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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고대편] 4강, 트라시마쿠스-권력을 지닌 강자들의 이익이 정의를 결정한다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고대편] 4강(5/12), 트라시마쿠스-권력을 지닌 강자들의 이익이 정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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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작에 앞서 선생님께선 세월호 참사 이후 연일 터져 나오는 망언들에 관해 언급하셨다. 칸트는 인간성(humanity)이란 내가 다른 사람의 위치에 서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이성’의 핵심이다. 즉, 이성적인 인간이란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이러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사람들을 보면서 공감능력이 결여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 타자의 생각, 이야기, 원칙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유가족이 벼슬이냐’ 비난했던 김호월 교수나 유가족에 대한 비난의 정도를 넘어서는 막말을 하는 일베 회원들같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상태라면 다양성이란 아무 의미 없는 것 같다. 선생님께선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가 편지를 읽을 때 왜 이 토론이 좌파냐 우파냐 생각해야 하게 만드는 시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시대 현실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와 같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싸우는 시대 말이다.
본격적인 강의는 플라톤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선생님께선 런던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화이트 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플라톤이 서양철학에서 가지는 위상이 남다르다고 말씀해주셨다. 이어 [국가]의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중에서도 오늘 다룰 강의 내용인 1권(트라시마쿠스)과 2권(글라우콘)에 나오는 논쟁의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근처의 축제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폴레마르코스라는 지인을 만나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됐고 그의 아버지 케팔로스옹과 무엇이 정의인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트라스마쿠스가 합류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 ‘정의’는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잘 통용되는 행위, 즉 그 상황에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이었다. 전혀 도덕적인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의의 개념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당시 ‘힘이 정의다’라는 개념에 소크라테스는 도덕 개념을 들고 왔던 것이다. 그 이후로 정의는 힘과 도덕의 파워게임이 됐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도 그 싸움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트라시마쿠스는 약자들이 강자들이 만든 법을 지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은 강자들이 만들었으니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는 말이다. 즉, 법이 강자들의 헤게모니라는 말이다. 선생님께선 정의는 더 강한자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트라시마쿠스의 주장에 대한 예를 보여주셨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 딸 축채사건. 홍모씨 사건. 이 두 사건은 특히 법적인 과정과 절차의 이름으로 벌어진 범죄라고 하셨다. 다음으로 외교관 2부 제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논란.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선 법을 따르는 일이 정말로 약자들에게 해로운 것인가 다시 생각해봤다. 선생님께선 트라시마쿠스가 ‘헤게모니’라는 단어만 쓰지 않았을 뿐 정확하게 현실을 꿰뚫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트라시마쿠스가 주장한 것들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들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다음으로 2권에서의 글라우콘과의 논쟁 부분을 설명해주셨다. 선생님께선 먼저 2011년 당시 안철수 씨가 차기 대선후보로 급부상하자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들어와도 이를 키워주지 않고 따돌리는 게 정치판이다.”라고 홍준표 의원이 했던 말을 보여주시며 이것이 글라우콘이 말했던 포인트라고 말씀하셨다. 정의가 좋은 것이라서가 아니라 불의를 저지를 수 없는 허약함 때문, 즉 법은 사회적 약자들이 어쩔 수 없이 맺는 약정이라고 하셨다.
이 [국가]의 2권에는 ‘기게스의 반지’라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생님께선 이 이야기에 대해 먼저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리디아 라는 왕국에 성실하고 바른 기게스라는 목동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양을 치던 중 갑자기 지진이 발생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동굴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그 안으로 들어가 반지를 줍게 되는데, 그 반지는 반지를 착용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신비한 반지였다. 그 투명한 능력을 가지고 왕비를 취하고 왕을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 이다. 이 반지의 ‘보이지 않는’ 능력은 권력의 본질을 상징하는데 이는 부패, 부정의를 만든다. 즉, 권력이 보이지 않고 사유화가 되면 될수록 변질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이다.
선생님께선 이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J.R.R. 톨킨이라고 말씀하시며 [반지의 제왕]에 숨겨져 있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와 권력의 속성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이 영화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반지가 지닌 첫 번째 특징은 한 번 맛보게 되면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해주는 반지는 비밀권력을 상징하는데 비밀권력을 맛보게 되면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영화에 거의 모든 존재가 반지를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비밀권력은 직접 주인을 선택하지 절대 기존의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반지가 이실도르의 손을 떠나가는 장면이나, 골룸의 손을 떠나가는 장면이 이를 상징한다. 검찰이나 국정원 등 비밀권력을 동원해서 국정운영을 손쉽게 한 국가지도자는 임기가 끝난 후에 자신의 손을 떠나는 반지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왕의 귀환’ 마지막 장면 중에 프로도에게 ‘모든’ 종족이 무릎을 꿇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은 오로지 권력을 공개적으로 얻은 사람이 만인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상징한다.
선생님께선 이런 비밀권력이 게슈타포 같은 비밀 경찰이나 국정원 같은 것들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밀실에서 나온 제한되지 않은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며 벤담과 푸코가 말했던 원형 감옥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이것의 핵심은 감시가 죄수들을 올바르게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는 이 감시자가 공개됐는지 여부에 있다고 하셨다. 이어 트라시마쿠스와 글라우콘의 정의관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엘리트와 법’에 대한 부분에 문제제기가 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마치셨다.
이번 강의를 통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최근 학교 강의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조를 구성해온 대로 팀플과제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방식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자율적으로 조를 구성하게 되면 먼저 잘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조가 돼버리면 그렇지 못한 조보다 시작점에서 우위를 가지기에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한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나 대인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조를 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을 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그 교수님께서 ‘잘하는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가’라는 대답을 해주셨는데 이 사고방식이 ‘강자의 이익이 정의다’라는 트라시마쿠스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경쟁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대학교 강의에서마저 못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잘하는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남이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나만 잘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문제제기를 할 당시에 나도 좋은 조가 있었지만 조를 박차고 나와서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들과 같은 조를 만들었었다. 난 이게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선생님께선 트라시마쿠스의 정의관이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냈다고 말씀하셨는데, 소외받는 사람들, 즉 약자를 외면하는 정의의 사고방식은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기보다 정부나 여당의 이익이 정의인 듯 말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싶다. 칸트가 말했던 인간성, 즉 공감능력이 결여된 시대에 정의는 힘이 아닌 도덕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