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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년 기념강좌[3강]
[한국전쟁 60년 기념강좌 3강 - 한국전쟁, 그리고 사람들]
이번 강의를 듣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김귀옥 교수님은 한국전쟁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고 계신가.”이었다. ‘한국전쟁’이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연구주제도 아니지만, 김귀옥 교수님은 ‘여성’이라는 점과 ‘사회학자’라는 부분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문제와 그다지 친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사회학과 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사회학 수업을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쟁을 핵심 주제로 하는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김귀옥 교수님이 우리에게 전쟁에 관하여 어떤 문제와 관점을 던져주실지 기대가 되었다.
사람들의 삶을 통해 한국 전쟁을 연구
한성대학교 김귀옥 교수님은 전쟁 후 세대로서 내가 왜 한국전쟁을 연구해야 하는가를 종종 생각해본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전쟁은 피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은 없는 것’이라고 가정을 하여 살아가고 전쟁 없는 평화를 말한다면 더욱더 행복할 텐데. 그런데도 왜 전쟁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정치학에서는 종종 전쟁론, 평화론을 이야기 하지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람’에 문제의식을 갖고 전쟁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 사람들은 대단히 낯설어 했다고 하셨다. “전쟁은 정치학자들의 것이고 외교학자들이 그동안 연구해왔던 부분인데, 왜 사회학에서 전쟁을 연구하는가. 이 얘기는 바로 내가 왜 전쟁을 연구하는가와 왜 이 강의에 자리하신 분들이 전쟁에 직면해야 했는가라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60년 전 한국을 가장 심각하게 뒤집었던 사건인 한국 전쟁. 여전히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으며 정전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한국전쟁에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은 처음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도 불행하지만 이런 남북 대결구조 국면 속에서는 마지막 사건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전쟁의 시대를 살게끔 했던 것은 무엇이냐? 가장 중요한 우리의 분수령은 틀림없이 한국전쟁입니다. 한국전쟁이 있었기에 우리는 아직도 남북통일이 되지 못하고 한반도가 평화롭지 못한 채 동북아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알기 위해서 한국 전쟁을 보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가 과거를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풀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출발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김귀옥 교수님은 전쟁은 다양한 차원에서 전쟁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사회의 만든다고 하셨다. “전쟁은 반공주의 사회를 열었습니다. 6,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 제 1공약이 반공이었죠. 우리 정부의 반공주의는 독재와 경제 성장주의 그리고 냉전이 결합된 개념으로서 북을 우리의 적으로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이 마비된 사회. 네가 나의 적이라고 여겨질 땐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가 없는, 그래서 ‘적과 나’의 이분법이 작동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빨갱이냐 아니냐의 의미만을 쇠뇌당한 우리의 머릿속엔 반공의 나침반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러한 나침반에 의해 이성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군대적 사고가 사회전반에 뻗어있는 군사주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하셨다. 폭력제일 주의,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이라 여기는 생명경시풍조.. 합리적인 이성은 필요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전쟁을 거치면서 과거의 공동체 주의가 사라지고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어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빌붙어 출세를 잘 하려는 기회주의 의식,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 등 성공, 출세 중심의 가치관이 퍼지게 되었음을 지적하셨다.
전쟁은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전쟁은 한마디로 여성의 사회를 만든다고 하셨다. 전쟁으로 많은 남성들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전쟁미망인(未亡人)이 된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경제활동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 대다수의 전쟁미망인들은 식모살이나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나 그것마저 힘든 여성들은 성매매 산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정부는 성매매 산업을 적극 지원·유지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창제를 제도로서 열어놓고, 법률로서 금지한 이후에도 군 당국의 묵인 하에 기지촌이 군대가 있는 모든 곳에 생겨났습니다. 철저하게 정부관리 하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이것은 한미동맹을 수호하기 위해서 미군을 즐겁게 하기위한 우리정부의 사명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1960년대 당시 기지촌 경제가 GDP의 25%를 차지하는 경제적인 측면과 한미 간의 친선이라는 목적아래 정부는 성매매 산업과 성매매 여성들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전쟁과 고통
김교수님은 전쟁으로 인한 학살규모는 ‘모른다’가 정답이라고 하셨다. 학살 가해자 집단은 인민군뿐만 아니라 미군(유엔군), 국군, 경찰, 자위대 등 다양한 집단들이 있었고 학살의 성격도 보복, 예방, 동원의 차원에서부터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도 수없이 자행되었다고 하셨다. 또한 정부는 민간인을 동원, 경찰권을 부여하여 학살과 감시의 권한을 줌으로써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신원조회를 통해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 친척들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의 임무도 수행했다. 이처럼 전쟁의 고통은 학살자뿐만 아니라 피학살 민간인들에게도 지속되었고, 이러한 신원조회는 1980년대, 90년대에도 계속 존재해 왔다.
21세기 평화의 길은
21세기를 살면서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에는 빈익빈 부익부, 교육의 불평등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평화’라고 하셨다. “끊임없이 남을 의심해야 하고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조건 속에 살면서 평화는 그저 고상한 하나의 가치가 아니라 절대 절명의 인권입니다. 이러한 기본 인권으로서 우리가 평화롭게 사는 것은 가장 중요한 권리이고 국가는 반드시 평화를 이행해야할 중요한 책무가 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정부는 전혀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수 많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지우기 힘든 상처일 뿐이지요.
정말, "니가 가라, 전쟁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