니다. 모금 능력이 곧 정치인의 능력으로 치환되는 상황에서 오바마의 유연한 스피치만큼 사람들이 기부하도록 설득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반면 샌더스는 슈퍼팩의 지원을 거절하고 소액기부 위주로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자금 화력을 지닌 클린턴과 대등한 경쟁을 펼쳤으니 놀라운 것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죠.
미국 대선은 예비선거 - 전당대회 - 대통령선거 크게 세 단계로 치러집니다.
대부분의 주는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해 예비선거를 거칩니다. 실제 대선이 선거인단의 투표로 치러지기 때문에 예비선거는 실제 유권자들에게 후보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점, 정당의 통제력이 약하고 예상 밖의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편 주마다 선거규칙이 제각각인데, 정당에 당원으로 등록한 사람에게만 투표를 허용할 것이냐, 정당소속을 표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투표를 허용할 것이냐 등등의 기준에 따라 Closed Primary, Semi-closed Primary, Open Primary, Semi-open Primary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프라이머리 대신 '코커스(Caucus)' 방식을 택하는 주도 있습니다. 경선을 가장 먼저 치르는 주인 아이오와가 대표적입니다. 코커스는 미국 원주민 언어로 "함께 모여 큰 소리를 냄"이라는 뜻인데, 유권자들이 모여서 긴 토론을 거친 끝에 투표로 지지 후보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예비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할 대통령 후보를 뽑아줄 대의원을 선출하고, 이들 대의원들이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여 대통령 후보를 지명합니다. 예비선거 과정을 통해 대통령 후보는 실질적으로 이미 확정되기 때문에 후보 지명은 형식적이지만 여기서 부통령 후보를 함께 지명하고, 후보 지명 과정에서 분열된 당을 다시 단합시키기 위해 반대자들을 포용할만한 정당 공약을 발표합니다.
실제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인단에게 투표하고, 이들 선거인단이 다시 투표를 치러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선거인단은 상하원 의원과 워싱턴 자치구 의원 3명으로 구성된 538명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되는데, 각 주는 상원의원 2명에 인구비례에 따라 각기 다른 숫자의 하원의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마다 선거인단 숫자는 3명에서 55명까지 크게 차이를 보입니다. 대부분의 주들이 승리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승자독식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선거인단을 많이 보유한 주에서 승리하는 게 후보들에게 중요합니다. 반면 이 때문에 엘 고어처럼 유권자들에게서 많은 표를 얻었더라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밀려서 낙선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요.
한국의 대선에 비해 굉장히 복잡한데요, 김만권 선생님은 디테일에 매몰되기보다 현재 미국 정치의 복잡성과 결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금권정치가 대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미국의 기업과 부자들은 한 사회의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세팅해줄 편을 끊임없이 탐색해왔고 이를 위해 돈의 힘을 무제한적으로 동원해왔고 이것이 불평등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샌더스가 이번 대선에서 이슈화시킨 것 역시 불평등문제였음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역시 이 현상을 따라가는 측면은 없는지 살펴보는 게 미국 대선을 관전하는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