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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자를 끌어내린 혁명에서 배우자] 2강 미국혁명
혁명으로 평가되지 못한 혁명, 미국 혁명
미국 혁명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미국혁명을 들었을 때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처럼 느껴졌습니다. 미국의 옆에 놓이는 단어들로는 개인주의, 사익, 자본과 같은 것들이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혁명이 있었습니다.
미국혁명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독립선언서가 선포 된 1776년을 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1775년에서 1791년의 기간을 혁명의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혁명의 특징은 피가 아닌 말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제도를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국가를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55인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논쟁과 의제들에 대한 주장을 각종 신문들에 익명으로 계속 발표했습니다. 신문을 읽은 시민들은 그것에 대해 토론하면서 혁명의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토론과 합의가 16년간 계속되었고 그 결과로 헌법이 새로 만들어졌지요. 제도 중심의 혁명 과정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큰 지적 자극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나온 ‘사회계약론’을 실현하는 사례가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보면 당시 미국 사람들이 어떤 사상에 기반하여 국가 건설을 꿈꿨는지가 보입니다. 독립선언서에는 로크의 ‘통치론’에서 따온 문구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조물주에 의하여 일정한 불가양의 권리가 부여되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자명의 진리로 믿는다.”
로크의 ‘통치론’에는 위에서 행복의 추구 대신 ‘재산’이 쓰여 있습니다. 재산의 정치적 의미는 ‘자신의 의견을 팔지 않을 수 있는 힘’이며 때문에 로크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재산을 중요한 가치로 두었다고 합니다.
뒤이어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무시무시한’ 구절이 나옵니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그런데 어쩌다 미국은 혁명의 역사에서 제대로 기억 남지 않게 된 걸까요? 프랑스 대혁명이 워낙 강렬해서 일까요? 그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을 단두대에 올린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특히 유럽국가 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도 저기에 올라가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위협도 받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 사건은 현재까지도 혁명의 상징으로 다뤄지곤 하지요. 프랑스의 사건은 ‘혁명=폭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에 뒤이어 발생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은 ‘혁명=폭력’의 이미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는 단두대를 기억했고 미국마저도 자신들이 이뤄낸 말로 한 혁명의 기억은 상실해갔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실패한 혁명’으로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혁명을 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혁명을 피로 물들였기 때문이고 미국은 자신들의 혁명 전통 즉, 말로 하는 혁명을 상실하고 결과물을 제대로 운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김만권 선생님은 지금 ‘미국혁명’을 꺼내 오신 걸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미국혁명이 언제 일어났고 누가 중요했는지 아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라고 말씀하셨지만, 미국의 말로 한 혁명은 지금 한국 시민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두대만이 답이 아니다.’ 그리고 ‘단두대가 끝이 아니다.’. 어쩌면 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 이후일지도 모른다고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해서 나라가 이 꼴이 됐다, 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사례, 프랑스의 사례를 많이 예로 들지요. 그렇다면 ‘과거 청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과거 청산이 ‘잘못한 개인 단죄’를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인이 또 양산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같은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유사한 ‘쓰레기’는 계속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발들이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개헌이 아니라 새로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제안이십니다.
그 시작을 ‘혁명’과 ‘헌법’ 제대로 정의하기로 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혁명(Revolution)
: 살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것. 변화의 시도 또는 변화의 실패는 혁명으로 성립될 수 없음,
헌법(Constitution)
: 영어 뜻으로 보면 ‘구성’을 의미함. 토마스 패인에 따르면 헌법은
“The Constitution of a country is not the act of its government but of its people constituting a government"
"헌법은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인민들의 정부 구성 과정이다.“
즉, 헌법의 주체는 인민들이며, 헌법은 결과가 아니라 행위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혁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들의 혁명 기간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미국혁명도 1년, 2년이 아니라 십년 이상의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혁명은 어느 날 짠! 하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지난한 과정의 결과였던 겁니다. 스스로에 불만을 갖고 변화를 시도하다 또 금방 실망하곤 하는 제 모습을 비춰보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혁명과 헌법의 공통점은 당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장에 촛불이 꺼져도 사람들 속에 있는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해가길 희망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10년 후, 우리가 불나방이 아니라 코끼리들의 발걸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질의응답
1. 미국 헌법이 공론장에서 쓰여졌다고 평가하는 이유
엘리트 55인이 만들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아무리 신문들에 자신의 주장을 펼쳐 공공성을 만들었다고 해고 당시로써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소수였기에 한계가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인정할 부분은, 그 시대에서는 최선의 방법들을 동원하여 계속 공론화시키려 했다는 점, 그 덕에 헌법 토론이 55인의 토론장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도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시작은 엘리트적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사회로 확산되어 토론되었다.
2. 시민대표 와글에 대한 비판에 대한 생각.
대표자들의 무책임들과 방관, 잘못들이 밝혀지고 대표자들에 대한 불신이 커진 시기에 또다시 어떤 대표를 뽑자고 제안한 것은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표자 없이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다. 그리고 대표자라는 직위의 속성이 ‘권한을 위임받는 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우리에겐 대표가 아니라 대의가 필요하다.
현 시점에 지식인들이 해야 하는 역할은 대표자가 아니라 의제를 던져 시민들의 질문과 상상력에 동력을 주는 것. ‘Next to the People'
3. 87년 개헌 헌법에 대하여.
87년에 이뤄진 개헌은 독재의 사슬을 끊은 첫 헌법이므로 개헌 헌법이 아니라 고유 명사 ‘87년 헌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87년의 성취가 우리에겐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하다. 첫 직선제를 통해 뽑은 대통령이 노태우, 그러니까 전두환 친구였던 거다. 87년 헌법은 유서 없이 물려진 유산이 되었다. 6월 항쟁과 87 헌법의 의미를 되살리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헌법 개정은 소수 앨리트들에 의해, 속성으로 만들어졌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헌법을 만드는 것이 혁명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을 또다시 앨리트들의 손에 넘길 것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