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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민주주의] 4강 [아는만큼 실천할]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야기
4강 [아는만큼 실천할]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야기
-양성평등이 불가능한 진짜 이유
이번 시간 우리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중심질서 역할을 하고 있는 ‘유교’가 만들어 온 한국 내 성 체계를 ‘춘향뎐’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유교는 중국에서 넘어온 학문으로 인(仁)과 예(禮)를 중시하고 가족, 남녀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예(禮)들을 ‘삼강오륜’으로 정리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오륜이 강조되었지만 뿔뿔이 나뉜 중국을 통합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점점 삼강이 강조되었습니다. 삼강은 ‘신하는 임금을 따르고 자식은 아비를 따르고 아내는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즉, 남편은 가족 안에서 임금이며 임금은 국가의 아버지인 것이죠. 삼강이 남성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는 이러합니다. “심지어 아녀자들이 지키는 도리를 남자인 네가 지키지 않을 것이냐?” 남성과 여성을 대립된 구도로 놓고 대놓고 비교해 남성들의 자존심을 자극시키는 것이죠.
조선 왕들은 삼강에 대해 ‘삼강행실도’라는 책까지 발간하였습니다. 최초로 ‘삼강행실도’를 발간한 것은 세종인데요, 이 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으로 표현되고 뒤에 글로 설명이 되어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열녀와 효자들의 사례들이 실려 있는데요, 주목되는 것은 열녀들의 사례입니다. 책 이전에 조선 사회에서 열녀는 과부가 된 이후에도 재가를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들을 수 있었던 칭호였습니다. 그러나 책은 열녀의 조건을 바꾸어놨습니다. ‘부모를 보살피러 갈 여비가 없는 남편을 위해 제 몸을 정육점에 팔아 여비를 마련한 아내.’ ‘남편이 죽은 후 들어오는 왕과 다른 남성들의 구애에 이런 유혹이 내가 얼굴이 예뻐서라면 차라리 얼굴을 못나게 하겠다며 스스로 코를 자른 여인.’ 이런 식으로 열녀의 조건은 단순한 정절이 아닌 목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규범은 여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춘향뎐’을 통해 엿보겠습니다.
방자와 산책을 나온 이몽룡, 저 멀리 꽃 같은 것이 나풀거리고 있어 자세히 보니 어떤 어여쁜 아녀자였다. 방자에게 그게 누구냐 물으니 방자 왈, 기생 월매의 딸 성춘향이라 했다. 그래? 그럼 이리 좀 데려 와 봐라, 도련님 춘향이는 기생이 아니어 오라 가라 할 수 없습니다. 몽룡은 방자에게 온갖 사정을 하여 결국 내 네게 형님이라 부를테니 좀 이리 데려와라, 하였고 방자는 춘향의 시종 향단이를 설득하여 춘향을 몽룡 앞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춘향은 몽룡의 구애에 대고 그리 원하면 우리 엄마 허락을 맡으러 와라, 하고 매몰차게 떠난다. 깊은 밤 몽룡은 아버지 몰래 담을 넘어 춘향 집으로 가 월매에게 자신의 연정을 말하고 월매는 몽룡의 믿음직한 신분과 됨됨이를 보곤 수락을 한다. 그날 밤 춘향과 몽룡은 ‘어화둥둥 내사랑’ 뜨거운 밤을 보냈다. 사랑 타령이 끝나고 춘향은 갑자기 종이를 딱, 꺼내며 ‘불망기(각서)’를 쓰라 한다. 그 내용인 즉슨, 이몽룡이 성춘향을 모른 채 할 시 이 불망기를 갖고 관아에 가 몽룡을 고발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몽룡은 출장 끝난 아버지를 따라 남원을 떠나야 했고 춘향과의 가약을 아버지께 고하지 못한 몽룡은 춘향에게, 내 너를 데리러 다시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곤 남원을 떠난다. 몽룡이 떠나니 남원 고을엔 변학도가 새로운 사또로 왔는데, 춘향의 명성을 들은 변학도는 자리에 앉자마자 춘향을 데려오라고 명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고하길 사또님 춘향은 기생이 아니라 오라가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춘향은 전 사또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맞은 사이입니다. 그러나 변학도의 고집을 이길 신하는 하나도 없었다.
춘향아, 내 수청을 들라. 춘향은 나와 백년가약 맺은 지아비가 있기에 수청을 들 수 없습니다, 라며 수청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춘향 말하길 신하는 하늘 아래 두 군주를 모실 수 없고 아내는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모실 수 없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요구를 하신단 말입니까? 그때부터 변학도의 혹독한 고문이 시작 된다.
그 와중에 몽룡은 거지꼴을 하고 남원에 낯을 비춘다. 춘향은 하늘이 무너진 듯하나,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의지는 변치 않았다. 결국. 변사또의 생일이자 변사또가 춘향을 죽이겠다 한 기일이 되었다. 변사또가 춘향의 사형을 집행하려는 그 순간 저 멀리서 갑자기, 암행어사 출두요. 부채로 얼굴 가린 암행어사가 등장을 하고 변학도는 두 무릎 꿇고 어사를 맞이한다. 암행어사는 변핚도의 횡포를 꾸짖는 한편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에게 이렇게 물었다. 네가 내 수청도 거부하겠느냐? 춘향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같은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습니다. 암행어사 말하길, 춘향은 고개를 들라. 춘향이 고개를 드니 어사는 들고 있던 부채를 내리는데, 부채 뒤에서 나온 얼굴, 이몽룡이었다.
잘 알려진 춘향전. 대부분 지고지순한 한결 같음으로 사랑을 지킨 굳센 여성의 이야기로 해석되곤 합니다. 한 채윤 선생님은 궁금했다고 합니다.
1. 춘향은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왜 이몽룡이 거지꼴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도 수청을 드는 대신 죽음을 택한 걸까?
2. 변사또는 왜 춘향이를 바로 죽이려 든 것일까? 설득도 한 번 안 하고, 춘향을 죽이는 게 그에겐 무슨 이득이었을까?
3. 목에 칼을 찬 춘향을 향해 ‘나, 암행어사의 수청도 거부하겠느냐?’라고 한 이몽룡은 무슨 마음이었던 것일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부터 풀어볼까요?
춘향은 양반과 월매의 사이에서 생긴 딸입니다. 그 양반의 성을 따서 ‘성 춘향’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초기에는 양인와 첩/기생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양인의 신분을 주는 제도가 잠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춘향은 기생이 아니라 양인의 신분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변학도는 춘향을 기생으로 취급하며 ‘수청을 들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춘향에게 변학도의 수청을 드는 것은 자신을 기생으로 인정하는 꼴인 것입니다.
즉,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의 굳은 의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춘향의 몽룡과의 관계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춘향은 몽룡의 구애에 ‘엄마의 허락부터 받아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호감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첫 합방 이후 불망기를 바로 쓰게 하죠. 춘향에게 몽룡은 사랑 이전에 신분을 전환 할 대안이기도 했습니다. 기생의 딸인 춘향이 기생의 삶을 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습니다. 기생들에게 양반댁의 첩이 되는 것은 그나마 최선의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춘향에게는 몽룡 같은 좋은 집안의 첩이 되는 것이 그나마 인생의 선택지 중 최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학도의 춘향을 데려오라는 명에 신하가 ‘이미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가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춘향은 몽룡과의 사이를 온 동네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 춘향에겐 자신과 몽룡의 사이를 사람들이 아는 것이 신분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두 번째 질문, 왜 변학도는 바로 춘향을 죽이려 든 것일까?
수청을 들라는 변학도에게 춘향이 한 말 기억하시나요? “신하는 하늘 아래 두 군주를 모실 수 없고 아내는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모실 수 없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요구를 하신단 말입니까?” 이것은 소학에 나오는 구절로, 신하 된 도리 편에 포함 된다고 합니다. 지금 춘향은 변학도에게 ‘너 지금 제대로 된 신하가 아니야.’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니 변학도는 이제 자신의 충심을 만 백성 앞에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 아녀자를 건든 것이 아니라 기생에게 명령을 거부당한 것이라는 당위를 얻어야 했지요. 이제 변학도에게 춘향은 수청을 들 대상이 아닌 충심을 증명하기 위해 넘어야 할 대상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 몽룡은 어떻게 죽어가는 춘향에게 ‘나, 암행어사의 수청도 거부하겠느냐?’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건 이런 의미겠죠. 니가 사또정도의 신분에는 만족을 못해 그러는 것이냐, 진짜 마음이 뭐냐. 몽룡의 시험이었던 거죠. 당시 여성들의 ‘정절’은 이렇게도 가혹하게 검증에 검증을 요구받았습니다.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성은 양반댁에서 바로 관비(관의 기생)으로 전락하곤 했지요. 몽룡의 이 대사는 그 시대가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바탕에는 유교, 그 중에서도 삼강이란 도덕이 깔려 있습니다. 한 사회의 강력한 규범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행동들을 좌우합니다.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사랑의 깊이와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방식과 그 사랑을 두고 발생한 사건에 이상한 점을 짚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과 사건을 가능케 한 사회 구조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로 돌아와 우린 다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춘향뎐을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려고 하는가? 그 해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채윤 선생님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깔린 전제들을 뒤바꾸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선생님께도 '이성애'라는 전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합니다.
“왜 당신은 이성애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당신은 남성과 여성이 부모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성들은 성욕을 잘 못 참는다, 는 논리가 무엇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채윤 선생님은 저희에게 두 개의 질문을 더 주셨습니다.
1. 젠더와 민주주의란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사건, 인물 혹은 장면은 무엇이었는가?
2. 빈부의 격차가 더 큰가 남녀의 격차가 더 큰가?
한 번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자신을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한참 핫 이슈였던 DJ DOC의 노래, 'MISS박 논쟁‘에 대해 다루기도 했는데요, 한 참가자 분의 “그럼 여성 대통령을 어떻게 비판합니까?” 라는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이죠. 공인이죠. 비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비하 당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이 고졸 이라고 비하 당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전라도라고 비하 당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이 또한 대통령의 업무에 대한 잘못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 일부인 여성이 타켓이 되어 조롱거리가 것은 맞지 않다는 겁니다. MISS라는 것을, 쎄뇨리땅 이라는 말을 다른 의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 말들이 사회에서 실제로 쓰이는 맥락은 그렇지 않잖아요. MISS라는 말을 우리가 보통 어떻게 사용하죠? 그것이 미스터와 동등한 위치에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Miss, Mrs는 여성을 혼인 유무로 판단하고 호칭 짓는 사고방식이 들어간 호칭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듭니다. 그들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말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노래를 굳이 광장에서 불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했다,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원하면 DJ DOC 노래 찾아서 다 들을 수 있습니다. Dj DOC가 가수 생활을 금지 당한 것도 아니지요. 권리라는 말은 약자가 강자에 의해서 금지 당하고 억압당했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밥 먹는 권리를 일상 적으로 밥 먹을 때마다 쓰지 않지요. 밥 먹을 권리는 사장이 여덟 시간 노동을 시키면서 밥을 주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겁니다. 주최측이 만약 DOC의 음악 발행 자체를 막았다면 가수들이 표현할 권리를 침해받은 거지만, 이 경우 가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면서 무대에 서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이따금 강자들은 약자들의 권리 주장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서 침해가 아닌 것을 침해당했다고 쓰곤 합니다.
현재의 한국은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에 익숙치않고, 연습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최 측과 가수가 논의해서 합의하에 결정 된 공연 취소를 주최 측이 권력을 부린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합의와 강제는 다른데. 이런 논쟁을 계속 하고 합의를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덧붙여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지금 이 논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넘어가야 다음 사회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명히 다음 대선 때 여성 대통령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라도 나올 겁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 다 걸고넘어지고 계속 싸울 필요가 있다. 지금은 조금 과해도 된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번에 소화하기엔 방대한 양이라 충분히,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강의가 끝나고, 나는 왜 젠더 문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외면하지 못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질문이 허용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하고 당연시 되는 것들에 질문하고,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요. 수많은 이론과 탄탄한 논리보단 그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한 달 동안 엄청난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신 한 채윤 선생님께 감사하단 말씀 꼭 다시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 책 '섹스 앤 처치' , 영화 '단지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기사 '[뉴스 앤 조이]미국 복음주의는 45대 45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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