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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짓는 기예 (엄기호 선생님) 2강 후기
엄기호 선생님 강좌 (제 2강: 사랑, 세상을 짓는 기예) 후기
전미영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근대 초기의 혼인은 개인의 선택 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법적 질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대 후기에 해당하는 오늘날, 결혼은 ‘선택의 일대기’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우리는 선택하는 개인으로서 강박과 자유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성찰한다. 이 결혼이 과연 최선이 될 수 있을지, 내가 잃게 되는 것은 없는지를 따져보며 때로는 결혼으로 인해 누리지 못할 미래 어느 것들에 대해서 이른 후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엄기호 선생님은 이를 ‘미리 앞당긴 실망’이라 표현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동시에 실망할 준비되어 있는 청년들의 일면에 대해 설명하였다. 청년세대가 중요시 하는 ‘등가성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또한 합리적인 사랑은 기존의 ‘에로틱’한 사랑과는 분명 결이 다르며,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새로운 관계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결혼 이후 자신이 개인, 주체적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을 때, 과거의 여성들은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 여성들은 결혼을 버린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사랑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서로의 타자성을 존중하면서 상호 호혜적 돌봄을 오래도록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관계는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엄기호 선생님에 따르면 열정이 ‘다르게’ 코드화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남자, 사랑받은 이후 돌봄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여자라는 기존의 코드는 연애기간동안의 짧은 남자의 구애 이후 장기간의 여성의 일방적 사랑/돌봄을 요구하는 불평등한 코드였기 때문에 그 열정이 지속되기 어려웠다. 남/녀 역할이 아니라 서로가 다 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사랑의 코드를 우리는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내적으로 확장, 강화시키며 끊임없이 과거와는 다른 ‘차이’들을 만들어내고, 그 차이들 속에서 나 다움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즉, 성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이와 동시에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드러내는 용기를 내야 한다. 진실한 드러냄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만 적절하고 또한 가능하다. 나의 존재감을 인정 받고 또 상대의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타자로, 그러나 매우 친밀하고 진실한 태도로 사랑할 수 있다.
<단속사회>에서 엄기호 선생님은 듀이를 인용하며 성장이란 자기 삶을 연속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의지와 그것이 의미 있고 가능할 때에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서사를 넘어 ‘우리’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파트너 관계를 넘어선 사회 공간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이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의 강의들을 통해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