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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사회학자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1강 _ 사랑, 존중을 말하다 후기
엄기호 사회학자는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그의 강연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에는 30명 남짓한 사람이 와 강의실을 채웠다. 모두 그의 강연에 관심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 제 1강 : 사랑, 존중을 꿈꾸다
강연 이름은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 이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를 뜻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세상을 짓는 사랑의 기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사랑의 기술은 무엇인가? 사랑의 특별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엄기호 사회학자는 첫 수업에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랑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랑은 평등을 전제한다.
먼저 사랑은 평등이 전제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노예와 주인 사이에서 개인적인 우정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나아갈 수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완벽한 상호존중은 없다.
상호존중은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벽한 상호존중을 이룰 수 있는 기간은 극히 짧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고 마찬가지로 반대인 시기가 온다. 마치 시소처럼 서로의 관계가 역전된다. 존중은 역동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그 관계를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관계가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소극적 존중
엄기호 사회학자는 두 가지의 존중을 말했다.
소극적 존중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다. 흔히 ‘취존합니다(취향 존중합니다)’ 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타인의 취향이나 개인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이러한 존중이 직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곳에서는 비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여기며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만남을 갖고 업무 이외의 사적인 일에도 관심을 둔다. 사회에 이런 분위기를 가진 직장이 많다는 건 가족과 직장 간의 기능 분화가 덜 된 증거라고 말했다. 사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곳은 친밀한 관계를 수행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면 애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된다. 업무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익명성과 서로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 요구된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존중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방목이다. 존중하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는 있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관계에서 무관심이 존중이 될 수는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아는 건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인지 작용을 멈추면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일 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를 아는 것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반문해보는 일이다. 타자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일이다.
사랑은 나르시즘을 극복하게 한다. 타자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스스로 작아지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타자를 만났을 때 타자를 조심조심 다루기, 있는 그대로 두기, 물러나기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타자의 타자성을 거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 위축이 있다. 자발적 위축은 사랑에서 나오는 기쁜 위축이다. 상대방에게 여지를 주기 위해서 자신을 작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슬픈 위축도 있는데 이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를 포기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 때는 사랑이 아니라 분명한 폭력이다.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람 그 자체로 알아주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다른 무언가로 환원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무엇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반문이나 반박 또한 그 사람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면 괜찮다.
그 사람에게 기능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기능과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인격 모독이다.
#강의를 마치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번갈아가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 받지 못했다고 자신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억울함, 피해의식,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더 사랑하는 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 했다.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