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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포스트 민주주의] 제2강. 제도가 된 지구 기업과 새로운 지배 계급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를 함께 공부하는 김만권 선생님의 독서클럽. 그 두 번째 강의에서는 민주주의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수퍼리치/초국가기업과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급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강의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과거의 자본가들은 정치에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는 육체노동자의 요구에 우선적으로 반응해야 했던 정부 역시 자본가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특별한 동기를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육체노동자의 수가 감소하고 이들을 대체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자본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정치 및 사회적 쟁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정치 및 군사영역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제엘리트(수퍼리치)들은 지구화 현상과 더불어 그들의 영향력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초국가기업'은 이제 민주주의에 있어 하나의 제도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우선, 초국가기업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대에 발생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중동 오일쇼크는 국가를 경계로 통제된 자본주의를 설계했던 케인즈의 패러다임을 붕괴시켰다. 케인즈의 총수요이론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잉여생산물들이 국경 밖에서 처리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디지털의 등장은 국가 간의 경계를 지우고 케인즈 패러다임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다른 기업을 먹어 치우며 몸집을 불려갔고, 이러한 현상은 경계(국경)를 넘어서도 계속되어 현재의 초국가기업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초국가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겠다', 또는 '국가를 떠나겠다'와 같은 위협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위협이 두려운 정당들은 '쉽게 떠날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 기업을 위한 정책을 설득하게 되고 유권자들은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하게 된다. 이로써 정부는 해당 정책에 대하여 강제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초국가기업들은 그 경영에 있어 '유연성'이라는 명목 아래 끊임없이 정체성을 바꾸는 '유령회사'가 되어간다. 실제 생산은 소규모 생산단위에 하도급을 주고 자신들은 금융부문에 자리를 잡은 채 이미지 관리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빈번한 적대적/우호적 인수합병이 일어나고 임시고용직이 확대된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게 되고, 고객은 어떤 기업이 어떤 상품을 생산했는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빈번한 변화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기업자산의 소유주이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보이지 않음'의 무기를 활용하여 반복적으로 새로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유구조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업들은 더 이상 상업적 사업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업의 유연성과 외견상의 효율을 동경하는 정부가 이를 달성할 능력을 가진 민간에 공공사업을 위탁하거나 그 사업들을 민영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는 기존에 잘 운영하던 사업영역에서 조차 그 운영능력을 상실하고 '제도화된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기업엘리트들은 영리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비영리부문에서도 정부에 대한 우위를 점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가와 정치인의 접촉이 빈번해지며 이러한 특권은 개별 기업을 위해 사용된다.
초국가기업들은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미디어를 장악하고, 미디어를 통해 시민의 정체성을 바꾸기에 이른다. 이들은 극단적 단순화와 감각적 선정성을 무기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바쁜데, 이 과정에서 정치적 토론의 질과 시민의 능력이 저하된다. 이들과 시청률에 있어 경쟁해야 하는 공영 프로그램 또한 동일한 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미디어는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 수 있다. 따라서 정당이나 여타의 기업들은 이에 영향을 받거나 종속되기도 한다. 미디어가 정치를 제한하는 것이다.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는 육체노동자들이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19세기 말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육체노동자 계급의 정치참여가 활발했고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가 정치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제조업이 붕괴되고 탈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육체노동자의 수는 급감했고, 20세기의 끝에는 육체노동자가 '역사의 패배자'를 대표하게 되었으며, 이들을 대체할 세력조차 마땅하지 않았다. 대안세력을 찾지 못한 정당들은 모든 계급을 두루 대변하기에 이르렀고, 확고한 지지기반을 상실한 정당정치는 위기를 맞았다.
오늘날의 중간계급들은 이질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단결의 구심점 또한 없으며 노동자와의 동맹은 꺼린다는 특징을 가진다. 명확한 정치의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러한 와중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세력이 바로 '여성'이다. 이들은 전통적 운동양식을 밟았으며, 이들을 '시간제 노동자' 또는 '과세의 대상'으로 보는 기업과 정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의 권리찾기를 강화해 나가면서 민주주의를 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