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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4강. 히라츠카 라이초. - '그리고 백년'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네번째 강의는 '히라츠카 라이초'를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히라츠카 라이초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여야 할까. 역사에서 그게 누구라도 몇년에 무엇을 했고, 어떤 단체를 만들고, 무슨 글을 썼고 하는 연표 정리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런 식의 사실관계는 오늘날에는 헌신적인 연구자들의 기여에 따라 포털에서조차도 쉽게 자료를 찾아 볼 수 있으니. 어쨌든 내가 쓰는 것은 강의에 대한 후기이지 않겠는가.
그러고나면 강의에서도 다루어진, 그 당시 여성운동 내에서 이루어진 논쟁들도 흥미롭지만 다루기에는 모자란 역량으로서는 막막하기 그지없다. 정조, 낙태, 폐창, 모성. 이들은 사실 큰 줄기에서 현재까지도, 그리고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기약하기 어렵도록의 미래에까지도 끝없는 논쟁과 토른의 거리가 될 법한 것들이니 말이다. 그 각 운동가들의 주장과 주 논점, 접근방법의 차이는 매우 흥미로우나, 내 부족한 역량으로 다루어보아야 강의안을 옮겨적는데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나면 배우느니 도둑질이라고, 악습대로 모호하고 큰 범위로 질질 끌어 돌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사가 분명히 지니는 속성은 그것이 '사실' 못잖게 지니는 '기억'으로써의 입장이다. 역사와 여성이라...
'세상 밖으로 나온 여성들' 강의의 주제이기도 한데, 여성이 역사에서 그 이름을 남긴 것은 고대 이래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몇조차 썩 아름다운 이름들은 아니다. 당장 우리와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에서는 폭정 혹은 망국의 근원에는 여성과 환관이 있다는 오래된, 편견으로 가득찬 레토릭하에서의 기록들이 대다수다. 그 개개의 퍼스낼러티와 별개로 그 한 인간이 악인인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는 있겠으나, 설령 그렇다해도 어떤식으로든 그토록 강렬한 기질이 아니었더라면 그 시대에 여성의 처지에서 이름을 남길수 있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몇 악인 -이른바 악녀- 들의 존재는 도리어, 그쯤 되지 않고서는 이름 자체를 남길 여지도 없도록, 여성이 억압받고 침묵 당해왔음에 대한 증거가 되어준다.
내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것은, 역사에 관련된 전공을 가졌기에 본 강의에서 다루어질 다른 인물들은 적어도 이름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 3인에 대해서는? 송미령만은 안다. 그녀 또한 처절하게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발자국을 남긴 한 사람으로서.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때때로 여성임을 수단으로 삼기는 하지만 -그만큼 제약으로도 되었을테니 일방적으로 비난 받을 꺼리만은 아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정치가이다. 한 사람의. 그것이 송미령 개인은 기뻐했을지 쓰게 웃었을지 모를 일이나,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여성' 의 한 성원으로써 기억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치, 성신황제(측천무후), 서태후 그리고 잔다르크 등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다른 인물들을 구태여 남성으로서 기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런 것과 별개로, 그들의 삶은 이른바 여성에서 실제적으로 자유로웠다고는 볼 수 없다. 당대에, 그리고 후대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여성'으로서 평가받고 대해진다. 적어도 그것이 평가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한다. 기계적인 공평의 잣대는 무한한 힘을 지닌 현실 앞에 무기력할뿐더러, 특별성 앞에서 차별의 도구가 되기 마련이다.
두서없는 난론이 되어버린 것은 본래도 그렇지만, 올 한해가 페미니즘과 젠더가 폭발적인 그러나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현재 진행형의 현상 그 자체를 빚어내며 아직도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 개개 사건이나 어떤 주장, 방식등에 대해서는 입이나 뇌가진 사람마다 제각기 하는 말과 할 말이 있고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분명한 것은 '여성'이 개인으로서, 혹은 개념으로서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존재 자체가 깨끗히 무시당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혐오자들조차도, 적시는 할지언정 외면은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나면 그것이 가능해진 시작도 역시 인류의 정점이던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비롯된다. 주제대로, 그때에서야 여성은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로부터, 히라츠카와 초기 활동가들의 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기억에 대한 투쟁은, 작금의 한국 역사교과서문제와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가열차다. 교수님께서 강의로 다루어주신대로, 일본 교과서 역시 각 출판사의 필진마다 나타나는 편집방향의 차이들처럼.
우익이라 하는 이쿠호샤 교과서는, 아예 최소한의 검정통과 기준만 충족하고는 모든 것을 제외한 극우 지유샤 교과서보다도 혐오스럽다. 여성운동을 정치 사회 운동에서 분리시킨다. 그리고는 마치 한국에서 쓰이는 '~의 꽃' 과 같은 역겨운 표현인 '나데시코' 일본사로 그것을 이름지어 별개 항목으로 넣어놓는다. 구태여 번역하자면 대강 아가씨들의 일본사쯤이 될법한, 그 천박한 어휘에 걸맞게도, 대표적 여성운동가들의 젊을적, 그들이 바라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진을 실어놓은채.
개인적인 생각으로 극우 지유사의 태도가 차라리 낫다고 본다. 그들은 여성운동가를 증오한다. 최대한 존재 자체를 말살해버리길 원한다. 치명적인 위험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기에나 가능한 짓거리다. 그러나 이쿠호샤는? 그들은 너무도 가볍게 깔보고 경시하여, 속된 표현으로 입맛을 다시고 자빠졌다. 그들 보기에 좋도록 뜯어고쳐 진열이라도 하듯, 별개의 영역으로 실어놓고는 '나데시코'들로서 바라본다. 구역질 나오도록 관음증적인 정서가 느껴질 지경이다.
이것이 100년전에 대한, 그 위대한 투쟁이 시작되었음에도 결과인 현재에 '그녀' 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이다.
철저한 적이, 음험한 자칭 친구보다 300배는 낫다. 페미니즘에서도, 성적소수자 운동에서도 이따금, 그리고 점증하는 성향 중 하나가 끽해야 서브컬쳐로서의 인정에 만족, 혹은 아예 별개로 독립된 그러나 결국은 외딴 갈라파고스적 하위문화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짓고 고립을 고집하는 경향들이 있던데, 그렇게 스스로까지 타자화 됨으로써 결국 앞서 본 것 같은 저열한 관음증의 대상이 될뿐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히라츠카 라이초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남은 것은 씁쓸함 뿐이다. 백년전 '여성' 이기에 억압받고 차별받던 개인들은 마침내 세상에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흔히 역사에 대해 말이라도 해볼만하다는 1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들은 한 인간이 아니라 '여성' 으로서 남아있다. 그 또한의 집단 정체성으로서의 굴레이건만 자유로워지기는 커녕, 그럴 엄두도 못내도록 단결이 필요하도록 여전히 '여성'이기에 공격받음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