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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2강. 고토쿠 슈스이. - '양심적' '개인'의 탄생
자유민권운동가. 의회 사회주의자. 사회혁명가.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는 일본의 급변기, 그리고 세계적 사조의 격동기를 살았던 청년이다. 때문일까 그의 사상은 자주 바뀌는 한편으로, 이전의 잔흔이 다음의 자기 사상에도 남아있다. 자유민권을 외치지만 지사적 선도의식을 지니고 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계급의 의미를 낮게 보고 혁명을 부정한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는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란 방식의 혁명을 통한 무정부 사회를 꿈꾼다. 그것은 단지 사상의 전향이라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사다난한 속에, 끝없는 현실의 벽과 멈추지 않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 안주 없이 고민과 분투를 반복한 한 청년의 삶의 궤적이다.
그 사상의 변천 자체를 누군가는 흐름으로써, 정제되어갔다고, 누군가는 발전해갔다고, 누군가는 급진화 혹은 과겨화 되어갔다고 할 것이다. 혹자는 그때 그때 접한 신사조를 유행처럼 쫓는 지적 한량에 불과했다고, 혹은 가장 큰 배당을 노리고 신사조에 운을 건 도박사적 기회주의자에 불과했다고 평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거꾸로 거슬러보고자 한다. 그의 세계관 전체에서, 내가 결정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한정해서나마.
1911년 고토쿠 슈스이는 거창한 '대역사건'으로 사형되었다. 신민으로서 천황을 내면에 절대적 존재가 아닌, 상대적 존재이자 타자로서 여긴 결과였다. 그에 무정부주의자로서의 자신의 대적인 천황이기에, 날려버리겠다는 등의 우연한 허세 발언이 나왔고 그것으로 사형이었다. 대일본제국의 신성한 국체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하지 않았으니 그 자체로 반역죄라면 반역죄이기는 할 것이다. 아무리 어이없도록 과장된 재판이라 해도, '대일본제국'에서 그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1909년. 그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칭송했다. 자신의 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삶을 바친 열사로서. 어쩌면 그건 이념이나 사상적 지지라기보다도, 미의식적인 감동에 가까웠지 않을까 싶다. 헌정시의 싯구대로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는 안중근은 고토쿠에게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칭송받을만 했을테니까. 여하긴 이에서 고토쿠에게 조선인이 일본 고관을 살해했다는 것은 긍정적인쪽으로든 부정적인쪽으로든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중근이란 한 용사의 삶은 자세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평가만이 있을 뿐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 전 일본이 애국주의의 물결에 들끓고 있었다. 끝없이 남진해오는 저 불곰을 격파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일본도 사할린처럼 집어삼켜지리라. 19세기부터 이어진 두려움에 기반한 국가와 민족의 생존 자체에 대한 절박함을 활용한, 반쯤은 자연적이고 반쯤은 조장된 애국심의 물결. 그 속에서 고토쿠는 극소수와 함께 반전론을 내걸면서, 전쟁은 오직 양국의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양국 인민의 삶을 파괴할 뿐이라 주장했다. 나아가 일본-러시아 양국 사회당의 접촉을 통한 양국에서의 반전선언이 이루어지는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그 이전 청일전쟁에서는 우치무라 간조 등과 함께 마찬가지로 그 전쟁을 찬성하고 찬양하며 지지했었다. 대체 왜? 러시아는 청나라보다 더 확장지향적이었으며 강성했다. 일본국과 민족에 보다 위협이 될 것은 러시아였는데? 그 답은 아마도 그 사이 그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면셔 민족보다도 계급으로서, 국가란 일체가 아닌 각부로 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이전의 고토쿠가 국수주의자라서나 국권주의자, 총단결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엄연한 자유민권파였다. 그러나 사실 일본 자유민권운동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좌익은 물론 민간우익의 뿌리가 될 수밖에 없기도 한 이유도 그것에 있었다.
일본 자유민권의 아버지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본디 무사 출신이었다. 무진전쟁 당시 신정부군을 이끌고 아이즈에 침입한 그는, 아이즈 주민들이 별 저항없이 삼백년간 자신들의 통치자였던 아이즈 마츠다이라 가문의 적인 신정부군에 유순히 협조적인 현상을 경험했다. 그것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권리 없는 민중은 국가의 흥망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도 고결하고 탁견을 지닌 이였다. 충성과 의무를 강조하는 세뇌 대신에, 민권운동을 주창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민권' 자체가 가치나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강성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단 의미였다. 그러니 우치다 료헤이등 국수주의자들이야말로 자유민권운동의 도리어 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토쿠 역시 초기 이른바 자유주의자(자유민권운동가) 시절에는 '국민' 의 이익이란 견지에서 제국주의와 조선 확보에 찬동했었다. 때문에 청일전쟁 역시 지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변화 이유는 결국 '국민'에서 '인민'으로에서 밖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일부 학자를 위시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에서 부여하는 칭호가 있다. '양심적' 일본인이 그것이다. 그 자체에는 크게 이의없다. 애초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말 자체가 나머지는 비양심적이란 의미는 아니니까. 비록 양심적 '일본인'의 경우에는 그런 식의 단정과 속내도 내포되어 있는 듯도 하지만.
이 '양심적' 일본인들의 공통점은 일본 제국을 비판한다는 것이고, 그 귀결이었던 15년 전쟁 후 탄생한 일본국헌법-제국헌법이 아닌- , 이른바 '평화헌법' 을 수호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 다수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명백히 좌익이란 점이다.
좌익만이 양심적이고 선을 추구하기에? 그럴리야 물론 없다 다만 좌익의 경우 하나의 문제, 즉 민족과 조국이란 것에서 자유롭기에 -혹은 자유롭고자 하기에- 일본제국이 조선에서 자행한 죄악들에도 망설임 없이 비판의 칼을 겨누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필요로 하고 살피는 것은 딱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들의 일본제국 비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가능한 근본 동인도 애써 무시한다. 아니, 생각지도 않거나 못한다.
한 개인이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로써 주체적인 소신 즉 '양심'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성역인 영역에까지 칼을 들이댄다는 거의 의미는 말살해버린다.
왜냐면 그 성역은 결국 우리에게는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양심은 그들에게만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류의 양심은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분열이요 반역이고 배신이며 약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게 아마 피상적인 선악의 영역으로 전락시킨 '양심적' 이란 표현으로 그들의 좌익성향을 가려덮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일본 우익 중에서도, 박수받을만큼 확고한 원칙을 지닌 보수주의자로서 일본제국과 과거사 문제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죄악과 거짓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명예가 더러워질 뿐이라고 믿으며 그들이 사랑하는 민족의 건전성을 위해 투쟁한다. 사상의 차이는 있겠으나마,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확고히 지향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성역을 두지 않고 -오히려 성역을 제일 먼저 성스럽게 하는데 가깝겠지만- 비판의 날을 세운단 점에서는 경애받아 마땅할 것이다. 사실 그들의 본질이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에 애정을 품은 보수주의자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비단 사회주의뿐 아니라 모든 이념과 사상, 그리고 종교까지도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인터내셔널적이다. 원리와 원칙에서 보편을 추구한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은 그 어떤 일관적인 원칙이나 가치 대신, 처음부터 기울어진 잣대와 저울로 철저하게 특수한 집단이익만을 옹호한며 편을 가른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무엇도 불사해야 하지만 '저들'은 그러면 안 된다. 행위가 아니라 편이 평가의 기준이다. 갈려진 편에서 개인은 정체성을 항구적으로 못밖힌다. 그로써 사고와 사유는 금지된다. 개인은 말살된다. 개인으로서만이 가능한 '양심' 은 거세된다.
이른바 자칭 진보진영이 민족정기와 민족의식을 따지고 든다. 친일잔재로 규정해버린 기득권이 받는 비판, 아니 그보다도 비난은 자국민에게조차 혹독했던 체제와 방식을 이 땅의 '민국'에서 시행해서보다도, 단지 타민족에 부역했다는 근원적 원죄이다. 1917년, 조선이 이미 사라진 후 태어난 청년이, 범죄적인 제국체제와 그 침략행위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참여하고자 했단 것보다도, 단지 이민족 정권에 충성했다는게 더 문제이듯이 말이다.
슈스이의 삶과 그의 사상적 변천은 '양심적' '개인' 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하는 굴레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헌데 우리는 어쩔 것인가? 아이들에게 "저들이 양심으로 찢기고 갈려져 약해지는 모습을 손뼉을 치며 보자. 그리고 '우리' 는 비양심으로 공고히 하나되자. 그로써 강해지자. 그러니 너는 양심같은 일탈과 배신 반역은 꿈도 꾸지말고 눈길도 주지말거라.' 라고 가르칠 것인가. すばらしい. 了不起 . incredible. es demasiado. صعب ؛ شديد ؛ حا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