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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눈으로 사유하는 세계평화로의 길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과 뉴미디어의 결합은 실시간으로 다른 국가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하나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삶의 일부분이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인류애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세계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 정세와 국제사회의 현실은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에 대한 공공연한 혐오와 폭력을 목격했다. 또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인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자행하는 행위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모두 세계평화를 위한 인류애적 불문율과 기존의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도대체 왜 세계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걸까? 국적은 달라도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던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이러한 내면의 물음에 지쳐가고 있을 때 쯤 만난 수업이 바로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였다. ‘세계시민’이라는 단어를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세계적인 석학들의 사상을 빌려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는 총 4강으로 구성되었고, 칸트, 마르크스, 슈미트, 발리바르의 정치철학을 다루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철학에 대한 논의다 보니 너무 어렵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강의를 진행하신 한상원 교수님께서 핵심을 잘 짚어주시고, 열정적이고 흥미롭게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강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강에서는 임마누엘 칸트의 평화에 대한 이상과 그의 사상을 통한 세계 시민주의 개념의 등장을 배울 수 있었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신념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 간에도 국제법을 통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평화는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영구한 평화를 위해서는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 바탕에는 모든 인민이 복종하는 세계시민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세계시민법의 조건 중 외국인을 우호적으로 대하는 ‘환대’를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부르주아 계급이 세계 평화를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부르주아 계급의 국제 무역을 통한 무역의 세계화는 타 국민들에 대한 환대와 우호를 만들어 낼 것이고, 이는 곧 세계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러한 세계 평화에 대한 구상은 국민국가가 발생하기 이전 시대의 이념적 구상이었다.
한편, 2강에서는 칼 마르크스의 국제 시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의 확대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세계 시장을 통하여 피억압 대중의 국제적 교류 양식이 창출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칸트의 생각처럼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 그 자체로 평화가 이룩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나, 시장을 통하여 대중들 사이의 교류와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중세 코뮨(자치도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코뮨 내의 농노에 대한 자유와 이방인에 대한 환대의 정신을 중요한 가치로 당시의 공산당 운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국제 관계에서도 사적인 개인들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적 법칙들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국민국가가 지금과 같은 강력한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라 예측하지 못하였다.
3강에서는 현실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칼 슈미트의 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 슈미트는 평화로운 인류 공동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적대 없는 정치라는 자유주의의 관념을 비판하였다. 전쟁의 정당성과 부당함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도덕적 논의가 전쟁의 파괴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전쟁에 신학적 혹은 도덕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전쟁에서의 적은 실존적인 적이다. 단지 이질성을 지니는 존재인 타자로서의 적일뿐, 적이 도덕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각 지역 특유의 공간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전쟁 길들이기’는 오로지 교전상대를 정당한 상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슈미트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기구의 실현과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구상을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에티엔 발리바르는 국민국가와 세계 시민주의적 전망을 모두 동시적인 위기에 속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재등장하고, EU내에서 다른 유럽인 그리고 비유럽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지구적 디스토피아(global dystopia)’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상적인 세계시민주의의 구상을 거부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정치를 통하여 투쟁의 형태로 실천하고 노력하는 관국민적(transnational)관점이 중요하다.
그는 국민국가의 실재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권을 주권의 틀 속에서 사유하는 특권적 지위로서의 시민권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강조한다. 즉, 시민권을 확장하고 타자를 만드는 경계를 민주화해야한다. 경계의 민주화는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변모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적 권리를 둘러싼 갈등적 정치의 공간으로서 시민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강의의 내용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내내 이와 같이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강 전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배울 수 있었던 강의라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강의가 될 것 같다.
수업 마지막에 많은 분들이 고민하신 바와 같이 세계 시민주의의 구상과 실현은 다양한 이유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의 지구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인류공동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 성찰하게 될 때,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 시민주의의 구상이 실현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늦은 시간까지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한상원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알차고 좋은 수업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또한 육아하는 엄마가 몸도 마음도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좋은 강의를 온라인으로 기획해 주시는 아카데미느티나무에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