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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 사료로 다시보기[5강]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마지막 왕인 27대 순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성군이라 칭하는 왕중에서 빠지지 않는 왕이 바로 22대 정조일 것 입니다. 그는 개혁군주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시대를 조선 최고의 부흥기로 만들 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조선의 전환기로 볼 수 있는데 혹자는 정조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이 급격히 쇠퇴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번 강의는 정조를 소재로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MBC 드라마 `이산` 입니다.
'이산' 왕의 이름을 함부로?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에도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왕의 이름은 불러서도 안되고 비슷한 발음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 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왕조 자체가 무너져 그렇겠지만 만약 지금까지 왕조가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산'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를 방영했다면 연출자는 역적중에 역적으로 몰려 큰 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를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에 이산이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왕의 이름과 같다하여 지명을 바꾼 것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산'이라는 금지 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영조를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를 말하다.
드라마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일 것입니다. 드라마 '이산'도 마찬가지 입니다. 드라마에서 이산은 상당히 점잖고 근엄하며 말하는 것을 최대한 절제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멋있는 남자입니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왕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실제 정조는 드라마 이산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비슷할까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잘했으며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저작도 많이 남겼죠. 26대 왕인 고종도 저작은 많지만 의 경우 자신이 직접 쓴 글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경우는 다릅니다. 저작 대부분이 자신이 쓴 글이며 자신이 쓴 글과 남이 쓴글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대필을 시키면 반드시 대필의 흔적을 남기게 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능력이 탁월했다는 증거입니다. 정조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도 많은데요. 정조의 제자들은 19세기에 위대한 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정약용과 서유구 등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정약용이 정조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이산'의 모습이 실제 정조의 모습일까?
최근까지 정조는 왕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료에서 너무 근엄하게 번역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전 발견된 299통의 비밀편지를 통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조는 저작도 많고 말도 많은 왕이었습니다. 성격은 다혈질이었고 자신 스스로 태양증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라고 합니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갯소리를 자주 했으며 속된 표현도 거침없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로 신하가 상소까지 올렸다고 하니 짐작할 만하지 않습니까?
▲ 안대회 교수
드라마에서의 연애. 그리고 그의 관심사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이야기 입니다. 이산에서도 정조가 '송연'이라는 인물과 연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허구입니다. 사극에서의 연애는 대부분 허구인 경우가 많은데요. 대부분의 왕은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가상인물을 만들어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정조의 경우에는 이러한 가정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정조는 여자와 사치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여자 관계도 복잡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세종대왕의 경우 자식들이 수십명에 이르지만 정조의 아들은 한 명뿐 입니다. 또한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조는 오직 학문에 관심이 있었으며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생기면 그 주제에 파고드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어떠한 왕보다 자료가 많고 모든 자료들이 상당히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정조의 그의 필체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암살과 독살, 그리고 정순황후.
드라마에서 약 10번정도의 암살시도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장 된 측면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암살의 문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소현세자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사약을 받을 때도 왕에게 절을하고 예를 갖춘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했기에 사약을 한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사발 더 먹고 죽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죽으라고하는데 안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충을 중하게 여기는 시대에 그렇게 많은 암살시도는 불가능이라는 것입니다. 드라마 후반부에 역적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정조의 할마니인 정순황후를 골방에 가두고 포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는 충과 효를 중히여기는데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효라고 합니다. 국왕이 효를 부정하면 그 근본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손자가 할머니를 포박하는 일은 드라마에서의 설정일 뿐이라고 합니다.
정조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 독살이라는 설이 많습니다. 299통의 비밀편지를 통해 그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 된 감이 있지만 이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료와 정조의 나이, 그리고 그가 오랜시간 동안 병을 앓고 있었다는 상황을 고려할 때 독살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교수님께서는 답변해주셨습니다.
드라마 '이산'에 대한 교수님의 평.
드라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정조와 그 시대를 흥미롭게 잘 포착하여 만든 드라마라고 하셨습니다. 소품도 비교적 잘 구현했고 특히나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인물이 괜찮았다고(^.^).
다만 정확하게 고증이 안된 부분은 아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산'의 경우 조선시대의 책은 두껍고 무겁기 때문에 일본, 중국과 달리 5개의 줄로 책을 엮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6개로 엮은 모습을 포착하시고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강의를 듣는 분들 대부분이 그러한 것 까지 하나 하나 살피시는 모습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드라마 이산이 사극 장르를 표방하여 역사를 잘 활용했으며 상상력 발달 차원에서 큰 도움을 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역사가는 사실을 근거로해서 정확히 저술하는 것이지만 드라마의 연출자는 그러한 의무는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씀과 함께 드라마와 소설이 역사적 사실에 치중하다보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셨습니다.
왕이라고 하면 항상 근엄한 생각만 했는데 사료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내 새롭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