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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II 3강 [조소앙,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조소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령과 삼균주의의 창시자, 이정도는 중,고등학교때 역사 수업을 잘만 들었다면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학과를 다니는 학생으로써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은 수업을 들으며 부끄러웠다.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조소앙에 대하여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소앙은 1887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지막 성균관 입학생들 중 하나였는데, 젊은 나이인 1902년부터 신채호와 함께 보안회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1913년에 그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는데, 이때 신채호, 박은식 등이 조직한 동제사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한학을 배운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로써의 조소앙의 모습이다. 나는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묘사가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다. 뭔가 신념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미래의 지향이 존재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책으로 극복하였다? 그에게 있어 한발 한발 걸어가는 미래는 흔들리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그가 우울증을 견뎌냈다는 1910년대 초반에서, 그의 활동이 더 굳건해지면 굳건해질수록 증세도 호전되었다고 이야기 한것은 어느정도 비약일까?
내가 신기하게 여긴 사실은 바로 공화국의 초석과 3.1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교수님은 3.1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닌, 3.1운동과 정부수립운동은 병행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예로 1917년부터 적혀진 <대동단결선언>에서 나오는 '제국의 주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양괴어 민국이 된다.'라는 주장과 '임시정부의 수립'에 대한 주장을 확인시키셨다. 또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진행된 3.1운동과 그 중심인 4월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병행하여 만들어진 것, 모두 하나의 목적으로 오랜 준비끝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선언문들과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임시 헌장 등은 모두 조소앙, 그의 손을 거쳐 써 내려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독립 외교중에 그가 휘젓고 다닌 나라와 단체들이였다. 그는 1919년부터 임시정부에서 외교분야를 담당했다. 조선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파리 강화회의를 지나, 그는 네덜란드의 만국사회당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여기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부 수립을 열망한다는 연설으로 각국 사회당의 당수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거기에 더해 그는 이듬해 1920년부터 1921년까지 그는 소비에트를 여행하며 공산당 대회까지 참가하였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별 효용이 없음을 독립운동가들이 막 깨닫기 시작하던 1920년대 초, 국제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세력은 약소민족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효용적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조소앙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국민당과 소련 공산당, 전운이 다가오는 동안 조소앙은 임시정부를 이용하려는 외부세력들을 조율하고 줄타기하면서 그들이 임정을 인정하고 힘을 보태주게끔 만들려 노력하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외교 노선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가장 잘 깨닫고 노력하려 한 사람, 큰 그림을 본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상을 접한 사람이기에, 그가 제창한 삼균주의는 여러 사상의 장점을 담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과 민족과 민족의 평등, 학교에서는 이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서술하지만, 어떻게, 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삶과 가던 길이 그가 세운 주의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교수님은 말한다.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각박한 독립이라는 목표 속에서 이념이나 사상을 만들어낸 사람은 적다. 하지만 조소앙은 간단하고, 미약하게나마 나아갈 길을 정립하였고, 이는 우리의 헌법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있다고 말이다. 그는 어두운 역사 속에서 오히려 더 진보한 체제를 정립해나가기 위해 애썼다. 과연 교과서, '올바른 역사'만을 담은 교과서에서 그가 걸어온 길을 우린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