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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 던지는 여섯 가지 불편한 질문] 제4강. 저성장 시대, 복지국가 만들기는 가능할 것인가
'저성장 시대에 던지는 여섯 가지 불편한 질문'이 네 번째 시간을 맞았습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신 오건호 박사님께서 '저성장 시대, 복지국가 만들기는 가능할 것인가'의 주제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강의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1. 저성장이 복지국가에 미치는 실제적 영향
경제변수가 복지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복지는 성장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발휘한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에도 국가별 복지국가 형성의 정도에 차이가 발생한 것을 보면, 경제환경이 복지국가의 형성 및 발전, 재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구학적 변수와 같은 경제변수 이외의 요인이 더 큰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 예로, 기초연금에 있어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던 스웨덴이 고령화의 압력으로 선별적 복지를 도입하게 된 것을 들 수 있다. 또,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경제 침체기에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 침체기에는 실업급여 등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복지국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 재원부족을 꼽는 견해가 있다. 물론, 저성장은 세수확보의 절대적 규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3% 대의 경제성장률을 저성장이라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과거에 비해 떨어진 성장률이지만, 어떠한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무리가 되는 절대적인 저성장의 국면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 즉, 그 영향력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저성장의 정의를 새롭게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복지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여타의 변수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2. 한국 복지국가의 네 가지 환경
복지국가에의 진입여부 및 그 구체적인 유형을 결정하는 네 가지 변수로 경제, 인구, 재정, 정치를 들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국의 복지국가 환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제요소를 살펴보면, 절대적인 성장률 보다는 경제구조 및 노동시장의 구조가 복지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저성장은 경제총량의 정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복지에 투입할 재분배 자원이 한계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진다. 그러나 그보다 저성장 체제가 노동시장의 구조에 영향을 미쳐 불안정 노동을 확대시키기 때문에, 통합적인 노동시장을 상정하고 설계된 사회보험을 기반으로 한 복지가 작동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한편, 인구요소의 경우,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가 연금제도의 수지불균형 구조와 결합하여 복지국가의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연금지출의 증가를 수반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공적연금의 급여율(약 40%)과 보험료율(약 9%)간의 수지불균형이 심각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후대의 보험료 부담 급증을 의미하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위협할 수 있다.
또한, 복지는 재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우리의 복지재정은 매우 빈약한 실정으로, 복지에 대한 조세부담률이 매우 낮다. 이를 위하여 법인세를 25%로 원상회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나, 실제 법인세 회복이 복지에 미치는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따라서 소득세를 인상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나, 조세불신이 깊은 만큼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복지는 시장이 아닌 정치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복지동맹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영향을 받는다. 복지주체의 문제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동맹을 결성하기 위한 주체가 미약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환경이 우리의 복지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3. 모든 것은 '제도'와 '정치'의 문제
저성장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 GDP로 대변되는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시장이 성숙될수록 새롭게 상품화할 수 있는 영역이 감소하기 때문에 성장의 폭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장률에 대한 논의는 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나 담론형성에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체제가 구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재편 등이 사람들의 삶이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복지주체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성장에 대한 국내 차원의 대응으로 거론되는 소득주도성장이나 일자리나누기 등의 문제도, 저성장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미약하며 그보다 내부의 세력관계 등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저출산의 문제 또한, 한국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노동력의 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저출산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이를 낳기 어렵게 하는 '불안정성', 그 중에서도 일자리의 불안정성이다. 일자리의 쏠림현상이나 불완전고용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안정화와 일자리나누기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력이라는 자원을 이와 같이 분배하는 주체가 미약한 것이 문제이다. 65세 이상의 인구를 노인으로 정의하는 고령화의 의제 또한, 인구학적 문제가 아닌 노동시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노인'의 기준을 사회학적으로 재정의 하여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며, 노인인구의 경제활동 참가 및 연금의 세대간 책임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재정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경우 GDP 3만 달러에 도달하여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적 기반은 충분하다. 의료비, 노후소득보장의 총량 또한 적지 않다. 문제는 이에 대한 사적지출이 과다하여 계층간의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적지출을 공적지출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제도 및 정치의 문제가 된다.
4. 새로운 주체, 복지국가의 모색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이끌어 갈 주체가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의 특수조직을 토대로 한 주체들이 복지국가를 이끌었고, 이러한 전통적 권력자원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의 권력자원은 20세기의 특수조직을 토대로 하지 않는다. SNS의 발달과 함께 시민들은 정당이나 조직이 아닌 민생 의제별로 응집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촛불'이다. 이러한 연성권력자원은 규모나 파급력에 있어 전통적 경성권력자원을 압도하므로 이에 주목하여야 한다.
복지국가를 이루는 데에 많은 장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를 모색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복지국가 및 복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빠른 속도로 복지가 확대 중이며 이에 따른 복지체험이 늘어나면서 복지에 대한 '권리' 의식이 성장하고 있다. 이는 복지를 둘러싼 지형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역주민의 복지의식이 확대되고 복지를 자신과 관련된 이해관계의 의제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지역이 복지의제의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복지의 문제를 더 이상 '담론'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제'로 파악하게 되면서 의제별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기반으로 아래로부터의 공동체, 지역주체 등, 복지국가를 정치로 만들어내는 세력의 형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시민참여방식의 의제개발과 의제활동이 요구된다(사회연대 의제별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