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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자를 끌어내린 혁명에서 배우자] 4강 - 6월 항쟁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않은 30년 전 6월. 한국에서는 군부권위주의정권에 대한 항쟁이 벌어졌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경제 지수와 달리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빈곤해졌던 국민들의 현실이 항쟁의 불씨였습니다. 항쟁의 횃불을 먼저 든 것은 정치적 억압을 견디다 못한 지식인층과 학생들, 그리고 공업화 과정에서 계층상승을 한 중간층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군부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고 인권과 자유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6.29선언으로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우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7월, 인간 이하의 환경에서 무자비한 착취를 견뎌온 노동자들의 조직적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투쟁은 9월까지 이어졌습니다.
<6.29 선언>
1.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9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2.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3.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4.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5. 자유언론의 창달
6.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7.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8.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등
[내용 출처: 위키백과]
군부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킨 6월 항쟁은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실패의 역사로 평가되곤 합니다. ‘압제자를 끌어내린 혁명에서 배우자’ 마지막 강의는 6월 항쟁을 씁쓸한 기억으로 남게 한 원인들을 짚어 보면서 지금의 탄핵 국면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3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6월 10일 거셌던 저항의 움직임은 6.29선언 이후 금방 사그라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항의 원인이 되었던 의제들을 당시의 정부가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명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지만 6월의 투쟁의 시작을 연 중산층과 언론들은 그들의 싸움에 냉소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지는 첫 대선’에 몰렸고 민주주의, 인권, 국가폭력 등의 의제들은 문서상의 합의 이후 더 이상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제도적으로 문제들이 처리되니 현실의 문제들이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는, 선생님은 이 상황을 ‘광장정치와 제도정치의 분리’라고 정리하셨습니다.
광장의 투쟁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 후보를 두고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진보 인사 후보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온 상황이었습니다. 입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1)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 2)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이 나가야 한다. 3) 민중 후보 백기완 선생님이 후보가 되어야 한다.
분열된 의견은 합의를 보지 못했고 결국 노태우 후보 당선이라는 참패를 맞아야 했지요. 전두환 이후 노태우 후보의 당선은 한국 정치의 부패 청산을 가로막고 더 악화시켜 민주주의의 진보를 막고 현재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88년 12월 ‘민생치안에 관한 특별담화’는 국가폭력을 부활시켰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과 노태우 대통령과의 협력을 통한 당선은 정치의 민주성을 더욱 후퇴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의 붕괴가 있었고 그 여파로 한국에선 운동권이 쇠락하고, 자본주의적인 소비사회로 빠르게 변화해 갔습니다.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의 국면 전환은 지금의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진행되어 가는 모습과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대선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야당이 정치에서 중요한 Actor가 되지 못하고 그 역할을 시민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야당은 왜 그러는 걸까요?
선생님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야당은 잘 하면 집권 못해도 2등이다.”
여당이 워낙 후져서 야당은 방어만 조금 잘 해도 엄청 잘 하는 것처럼 평가 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직업 정치가로서 표심을 좇아 적당히 중간만 하면 최소한 2등은 놓치지 않을 수 있어왔다는 겁니다. 여기서 야당과 여당은 현재의 야당, 여당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쩌다 우리는 이런 야당을 갖게 되었는가? 그 원인은 정치 환경과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유시민씨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죠. 한국 정치는 특권을 필요로 하는 좁은 문인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돈도 많아야 하고, ‘올바른’ 이데올로기도 갖고 있어야 하고요.(레드 컴플렉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지요.) 야당에 대한 사회 조직들의 후원금도 금지되어 있어 여당의 정경유착이 용이한 환경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상류층, 이념적으로는 무난 무탈한 사람들이 정치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국민의 다수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치권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트 편향적인 국회 구성이 장장 70년이나 지속되어 온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당이라도 잘 하면 되는데 또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 정부와 여당은 관변단체(새마을운동, 부녀회)와 정보기관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야당에게 금지된 조직 후원금이 다 여당으로 들어가고 여당은 그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지요. 이들의 입맛에 잘 맞추면 수월하게 정권을 유지 할 수 있지만 밉보이면 끊임없이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정부도 그들과의 유착을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고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 언론(조중동)과의 타협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과의 타협을 보셨지요.
여기까지의 내용으로는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이번에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동춘 선생님은 이번 촛불 혁명의 가능성을 광장에서 찾으셨습니다. 6월 항쟁과 달리 다양한 계층과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는 지금의 광장은 운동을 이끄는 세력과 다수 시민이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때문에 세력의 변질이나 분열 같은 87년 때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는 것입니다. 또한 87년의 패배를 기억하는 이들이 지금도 살아있기에 같은 문제를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걸어봅니다.
하나의 우려는, 87년 6.29 선언 이후처럼 지금 많은 관심이 대선에 쏠려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민주주의가 실현되거나 부패가 청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 정부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패와 유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말을 사주는 것을 아무도 문제 삼지 말아야 했던 ‘사정’들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 중요하지만, 그 대통령에게 한국 사회의 다음을 맡기려는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세대에겐 승리의 경험이 있지만 지금 10대 20대들에겐 그런 게 없다.”며 촛불 혁명이라 불리는 지금의 움직임들에 10대 20대들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질의응답>
1)한국의 외교문제에 대해서
현재 한국엔 외교라는 게 없다. 남북관계가 풀려야 한국에 미국 관계의 전환과 외교 노선이라는 게 가능하다. 결국은 국내정치의 문제..
2)재벌 개혁 국정원 개혁 언론 개혁, 구호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가는 길은?
현재의 대선 후보 간의 경쟁이 아니라 촛불국면과 정치권과의 대립 구도 측면이 있다. 현재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보다 대통령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있다. 대선 후보 경쟁 구도로 가는 것은 촛불을 끄기 위한 전략이다. 조직된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에서 대선을 밀 때 그러한 개혁문제를 놓치지 않아야 성공.
방법적으로는...
1 의제를 중심으로 이슈를 계속 바꿔 신선하게 하는 것
2 시민 단체들의 이슈 생산체를 조직. 언론의 이슈 선회를 주도하는 것.
3 광화문 100만 명만큼 지역구 100명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광화문에서 동네 광장으로. 온라인을 적극 활용해보자.
3)광장정치가 일상 정치로 스며들고 제도정치로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것은?
선거를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댓글이라도 달아야 바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부터 학습해야 하는데 그것은 두 단계에서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1 직업사회 - 협의와 책임구조를 만드는 것. 단죄와 적폐청산 가능 구조를 만드는 것.
2 시민교육을 통한 의식 발전과 확장
4)기득권 아닌 사람들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상황에 대해서
정치권력이 책임을 묻게 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경우 : 노예적 정치의식을 설득해야 한다. 경찰과 국정원 관료들의 정치적 활동을 알리는 등 정보를 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육십 대 이상은 안 바뀔 것 같다. 일제 식민시대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노예 의식이기에 바꾸기 어렵다.
5)87년의 한계는 시민의 역량의 한계? 왜 386세대들이 그렇게 급속하게 기득권 세계로 넘어갔을까
-당시 대학생들의 계급적 특징 : 중산층. 학생이라는 신분의 근본적인 한계 약간만 타협하면 기득권이 될 수 있는 것.
-정치권에 들어가는 386들에게 "당신들이 그동안 고생해서 싸운 거 아는데 정치권에는 자기 혼자 수혈 대상이 되어서 들어가면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결국 당신들도 그 일부가 될 거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현장성을 갖고 들어갔기에 좀 더 나았지만 학생회가 되어 학생운동 하다가 뜬 사람들은 사회운동의 경험이 없고 대중 스타의 정체성을 갖고 정치권에 들어간 것이기에 더 문제였다. 변절 했다고 하기 보단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경제민주화 사회민주화의 실패
6)비례대표 50석을 늘리면 그것을 누구에게 얼마나 분배하나,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 비례대표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단체들의 개편 또한 요하게 될 것이다. 사회운동도 정치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제도정치와 광장 정치가 분리되지 않도록, 온 국민적 의제가 되어야 함
그 외에 한국의 정당정치가 자리 잡을 것을 요하는 문제들이 있다.
7)풀뿌리민주주의가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없는 사람들이 다수인 현 상황에서 가능한가? 극복 가능할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이상적이긴 한데... 지역대표제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지역대표는 반드시 지역의 유력자(有力者)가 뽑힐 수밖에 없는 제도. 지역대표가 아니라 직업대표제로 가야 한다. 지역대표야 말로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하기 위한 꼼수다. 이것은 중국 선각자들도 예견한 것. 지역대표는 옛날 균질적 구성원이 동네를 형성하고 있을 때나 적절한 것이 아닌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선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