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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 전쟁의 기억, 평화의 약속] 9강, 근대 동아시아인,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싸우고 연대하다
[동아시아 근현대사 : 전쟁의 기억, 평화의 약속] 9강(5/29) 근대 동아시아인,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싸우고 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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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 전쟁의 기억, 평화의 약속] 9강, 근대 동아시아인,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싸우고 연대하다
1. 러일전쟁 전후 국제연대
*아주화친회 (1907)
-도쿄에서 배우려고 온 중국, 인도, 베트남, 일본인이 결성했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함께 자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고 함)
- 아시아인으로서 침략주의를 주장하는 자만 제외하고는 민족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를 논함에 상관없이 모두 입회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상호 원조와 협력을 한다.’ 이는 베트남과 중국의 사회주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민족해방을 위한 반제투쟁을 목표로 한 아시아 최초의 국제연대라고 한다.
2.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주도의 국제연대
*코민테른 주도하의 극동민족대회 (1922)
- 조선, 중국, 일본, 몽골 들 정식대표 140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인 대표단은 140여명 중 52명(여운형, 박헌영 등)이 갔고 베트남의 호치민, 인도의 로이등이 참가했다고 한다.
*코민테른의 일국일당주의 (1928) : 조선인 공산주의자의 중국 공산당 입당
3. 1930년대 항일을 위한 한중연대
*만주(국)
- 만주사변 직후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이 합쳤다고 한다.
- 조선혁명군과 중국의용군이 합쳐, 중한항일동맹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중심으로 동북항일연군 조직(1935)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관내)
- 일본의 중국침략과 이봉창, 윤봉길 의열 투쟁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국민당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이 중국 주권 수호와 직결된다고 판단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승인(중한민족항일대동맹,1932)하고, 중일전쟁 이후 조선의용대(1938)와 한국광복군(1940)을 지원했다고 한다.
- 한국광복군은 3개 지대,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일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4. 반제와 반전 평화를 위한 연대
*러일전쟁기 반전운동의 등장
- 반전운동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제2인터내셔널대회였다고 한다.
-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는 ‘사람 죽이는 전쟁은 죄악이고 전생 일삼는 일본은 신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 일본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의 반전운동이 있었다.
Plus++한국은 1990년대 이라크전 때 반전운동이 시작되었다.
*중일전쟁기 중일연대
- 하세가와 데루는 반전대일 방송을 했다고 한다.
- 일본병사반전동맹 옌안지부에서는 일본군포로가 일본군에게 투항과 탈영을 호소하는 무선방송과 잡지 “병사의 친구” 간행, 일본인반전동맹 회북연합회를 조직하고 이후 일본인해방연맹 (일본의 민주적 건설 목적, 1944)로 발전하고 전쟁의 즉시 종결과 전쟁 주모자의 처벌 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5. 무정부주의자의 국제연대
*무정부주의는 모든 정치적 조직, 권력에 저항하며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무정부주의는 사회문제해결에 대안을 찾고,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국제연대를 지향하였다.
-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국이 독립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 바진의 무정부주의는 일본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역명정쟁이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1927)에 중국과 일본, 한국, 타이,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200여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한일구국연맹은 만주사변 이후에 조직되었으며 일본인부, 조선인부, 타이완부, 미국인부, 자유연합의 조직원리 아래 민족의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이상사회 건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 양날의 칼, 아시아주의는 서구의 아시아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아시아 제민족은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타루이 토오키치의 대동합방론(1893)은 서구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은 ‘연대’해야 하나 일본이 민주화에 앞서 있으니, 조선을 원조해야 한다고 했다.
- 판보이쩌우는 백색인종에게 연합하여 황색인종을 억압하고 있다며, 베트남인들에게 프랑스인을 적으로 간주하기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다음으로 다가오는 적(일본인)은 프랑스인들보다 백배 잔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 김옥균의 삼화주의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일본의 동양평화 주장은 침략구실이고 실제로 러시아를 막기 위한 한중일은 협력해야)이 있었다고 한다.
- 쑨원의 대아시아주의(1925)에서는 일본은 서방 패도의 앞잡이가 되지 말고 동방 왕도의 간성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식민지들]
1.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
*1885년 톈진조약에 의해 프랑스 식민지화 되었다고 한다.
근왕령과 봉기가 시작되었다.
*1904년 판보이쩌우가 유신회 조직과 동유운동을 했다.
*1912년 베트남 광복회를 조직하고 민주공화국 건설을 추구했는데 이는 신해혁명의 영향이라고 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진화를 했다. 1925년 베트남청년혁명동지회가 1927년 베트남국민당으로 바뀌었다.
*1930년 호치민(구엔 아이 꾸옥)의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당했다.
*1941년 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하며 프랑스의 지배와 일본군의 베트남 진주와 수탈, 민족분ㅇ려정책에 저항했다.
*1945년 인도차이나공산당은 군정 실시하는 ‘파시스트’ 일본 타도를 위한 무장봉기를 했다.
2. 일본 식민지, 타이완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화, 타이완총독부 설치(1895)
- 방임주의로 시작하였고 1910년대 이후 타이완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동화주의’를 채택해, 3.1운동 이후 내지연장주의에 따라 문관총독을 파견하고 지방자치를 실시했으며, 만주사변 이후 황민화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조사사업
- 1898년에 토지조사사업을 6년간하고 임야조사를 같이 했다. 1901년에는 수리하업을 하고 1903년은 호구조사, 1909년은 대만민사령이라고 일본사람 없이 타이완 사람이 회사를 못 만들게 한 것이다.
*자국의 50%가 넘는 쌀을 수출하고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업을 했다.
*1931년 이후 군수공업화를 통해 남진(동남아시아)을 위한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Plus++ 사람도 보급했다. 징병제를 위해 1940년대 일본어 교육을 시켰다.
*타이완 민중당(1927-1931)
-타이완인 전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방의 실현을 주장했다.
-민본정치의 확립, 합리적 경제조직의 건설과 불합리한 사회제도의 혁파를 강령했다.
-민족주의자였으며 사회개혁주의자인 장위수가 주도했다.
-노농계급운동으로 급진화하자 우파가 1930년 타이완지방자치연맹으로 분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