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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의 시간, 공간, 사람] 2강 한국인의 시간
[한국 근현대의 시간, 공간, 사람] 2강 한국인의 시간
; 새로운 역사 –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역사 후기
강연자 : 전용우
1. 현대인의 시간 : 시간의 물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은 소비, 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마치 시간은 돈처럼 물자가 된 세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경제적 사용을 위해 시간을 관리하고 그 관리된 시간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한다.
2. 근대 이전의 시간 : 동양의 관점
시간에 대한 관념은 동양과 서양에서 상이하게 나타났다. 서양의 시간은 누적되고 진행되는 것이었다. BC 몇 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시간이 누적되고 앞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에서는 시간이 순환한다고 인식했다. 즉 광무, 건륭처럼 연호를 짓고, 그에 맞춰 광무4년이니 했던 것이다. 10년 후에도 반드시 광무 4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간의 순환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권력의 자리는 종교가 차지해왔고 근대 이후에도 시간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추상화의 능력을 통한 최고의 소산인 ‘신‘이라는 존재가 ’시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최고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통해 자원을 동원하여 천체의 운행을 예측함으로써 시간의 규칙성을 파악하고 관점을 설정하여 자신의 세력 내에 있는 사람의 시간에 대한 관점을 통제한 것이다. 최고 권력자는 주로 종교의 형태로 나타났다.
3. 도시와 농촌의 시간
도시와 농촌의 시간에 대한 관념도 사뭇 다르다. 이를 현대와 그 이전의 시대로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의 시간 구분은 세밀하게 관리된다. 이에 반해 농촌의 시간 구분은 그 날의 날씨에 따라 좌우된다. 예컨대 해가 지면 휴식을 취하고, 해가 뜨면 일하고 비가 오면 휴식을 취하고 비가 개면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엄격하지 않고 불확실한 농촌의 시간 구분 속에서 농촌의 삶을 통제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적 의례였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신’이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하나된 활동과 의식을 통해 신의 지배를 입증 및 정당화했다.
4. 근대의 시간
- 기계 시계의 시대 : 자연과 독립된 시간의 출현과 시간의 물화
그러나, 근대에 오면서 시간은 더 이상 천체의 운행을 통해서만 관찰 및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계’라는 도구를 통해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변화된다. 이제는 시간은 계산 가능한 물자(시간의 물화)로 수용된다. 그러나, 종교 및 권력자들의 시간의 지배열망은 강렬한 것이어서, 종교적 상징물인 높은 첨탑에 시간을 알리는 도구인 ‘종‘을 ’시계’로 대체하며, 시간에 대한 지배를 놓치지 않으려 시도한다.
- 한국 근대의 시간 : 근대 서양의 시간과의 충돌
한국 근대의 시간도 유사한 격랑에 맞부딪친다. 구한말 일련의 개항을 겪으며, 서양의 시간과 충돌을 인지한다. 주로 전보를 주고 받는 시간, 통상, 외교와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결국, 1895 을미개혁을 통해 태양력을 수용하고 24시제, 요일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서력 채용에 따라 보신각의 타종은 중지되고 도성 전체에 시간을 알리는 오포가 등장한다. 더욱이 전차, 기차의 운행과 전보의 활성화로 서양식 시간은 정착되어 갔다. 또한 서양식 시간의 확대는 제중원 수업시간(오전 7시~오후 4시), 배제학당의 수업(오전 8시 15분 시작) 등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근대 시간의 관념을 나타내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학교종이 땡땡땡’이다. 가사 보건대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라는 가사는 ’시간‘에 사람을 맞춘다. 즉 종소리에 지배되는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인간을 말한다.근대의 시간은 하루를 ‘같은 분량’으로 구분하고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관념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소산된 전등은 낮과 밤의 구분마저 제거하였다. 이것은 과거에 ‘밤’시간을 인간이 아닌 악, 귀신의 시간으로 간주하던 관념에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새로운 시간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5. 결론 : 우리 시대의 시간
종합하면, 인간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종교의 시간 지배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고 시간을 물자처럼 활용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시간의 물화)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실시간 뉴스를 접하고, 공간을 초월한 시간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시간을 분초 단위로 관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현대인은 우리의 조상들보다 3배나 많은 깨어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시간에 사람을 맞추게 됨으로써 시간에 대한 인간의 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자신을 자연에 뿌리박은 생명체라기보다는 균질화된 시간에 딱딱 맞춰 움직여야하는 기계처럼 인식하고 자본은 그것을 통해 더욱 많은 이윤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지속성과 그 안에서 삶의 생태성 회복의 필요성을 고민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